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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거룩한 인내



    거룩한 인내(Misery and glory)

    Holy patience
    교황님의 아침 묵상, 2014년 2월 17일(월)


    "시련과 병마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띠고 고통을 견디며 신앙의 기쁨을 간직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매일의 거룩함으로 우리 본당과 단체의 진정한 기준점이 되어, 교회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본당에서 우리는, 고통을 겪고 있거나, 문제에 처해 있거나, 장애 또는 질병을 가진 아이를 두고서도
    인내로 삶을 견뎌내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시대의 표징을 읽으며 기적을 요구하지 않고
    하느님의 인내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교황님께서는 히브리서 11장을 언급하시며 이렇게 거룩한 백성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다고 말씀하셨다. (히브 11,38 참조) "이들이야말로, 많은 종류의 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믿음의 미소를 잃지 않고 신앙의 기쁨을 간직한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이들에게
    합당한 가치를 지니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영은 이 사람들을 차지할 자격이 없습니다."

    인내의 가치에 대한 교황님의 묵상은 그날의 독서와 복음인 야고보서(1,1-11)와 마르코 복음(8,11-13)에서
    영감을 얻으신 것이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야고 1,2)라는 야고보 사도의 말은 약간 기이하게 들립니다.
    마치 우리를 고행승의 삶으로 초대하는 것 같습니다.
    시련을 겪는 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까?" 교황님께서는 야고보서를 인용하여 답하셨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야고 1,3-4)

    "이 제안은 삶을 이러한 인내의 리듬에 맞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내는 포기가 아닙니다.
    그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내란 삶에 있어서 좋지 않은 것, 나쁜 것, 우리가 원치 않는 것들을
    견디어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인내는 우리 삶을 성숙하게 합니다.
    참을성이 없는 사람들은 이와 달리 모든 것을 즉시, 빨리 얻기 바랍니다.
    이러한 인내의 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변덕스러운 사람들로서, '이거 달라, 저거 달라,
    이건 싫다'하며 어떤 것에도 만족할 줄 모르는 버릇없는 아이들처럼 되고 맙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요구에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하고
    되물으십니다. 마치 "이 세대는 기쁜 음악을 들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울지 않는
    아이들과 같다.(마태 11,16-17 참조)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성장하지 않으려는 사람이고, 다가오는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
    어린이의 변덕에 머물러 이거 아니면 싫다고 고집부릴 줄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인내가 없을 때 어린아이처럼 변덕스러워지려는 유혹이 찾아옵니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또다른 유혹은 '전능함'입니다. 전능함은 "나는 이걸 당장 해야겠어!"라고 말하게 합니다.
    바리사이들이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했을 때 주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언급하십니다.
    그들은 무엇을 원했습니까? 그들은 쇼를, 기적을 원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광야에 계실 때 마귀가 제안한 것과 같은 유혹입니다. 무언가를 해보라고, 성전에서 몸을 던져
    자신의 권능을 보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표징을 요구하는 데 있어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행동 방식과 마법사의 방식을 혼동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법사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나아가는 방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인내입니다. 우리는 고백성사에서 매번 하느님의 인내에 찬가를 부릅니다.
    주님께서는 위대한 인내로 우리를 당신의 어깨에 짊어지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인내의 음악으로 꾸려져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 선조들의
    음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음악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던 이들의 음악이며, 주님께서
    우리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창세 17,1)하며
    주신 계명을 따랐던 이들의 음악입니다."

    교황님께서는 다시 한번 히브리서 11장을 인용하셨다.
    "하느님의 백성은 심하게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박해받았고 죽임을 당했으며 동굴에 숨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기쁨을 지녔으며, 야고보 사도가 말한 것처럼 먼 미래에서 다가오는 약속을 환영하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련 가운데 지녀야 할 인내입니다. 이것은 어른의 인내이며, 우리를 이끄시고
    어깨에 짊어지시는 하느님의 인내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내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잘 인내하고 있는지요!"

    "고통받는 많은 이들이 인내로써 자신의 삶을 내놓을 줄 압니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처럼 표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시대의 표징을 읽는 방법을 압니다.
    그들은 나무에 무화과가 올라오면 봄이라는 것을 압니다. 반면, 복음에 나오는 참을성 없는 사람들은, 표징을
    요구하지만 시대의 표징을 읽을 줄 모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에게 세상은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히브 11,38참조)라고 히브리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이 말은, 오늘날 엄청나게 많은 일들로 고통받는 가운데에서도 믿음의 미소를 잃지 않고
    신앙의 기쁨을 지닌 우리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이들 누구에게도 가치가 없습니다. 이들이 우리 본당과 단체의 신자, 우리 신자들입니다.
    이들이 매일의 거룩함으로 교회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교황님께서는 강론의 서두에 언급하셨던 야고보 서간의 구절을 다시 읽으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인내를, 기쁨에 찬 인내를, 수고하는 인내를, 평화의 인내를 베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이는 하느님의 인내이며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는 우리 신자들의 인내입니다."

    번역 :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레늄 크리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