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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어루만짐으로 용서하시는 하느님



    어루만짐으로 용서하시는 하느님(Forgiveness in a caress)

    산타 마르타의 집 소성당 미사에서
    교황님의 아침 묵상, 2014년 4월 7일 (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그날의 말씀인 다니엘서(13,1-9. 15-17. 19-3 . 33-62)와 요한복음(8,1-11)에
    대해 묵상하셨다.  "오늘의 말씀은 간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간음은 모세의 율법에서 신성모독,
    우상숭배와 함께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죄로 여겨졌습니다.
    간음은 하느님의 이미지, 하느님의 충실함과 상반됩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인간의 현실인 것에 더하여,
    하느님의 그 백성과의 충실한 관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간음에 의해 결혼이 망쳐지면
    이는 하느님의 그 백성과의 관계를 훼손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매우 심각한 죄로 여겨졌는데,
    하느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의 상징인 하느님의 충실함에 먹칠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사가는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인의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 가운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가르치시면서 말이죠. 그분이 가르치고 계실 적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가 한 여자를 앞세워 접근합니다. 아마도 그녀의 손은 묶여 있었겠죠... 그들은 그녀를
    한가운데에 밀어넣고 고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자는 간음을 했습니다!
    복음은 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다고 전합니다: 스승님은 자비를 이야기하지만,
    모세는 이런 여자를 죽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비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였죠.
    만약 예수님께서 '그렇다'고 하여 그녀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진행된다면 그들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빌미를 주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당신들의 선한 스승님이 아닙니까.
    그가 이 불쌍한 여자에게 한 일을 보십시오!
    대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가련한 여인, 그녀를 용서하여라!
    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고발할 근거를 얻게 되는 셈이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들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간음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그들에게는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 중 몇몇은 그 자신이 간음을 범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쪽에서는, 비록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여인과 홀로 머물길 원했으며 여인의 마음에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서히 자리를 떴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너희 가운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아이러니하게도, 복음서는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모두 떠나갔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하늘나라 은행에 큰 빚을 지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고백자의 시간이 옵니다.
    예수님은 앞에 서 있는 여인과 홀로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습니다. 어떤 성서 해석자들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죄를 적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몸을 일으키시어 그 여자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녀는 부끄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너와 나, 우리 둘 뿐이다. 너는 고발과 험담으로부터 풀려나
    하느님 앞에 서있다: 너와 하느님 단 둘이."
    "그 여자는 자신이 무고의 피해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방어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저는 간음을 하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주님, 아무도 저를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수치스러운 시간을
    통과하지 않기 위해, 그러한 부끄러움을 겪지 않기 위해,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하느님과 그 백성 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예수님은 용서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용서 이상의 것이 존재합니다. 고해사제로서 예수님은
    율법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율법에는 그녀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죄가 없었고 첫번째 돌을 던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넘어섰습니다.
    그녀에게 간음은 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율법으로 그녀를 단죄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자비의 신비입니다... 자비로움에 있어서 예수님은 그녀가 돌에 맞아야 한다는
    율법을 넘어섭니다. 자비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자비는 죄를 없애지 않습니다.
    죄를 없애는 것은 하느님의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용서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가라!'
    중풍병자에게 말했듯이 말이죠: 네 죄는 용서받았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더 나아가 그 여인이 더 이상 죄 짓지 않도록 조언을 하십니다."

    "단죄받을 만한 이들이 우리 중에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그것이 정당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용서하십니다. 어떻게요? 이러한 자비로요. 자비는 죄를 없애지는 않습니다:
    죄를 없애는 것은 하느님의 용서입니다. 반면, 자비는 이것을 훨씬 훨씬 넘어섭니다."
    교황님은 하느님의 자비를 태양에 비유하셨다: "우리는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을 봅니다.
    하지만 아침 해가 떠오르면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하느님의 자비도 이와 같습니다:
    자비는 사랑과 다정함의 엄청난 빛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법령으로 용서하시지 않고 어루만짐으로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로 인한 상처를 어루만짐으로써 용서하십니다.
    그분은 용서와 우리의 구원에 개입되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고백사제로서의 방식입니다. 그분은 간음한 여인에게 굴욕감을 주지 않으십니다.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으십니다: 너는 무엇을 했느냐, 언제 했느냐, 어떻게 그리고 누구랑 했느냐!
    대신 그녀에게, 가서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위대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위대합니다: 우리를 어루만짐으로써 용서하십니다."

    번역 :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레늄 크리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