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성월 


남을 비판하지 마라

 

글 : 최인호 베드로


성철 스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러나 큰 어른이 돌아가셨지만 우리들은 
그분이 남긴 사리 같은 것에만 흥미를 느끼고 있을 뿐 
그분의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그분을 오랫동안 모셨던 상좌 원택으로부터 
열반 후 성철 스님의 일화를 들었는데 
그 중에서 두 가지를 잊을 수 없다.

성철 스님이 남긴 첫 번째 일화는 활자로 된 것은 
무엇이든 보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수년 간 이를 지켜오던 원택은 어느 날 바람에 날려 온 
신문지 한 장을 무심코 들여다보다가 스승에게 들켜 혼이 났다.
활자로 된 것이면 심지어 경전까지도 보지 못하게 한 것은
중국의 선승 약산()의 선화와 같다.

약산은 문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불경 보는 것을 금하면서도 
자신은 끊임없이 그것들을 읽었다.
이제 제자가 따져 묻자 약산이 대답했다.
"나는 불경을 다만 앞에 놓았을 뿐 읽은 적이 없다."
"그러면 우리들도 스님처럼 불경을 눈 앞에 놓고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약산은 대답했다.
"안 돼. 불경을 눈 앞에 놓으면 문자가 
너희를 보는 것을 어찌 막을 수가 있겠느냐."

문자는 우리에게 중독현상을 일으킨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책과 신문 같은 활자매체에 의해서 
정보라는 이름의 쓸모없는 지식을 쌓아서 곧 문자의 노예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결국 자신의 의견이 아닌 
남의 의견을 흉내내는 앵무새가 되는 것이다.
참다운 지혜는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쓰레기 지식들을 버릴 때 시작되는 것이다.

옮음과 그름, 좋고 나쁨, 착하고 악함, 미워함과 사랑함,똑똑함과 어리석음, 
나와 너와 같은 분별들은 결국 비판을 초래하는데 이 비판은 
우리 몸에 축적된 중금속 문자의 중독현상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성철 스님이 남긴 또 한 가지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명심해도 좋을 금언이다.

"네가 어제 옳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 
오늘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과연 옳으냐?"

우리는 무의식 중에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비판한다.
성철 스님의 말씀대로 어제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화를 내고 흥분했던 그 생각도 하루만 지나면 
내 이기주의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남을 비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이 말이야말로 정말 지키기 어려운 말씀이다.
이러할 때 성철 큰스님께서 남기시고 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리라."는
말씀은 한 번쯤 음미해야 할 진리라고 생각된다.

≪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