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피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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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피알      
      
      [빛좋은 개살구.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빈 달구지 소리만 
      요란하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피알 시대라는 말이 유난히 나에게 의미 있게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소극적인 우리 국민들이 경제적 발전을 하기 위해 도약 하기 위해서는 
      마땅한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어디서나 자기를 표현하며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것이 별로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효과는 부끄럼 타거나 쑥스러워 말 못하는 사람보다는 확실히 더 좋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소개 정도 갖고는 성이 차지 않아서 뇌물을 바치든가, 빽을 쓰든가 
      하는 것으로 점차 이어지고 다음에는 사치 풍조가 시기와 위신과 자만과 
      어우러지면서 모든 면에서 인간 사회는 발전한 사회인지 뭔지 하는 
      공해로 탈바꿈한 기분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언제든지 순명, 겸손, 용서, 화해, 통회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회의 들뜬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말들일 겁니다. 
      이 말들이 언제가야 인기가 높아지겠습니까. 
      어쩌면 교회는 이러한 말들의 매력을 선전하는 피알회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아무리 선전해도 그리 쉽게 먹히지 않아서 머뭇거리다가 간혹 반대의 피알에 
      넘어지는 신자들도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더구나 본당 자체도 그 분위기에 
      그렇게 넘어가 버리는 경향도 우려할 문제입니다. 이곳 저곳에 
      아름다운 성당은 많아졌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적어지는 느낌이 드니 말입니다. 
      신자들은 많아졌지만 사회적으로 겸손한 사람들은 적어지는 느낌입니다. 
      교회는 많아졌지만 사치풍조는 더 심해지니 말입니다. 
      이제 한국이 빚좋은 개살구같은 나라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자동차의 물결을 보면서 걱정이고 백화점을 구경할 때 근심이 듭니다. 
      술집이 많아지고 유명 식당들이 간판을 걸 적 마다 고개가 갸웃 거려집니다. 
      안마 시술소가 외과의 물리치료실로 변해 주었으면 고맙겠는데 
      영 피알이 안됩니다. 사회가 가르쳐주는 재미보다 겸허함의 세계에서 
      맛볼 수 있는 뻐근한 보람이 얼마나 좋은지 맛 좀 보시며 살도록 합시다. 
      위태로운 허세로 버티는 끈기보다 털어버려 발 펴고 
      주저 앉는 평화로움에 몸좀 젖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