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흐르는 피의 뜻 

어머니들은 참 신기한 신통력이 있습니다. 
꿈 자리가 사납고 예감이 이상해서 멀리 있는 자녀에게 
전화해 보면 틀림 없이 무슨 사고가 있었습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여행을 떠나 출발한 그날 저녁 해가 지면서 이상한 마음에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나는 결정을 했었습니다. 
자정이 거이 되어 집에 막 도착하는 순간 나는 문패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이 상가(喪家)로 변해 있었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돌아오라고 계속 불렀다는 것입니다. 
전보를 어디로 쳐야할 지 몰라서 말입니다. 
끊을 수 없는 혈연 관계 속에 있는 이상한 힘은 
영육 이상의 어떤 것이라 느낍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주고 있는 혈연적 애정은 생명의 공유를 뜻하는가 봅니다. 
옛 이스라엘 민족은 혼은 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한 얼이 피의 흐름을 타고 지금은 나에게 다음은 
내 자녀에게 세월을 통해 걸어 가듯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영혼이 꼭 피 속에 있지야 않겠지만 나에게 흘러 들어 온 부모님이 주신 
피는 인류학적 사회학적 의미가 깊은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피의 의미에서 나 자신의 의미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가깝게는 부모님이 못다한 것을, 다음은 형제들이 못다한 것을, 
다음은 다음은 그러면서 또 내가 할 일도 생각하니 힘 겹게도 느낍니다. 
그 일들이 우리 모두의 생활이며 인생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리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풀어 받아야 
삶의 가치를 찾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생활의 의미를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풀어 주셨는데 참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아벨이 흘린 피가 하느님께 울부짖듯이(창세기 4장) 
피는 창조주와 대화가 통하는 그 어떤 것입니다. 
그런 피를 몸 전체에 지니고 있는 이상 피가 해야할 일들을 하면서 살아야 
창조주의 뜻에 맞을 것이며 피의 본연을 제대로 알아 볼 때 
인류가 형제애로 깊이 엮어지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