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남자인데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루가 2,35)

요셉 성인의 심정, 마리아의 심장을 예리한 칼로 찌르듯한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시므온의 예언을 듣고서, 아끼고 돌봐 줘야할 정배 마리아, 
처녀가 아기를 잉태하였다 하여 투석 사형을 받을뻔 한 마리아, 
몰래 파혼하려다 천신의 말을 꿈에 듣고 그대로 있기로 한 요셉의 심정, 
사랑스러움과 신비함의 두 힘으로 포로가 되어버린 요셉의 심정은 벙벙한 
일들로 말할 수 있는 입이 오히려 거추장스럽다고 느꼈을 겁니다.

그 아기의 신비는 꿈을 통해 들어 알지만 이렇게 시므온 할아버지가 
심각한 예언을 할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성모 마리아를 책임지려는 굳은 의지를 지닌 요셉은 하여튼 남자였습니다. 
약한 여자를 도우려는 남성의 호의심과 정열이 요셉이라고 왜 없었겠습니까.  
요셉은 심적 상태를 도저히 이 세상의 기술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하늘이 이루어 가고 있는 기이한 운명의 서곡을 당하며 들어야 하는 
자신을 헤아려 주는 사람은 마리아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러한 하늘이 주시는 운명의 체험을 자신들의 몸과 
능력으로는 감당키 어려워 인간의 한계점을 깊이 통찰했을 겁니다. 

요셉은 마리아에게 "마리아씨!" 하고 불렀지만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마리아 역시 "녜?" 했지만  눈과 눈이 마주치며 그 사이엔 억겁도 넘는 
초월의 언어만 구사하다 말았을 겁니다. 인간이기에 답답했던 
그 심정들을 어느 인간이 감지할 수 있었겠나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 순명으로만 살아갈 성가정의 말없는 고행의 행진은 
예언의 흐름을 따라 십자가의 길까지 흘러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가정의 뜻은 도를 트고도 넘고 더 넘은 생활입니다. 
성가정을 하늘로 가는 길이라면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세상에 물든 
우리의 눈을 한번 비벼 깨워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떻든 오늘도 그 성가정은 우리의 생활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의미를 세상 살기 위한 안주 방안이라고만 생각할 것인지 영원 세계를 
향한 도 닦는 세상의 암자로 보아야할 것인지는 더듬어 보기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