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차피 죽어서 버릴 것이라면… 

그물과 배를 모두 버려두고 부모님께도 잘 계시라는 인사 한마디 못 드리고 
배가 얼마인지, 그물의 값이 얼마인지, 그 그물을 가지고 얼마를 더 
벌어들일 수 있을런지 계산해 보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주님의 제자들을 
흠모하며, 이 제자들을 본받아 우리는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버림, 그것은 큰 덕입니다. 
우리나라의 옛날 이야기에도 버림의 덕이 많이 나옵니다. 
심청전이나 춘향전을 읽어 보면 심청이는 아버지께서 눈을 뜨시리라 믿고 
아버지와 헤어져 그 곁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녀의 갈 길은 죽음입니다. 
죽으려 팔려가면서도 심청은 아버지께서 눈을 뜨시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춘향전에도 춘향이는 이도령의 성공을 위해 헤어지며 기다립니다. 
이별, 떠나가는 것, 그것은 버림이요 포기요 끊음이지만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한 
지혜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또한 버림으로서 보다 더 값진 것을 얻기 위한 
비결이기도 합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이미 포기함으로서 달성되는 그 높은 
경지를 미리 맛본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끊음으로 그것을 다스리는 한 계단 높은 차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버리거나 떠나거나 할 때에는 아까워 하면서 힘주어 잡기만 
하면서 안타깝게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별에는 간혹 시원섭섭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헤어지거나 떠나거나 버리거나 포기할 때는 기쁨의 뜻도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별의 서운함이 결코 이별의 슬픔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별의 슬픔을 이 세상 어느 민족보다도 남달리 강하게 느끼는 
민족이 우리 한민족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민족의 이별에 대한 애틋하고 미묘한 정서는 어떻게 보면 신비스럽기조차 합니다. 
그러한 이별에 관한 수많은 사연들이 우리들의 역사와 문화속에서 
미학의식(美學薏識)으로 깊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별은 또한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는 전제(前堤)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예로 말씀드린 심청전과 춘향전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들의 헤어짐이 곧 그들의 
만남이 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의 고전(古傳) 속에서 눈물을 머금게 하는 대목은 
거의 이별과 상봉의 장면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중가요의 대부분이 
또한 그런 내용을 가사로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정서를 은근하고 끈끈하게 
울려주는 내용이 어째서 이별과 상봉 두가지로만 묘사되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만 
아마도 우리 한민족이 유달리 정서가 깊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헤어져 슬퍼 울고, 만나서 기뻐 울고, 이렇게 헤어짐과 만남에서 흘리는 눈물 속에 
우리의 깊은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 안에서 삶의 진한 맛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종교성향(宗敎性向)이 
강한 민족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덕스러움이랄까 선행 등에 유달리 정을 느끼는 성향을 보면 우리 민족은 이미 
삶 속에서 깊은 종교성에 눈뜨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제 1독서인 요나서에서 니느웨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합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세속의 호사생활을 버리고 이별을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느님의 용서를 받습니다.제 2독서인 고린토 1서는 
이별이란 뜻을 가미하여 읽어 보면 참으로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교우 여러분, 내 말을 명심하여 들으십시오.” 하시고는 계속해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물건을 가진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함께 살지만 함께 살지 않는 것처럼... ” 이별이란 그 깊은 의미를 늘 마음 속에 
자기 것으로 알고 살 때에야 비로소 참된 자기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참으로 심오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어서 복음에서는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제배데오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주님의 부르심 때문에 그들은 그물이 없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물이 없었으므로 주님께서 주시는 일감을 얻을 수 있는 여백을 갖게 된 것입니다. 

갑자기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헤어짐, 끊음, 버림, 이별 
그 모든 것의 최후의 지점은 죽음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태어났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죽는 그 순간에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과는 이별해야 됩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최후의 삶의 홑껍데기 껍질이라고 볼 수 있는 덕스러움이 있습니다. 
죽음으로서만 체험할 수 있는 이별을 살아 있으면서 진정 이별할 줄 아는 덕으로 
바꿔 가집시다. 어차피 죽으면 버릴 걸 알았으면 살아있으면서 버릴 줄도 아는 것이 
덕스러운 사람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신앙을 새롭게 이끌어 주는 
성숙(成熟)의 경지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를 보면 대개의 종교가 버림의 
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그렇고 우리 가톨릭이 그렇습니다. 
많은 수도자들은 버림으로서 더 많은 것을 얻고, 또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립니다. 보이는 것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하여 가는 
그러한 삶을 세속적인 잣대로 재는 이 세상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안기면서 “마귀의 유혹을 끊어버립니까? 
마귀의 유혹과 이 세상의 온갖 허례허식을 끊어버립니까?” 
하는 물음에 자신있게 “끊어버립니다. 끊어버립니다.”라고 대답했고 
이렇게 사실 우리는 끊어버렸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런 유혹을 끊어버린 우리들이기에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까?” 
하는 물음에도 “믿습니다.” 라는 대답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끊어버리면 마귀가 없음을 얻게 됩니다. 
그럼으로서 우리는 주님의 거처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음으로서 세속의 허례허식을 끊어버리게 되면 
허허로운 무상(無常)의 세계를 얻게 됩니다. 
그럼으로서 하느님 나라에서 우리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됩니다. 

미사에 오신 여러분은 진정 이미 끊어버릴 줄 아는 분들이십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 이 자리에 오셔서 미사를 드리고 계신 여러분은 바로 
오늘 하루를 주님을 위해 세속의 권유를 떨쳐버렸다는 뜻입니다. 
참 잘하셨습니다. 그 끊어버림으로 해서 여러분도 설경(雪境) 구경이나 
그냥 쉬고만 있는 것 보다는 한 차원 높은 세계를 맛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러한 방식으로 버리기를 시작하는 믿는자들이 됐으니 
이제 버릴 것은 더욱 과감하게 버리고 끊을 것을 더욱 과감하게 끊도록 합시다. 
이왕지사 끊을라면 좀 더 용기를 내어서 끊어버리고 버릴 것이라면
과감하게 버린다면 우리는 보다 더 큰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으며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영원한 기쁨을 그 안에서 맛보실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마귀를 끊어버리는 데 대한 새로운 의식을 갖추고 끊어버릴 줄 알고, 
헤어질 줄 알고, 이별할 줄 아는 덕을 쌓아서 우리도 제자들처럼 
우리의 후손, 우리의 이웃과 우리 스스로에게도 
주님께 대한 참다운 신앙이 남겨지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