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밥빠의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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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밥빠의 자녀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군대식 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적한 바를 해내야 하는 사회의 일반 통념, 
      단번에 성과를 내려 하는 한탕주의식 목표 설정 의욕들,
      이상의 형태들이 오늘을 연출해 내고 있어서 문제들이 많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에 들어가면 된다든지, 돈은 벌어야 되겠다든지, 
      당선이 되고 보아야한다느니, 결혼을 일단 하고 본다느니 등등으로 
      도깨비 나라의 경쟁마냥 이상한 방법들이 윤리성을 멍들게 하고있다.
      “목표는 방법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다른 표현으로
       “목표가 아무리 좋아도 방법이 나쁘면 안 된다.”라는 가톨릭 윤리의 원칙을 
      이루는 대전제가 이 사회에 진리로 강하게 피어나야 되겠다고 느낀다. 
      물론 토마스 철학에 그 뿌리를 두고 많은 윤리 신학자들이 
      가톨릭의 덕스러운 삶을 지도해 온 원리이다.
      
      목표를 향한 지금의 생활이 선이거나 악이거나 중간이거나 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금의 생활이 윤리, 도덕, 성화의 주제이다. 
      생활도 지향도 모두가 좋을 때에 교회에서는 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군대나 사회는 다르다. 바로 이 노선의 차이에서 
      종교 윤리가 사회 윤리를 꾸짖고 있는 점이다. 
      목표를 향한 지금의 방법결정에서 단 한 가지 방법만이 있을 경우는 
      불가항적이므로 잘못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방법이 복수일 때에는 행동의 책임이 따르는 윤리성, 도덕성, 법 
      질서의 수행성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된다고 인류의 지혜는 정리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렇게 “급하다 급해”라는 병에 걸렸을가? 
      어쩌다가 우리는 “바쁘다 바뻐”라는 말도 바빠서 “바밥빠”라고 하면서 
      일에만 몰두했던 시대. 바로 오늘 드디어 바밥빠의 아들딸들이 바밥쁘게 뛰는 
      현장이 특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밥빠의 생태적 진화력은 대화도 연구도 발표도 바밥빠서 일방적이다. 
      게다가 방법의 가치 운운도 필요없다. 하면 된다는 간단하고 
      빠른 결론만이 위대한 생태계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일단 해놓고 보자는 생각들이다. 명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렇지 않은데... 직선보다 곡선이 더 멋있는것 같은데” 하면서 
      중얼거리는 사람 중의 하나가 나다. (한국일보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