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인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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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애인 할머니   
      
      노년층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누가 일전에 “신부님은 은퇴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뭐하면서 지내실 거예요?” 하고 걱정 반 의혹 반으로 묻는 것이었다. 
      이 말에 나는 아직 건강해서 그런지 노년에 대한 불안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터이라 기대와 희망에 찬 은퇴 후의 노년 생활에 대한 
      멋진 상상의 계획을 늘어놓아 본 적이 있었다.
      
      노년층이 점차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의술의 발달도 생활의 안정도 식품의 발전도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그러니 저절로 수명도 길어지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노후 대책, 노인 문제라는 말이 나올 때면 왜 그런지 가련한 처지로 
      또는 뭐라 말하기가 좀 불효 같은 심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노인들 자신도 자신의 늙음에 대한 생각이 이와 유사하게 
      물들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지해야 할 처지, 서러움이 앞서는 분위기로 처량한 마음을 대개 갖는다.
      
      나는 노인들을 한 때는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대하던 습성이 있었다. 
      학생 때에 지역 활동 관계로 나가서 봉사를 하는데 
      노인들의 단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노인들을 노인이라고 보는 간단한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들이 많은 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천주교 평양 교구 신우회가 있는데 그 지도 신부를 10년 넘게 맡아보고 
      있어서인지 노인들과 함께 있으면 편안함을 느낀다. 
      그 노인들로부터 집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간히 들을 때면 내 일이 아니라 
      그런지는 몰라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곤 한다. 
      혹시 이 글을 노인들, 특히 내가 잘 아는 분들이 어쩌다 읽으실지도 모르니까 
      데레사 할머니, 누시아 할머니, 마리아 할머니, 아녜스 할머니, 
      안나 할머니, 김 회장님, 현 회장님 등을 지면으로 불러본다. 
      그 외 신우회 모든 할머니들도 명단 공개가 힘들어 못하지만 같은 기분이다. 
      “이 봐요, 원숙한 엄마님들, 나 여기 글을 썼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기보다 때로는 연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 같은 그런 감을 느끼기도 한다. 
      노인들과 할 말이 없어 그저 가만히 있노라면 아늑한 기분이 드는데, 
      이를 연인과의 분위기라고까지 표현은 했지만 하여튼 어떤 노인분들과 
      함께 있다 보면 마음이 참 편안해지는 것을 유난히 느낄 때가 있다. 
      속으로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다가는 무슨 요술 할머니들 곁에 있는 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귀찮은 분들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젊다고 다 좋은 사람들, 
      멋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마찬가지다. 
      할머니들의 생각이 멋있고 표현하는 기술이 근사하고 
      생각하는 각도가 아름다운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는 많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할머니들은 아직은 젊게 보이는 신부인 나에게 
      무슨 좋은 말을 해달라고 그러신다. 
      신부로서 말하려니까 아무래도 종교적인 말을 많이 해 드리는 것이 
      일반적인 듯싶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노인들이라면 멋있는 분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 월등 많은 게 사실이다. 
      이것이 또한 여러 사람을 위한 최선까지는 아니라도 가장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다. 언젠가 잡지를 보았다. 
      교회 내의 잡지이지만 인간의 여러 면을 다루는 것은 
      세상의 잡지나 다 마찬가지라 본다. 
      그 잡지는 사목 잡지 51호라 생각하는데 그 내용을 나는 자주 
      노인들에게 강조하며 덛붙여 말해 드리곤 한다.
      
      “노인은 하나의 거목과 같다. 
      아이들은 그 그늘에서 쉬고 뛰어 놀 수 있는 울창한 나무이다. 
      이 거목은 인생의 여러 시기가 연륜을 그리며 자라 온 것이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게서 우리는 그 연륜을 읽는다. 
      노인의 마음속에는 어린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고 노인도 있다. 
      그는 이 모든 시간의 총화이다.”라는 내용이다. 참 기분 좋은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노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고 누구는 주장해도 좋다. 
      그래도 대개가 그렇다고는 말해야 되겠다. 
      이 잡지는 젊은이들이 주로 보는 잡지인데 노인에 관해서 쓰는 것이 얼핏 보면 
      이상할런지 몰라도 이 노인이라는 말이 결코 남의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제 곧 30년이 지나면 바로 노인이고 
      그 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준비삼아 조기 숙독하면 어떨가 해서 
      나로서는 의미 있게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발전 심리 등의 책을 보면 노인에 대한 학문적 통계에서는 
      “노인의 견고성, 욕심, 간섭, 노파심, 권위 의식 등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이런 부정적 특성들은 뇌의 기능이 예전 같지 못해서 그렇다.”
      고 표현하고 있다. 종교심리에서는 뇌의 기능이 저하되는 이유도 있지만 
      죽음을 외면하고 세상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흔히 노망이라 불리는 증상은 노인성 정신병으로, 옛날에 마음과 정신의 
      상처들이 쌓였다가 곪은 것으로 보는 정신과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들의 성격이 어떠니 저쩌니 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 생태계를 잘 모르는 무식일 수 있겠다. 
      환자들을 병에 걸렸다고 못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노인들이 일하시는 모습을 좋아한다. 
      농촌의 할아버지들이 낫을 손에 들고 풀을 베시다가 주저앉아서 
      담배를 태우시는 것을 볼 때면 마치 인생의 드라마를 보는 듯 정이 가게 된다. 
      노인들이라도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노인들은 일을 느리게 하더라도 해야 된다고 본다. 
      단 노인들이 그 일을 독점하지는 말고 
      다른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좋으리라 본다. 
      사회의 사고 방식은 노인들을 모신다는 핑계로 현직에서 은퇴라는 
      명목으로 밀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기도 한다. 
      봉급 때문이라면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55세나 60세까지는 호봉 따라 계속 오르지만 그 후부터는 
      자녀들이 다 컸고 그간 벌어 놓은 금액을 참작하여 다시 점점 내려가는 
      제도를 택하면서라도 몸이 성한 이상 일을 해야된다는 말이다. 
      봉급을 적게 줄 이유가 마땅하다고 본다. 
      그러나 본인이 정말 일에서 손을 떼고 인간적으로 하고 싶은 
      무엇이 있다면 몰라도 말이다.
      
      앞서 말한 사목 잡지에는 다음과 같은 좋은 말이 또 나온다. 
      칸트가 ‘순수 이성’ 비판을 썼을 때의 나이가 70이 넘었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지었을 때가 80세 였고, 미켈란젤로가 
      베드로 대성전의 원개를 설계했을 때의 나이도 또 80세였다는 것이다. 
      
      독일인 안과 의사 히르슈베르크는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에스꼬리알 궁에 
      소장된 중세 아랍인 의사들의 원고를 읽기 위해서 75세 때부터 
      아랍어 공부를 시작하여 결국 그 책들을 다 읽고서 일곱 권으로 된
      ‘안과 의학 역사’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한다. 
      이 책은 의학 전문서로서의 가치와 역사학, 문학적인 가치로
      높은 평가를 베를린 역사 학회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 성서에서 아브라함은 100살 때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의 믿음이 오늘까지도 강한 믿음의 표본을 주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은, 내가 존경하기보다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이며 
      삶의 동료인 형님, 누님들이라고 생각한다. 
      노인들 자신이 자신을 뒷전으로 밀려 있는 소외된 상태라고 마음을 절대로 
      먹지 말아야 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약한 마음이 곧 병을 유발한다고 본다. 
      
      기왕 죽을 때까지는 인간으로 살아야 되니까 젊은이들과 짝짝궁을 
      마추는 연기라도 연출해야 되는 것이다. 
      남의 마음을 다 읽으실 수 있는 나이에 연기 하나쯤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싶다. 
      젊은이들이 노인은 말이 많으시다고 그러면 말을 적게 하고 듣는 기술을 
      익혀 가면 되고, 또 말이 너무 없으시다고 하면 말을 조잘대건 웅변하건 발음과 
      발성에 노력을 기울이다보면 점점 그런 연기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할 것이며 그
      러다 보면 사고 방식이 다른 젊은이들과 점점 어울리게 되리라 본다.
      
      노인들은 또 일 이외에도 신경 써야 할 분야가 많다고 본다. 
      과거에 잘못 되어 상처난 흔적들을 고치는 보상의 노력 생활, 인생 공사 중 
      부족했던 자료 보충의 작업, 사회의 혼란으로 못 채워 결여되었던 정서 면의 
      보완, 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 맞아 못했던 취미 생활의 멋, 사후의 세계에 대한 
      공부와 준비, 그리고 남기고 싶은 일에 대한 계획과 노력 등등이 있지않은가. 
      젊은이들을 이기겠다고 야단치면서 속썩는 곤혹을 뭣하러 치루려 하는가.
      노인들은 삶의 행진에 앞서 가시는 분들로 보다 나은 성숙을 위한 
      노력을 끝까지 하셔야 된다고 본다. 
      노인들께서는 사회가 맑고 밝게 되어 평화로운 세상이 되도록 선봉을 서야 하고 
      지구력으로 무언가를 계속 하면서 사는 개척자들이 되어 주시기 바란다.
      
      노인들께 드리는 한마디 끝인사로 “할아버지, 할머니, 있지요?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건강에 주의하셔야 돼요. 알겠지요? ”하며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