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부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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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 부부에게 
      
      저도 신부는 신부(新婦아닌 神父)입니다. 
      결혼 초의 신부는 깨소금 사랑의 맛이 나듯 천주교회의 새 신부들도 
      어떤 의미의 맛 냄새 나기는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신혼 부부에게 할 말을 찾다 보니 신혼 초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제가 사제 서품을 받고 새 신부로 지나던 초기의 1년을 생각합니다. 
      새 신부 때에 저는 마치 성스러운 빛의 강열한 기백이 마음과 뇌의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치는 것 같이 느끼면서 악신들과 정면 도전하고 싶은 
      그런 충동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20년이 지났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새 신부(神父)때를 생각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바로 그것이 신혼 부부들에게도 통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신부(神父)같이 살라는 말은 
      안할 테니 염려 마시고 계속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이란 단어는 그 생명력(氣)이 좀 거대하지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 사랑은 조건이 많기 때문입니다. 
      잘 생김, 돈 많음, 메너, 실력, 가정 환경 등등을 곁드린 사랑으로 
      조립식 사랑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은 이런 조립용 부속이 없어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고 한 점을 보아서 이런 부속은 가짜 사랑을 
      이루어낼 수 있는 조건인가 보다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랑의 결실인 일치의 의미를 더듬어 보면서 
      참사랑이랄 수 있는 면면을 표현해 볼가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신혼 부부님들께 저는 우선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선물은 십자가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라는 내통의 통로에 
      십자가를 콘덴사처럼 붙여놓고 싶습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희생이며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원래 사형틀로서 패배, 죽음, 모욕의 뜻이었으나 
      예수 이후에는 적십자, 녹십자 등으로 신성함, 봉사, 희생, 희망 등의 
      적극적 표현으로 변하였습니다. 
      
      이것은 신학이 말하는 세상을 이긴 구원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신혼 부부 사이에는 이 십자가의 철저한(죽기까지) 희생적인 
      몸바침이 있어야 잘생긴 사랑이 제대로 익어 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서로 이 십자가라는 문을 통해서 사랑의 내통이 있게 되면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선물로의 의미로 십자가라는 강복(降福,祝福)을 
      드리고 싶습니다. 복을 받으시는 데 세상 재물로 복(福)의 측정을 재는 
      그런 복은 이웃들에게 받으셨겠고 그런 복 말고 인간 본심이랄가 
      속심이랄 수 있는 인간의 근본이 푸근하고 포근한 봄기운이 누적된 것 
      같은 축복을 받으셔서 구수한 미소가 얼굴로 스며 나오는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라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저는 신부가 되던 그 날 그 시간에 제일 괴로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부모님이 안 계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축복을 부모님께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를 낳아 기르신 부모님께 저의 첫강복을 남들처럼 
      드리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부모님, 형제들은 우리 생애에 그만큼 
      소중한 우리 몸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결혼하는 양가 어른들의 심정을 헤야려 봅니다. 
      어른들의 생각은 우리의 아들, 딸 녀석이 행여 상대편 가정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시부모, 장인 장모님께 
      제대로 예의를 가출 수 있을가 하는 걱정을 하실 겁니다. 
      그 염려는 조마조마 아슬아슬해서 전화나 노크소리만 들어도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일 겁니다.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어른들의 심정입니다. 
      
      결혼 초에 이러한 어른들의 심경을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다른 편으로 생각한다면 
      아들 하나 딸 하나가 더 생긴 것처럼 생각하고 싶을 겁니다. 
      이제 길러야 하는 딸이나 아들이 아니라 다 큰 아들이나 딸을 재수 좋케 
      얻어서 기쁘고 행복한 어떤 기대를 거는 순간이기도 할 겁니다. 
      
      양가 어른들의 심정은 이런 조마조마함과 기대가 섞인 새로운 심경을 
      맛보는 나날로 접어드는 세상의 변화를 느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 어른들을 올려 모시고도 신경 하나 쓰지 않고 사는 
      신혼 부부가 있다면 너무하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결혼이라는 일치는 사랑의 큰 결과로 맺어진, 섞어 합쳐 놓은 인생이며 
      앞으로 푹 잘 익혀 내야 할 인생 반죽이라 생각합니다. 성
      경의 구절을 구태어 들추지 않고도 이해가 가는 말입니다. 
      이렇게 결혼을 대전제로 제시하고 나면 소전제야 어떻든 결론은 뻔합니다. 
      머리가 둘이라 생각은 별도로 할 수 있어도 결론은 하나로 맺어져야 하고 
      살아온 생활이 서로 달라 체질이 다를지라도 살아갈 방향선은 
      한 방향으로 잡혀야 된다고 말입니다. 
      
      취미가 서로 다를지라도 취미로부터 얻은 기쁜 에너지는 둘이 함께 나누며 
      써야 할 인생의 힘이라고까지 말입니다. 
      두 사람의 살아가야 할 방향은 이상에서 풀어 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결혼 생활에서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 
      남녀 두 이성이 더구나 남남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 
      감정의 영역을 초월해 생각할 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감정은 흔히 우리의 눈을 어둡게 가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결혼 초기의 들뜬 감정은 주변을 이해하는 눈을 어둡게 할지 모릅니다. 
      두 사람의 행복은 양가 어른들의 행복입니다. 
      두 사람의 생활은 양편의 집안이 어떻게 합치되느냐 하는 노력장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살림은 우리 나라의 핵(세포)이 어떤 상태이냐는 뜻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은 이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신부(神父)들도 첫 생활은 보좌 생활을 하면서 
      주임 신부(성당을 맡은)님과 함께 생활합니다. 
      그 성당의 면모가 이 두 신부에게 달려 있답니다. 
      그 두 신부의 사목 활동의 결과가 곧 교회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 생활이나 신부(神父)로서의 생활에는 원칙적 
      의미에서 통하는 것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신부(神父)들의 생활은 하늘과 땅을 일치시키는 노력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도 있고 성서의 말씀과 인간 생활을 일치시키는 
      노력가라고 축소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비추어 볼 때에 두사람 두 이성(異性)이 같이 산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자신들을 위한 삶이 아니라 어떤 두 카테고리가 하나가 되기 
      시작하는 2인 합작 인생 공연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결론을 말한다면 두 사람 부디 “행복하세요”라는 말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잡지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