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항에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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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어항에서 삽니다    
      
      언젠가 나는 열대어를 열심히 기른적이 있다. 
      굽비, 불루 구라미, 네온 테트라, 엔젤, 베타, 스마트라, 고리도라스 등 
      별의별 녀석들이 어항을 넓은 자기들의 세상으로 알고 사는 것이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듯 참 재미있었다. 
      
      물 속의 향연은 언제나 펼쳐지고, 형형 색색의 고기들이 각본도 없이 활동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 실로 대자연의 순리적 연기와 같아 감탄이 절로 났다. 
      다양한 고기들의 율동, 유연한 방향 전환, 수초와 돌과 그리고 고기들로 
      어우러진 소형 대자연,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어울렸다. 
      
      한동안 그렇게 어항의 세계를 감탄하면서 멍한 미소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마 그 때 나는 나이가 무척 어렸나 보다. 그 다음 얼마가 흐른 후에야 
      나는 고기들의 생태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물고기라는 단어만으로 생각했던 것에서 열대어의 특성과 그 서식 방법을 
      알게 되면서 고기들 간에 종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차이를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종의 개념은 아예 존재 형식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 생태가 근본부터 다르므로 이는 육지의 동물들이 서로 다르듯 
      열대어들도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개와 닭을 동물이다며 한 울타리에 넣으면 곤란하듯 
      열대어들도 그런 것이었다. 
      서로 경계하고 싸우고 도망 가고 죽이고 먹고, 
      같은 종끼리도 큰 놈이 작은 놈을 먹어버리니 말이다. 
      살기 위해 투쟁하는 무서운 세상임을 알았다. 
      그래서 어항 속 사정이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다고 보았다. 
      아마 그때 나는 철이 들기 시작했나 보다.
      
      그 다음 어항 세계 속으로 나의 마음을 좀 더 깊숙히 밀어넣을 수 있었다. 
      이제는 물고기들 한 마리 한 마리의 성격까지 보이는 것이었다. 
      먹이를 물고 도망가서 구석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먹는 놈, 
      마구잡이로 먹이통 속에 들어가 휘저으며 진탕 먹는 놈, 먹이통 밑에 
      대기하고 있다가 흩어져 떨어지는 먹이를 재치 있고 간편하게 먹는 놈, 
      먹이를 물고 도망 가서 먹으려는 놈을 쫒아가서 빼앗아 먹는 놈, 
      별의별 놈들이 다 있었다. 
      
      공포에 질린 놈, 약은 놈, 치사한 놈, 게으른 놈 등 갖가지 성격들이었다. 
      이렇게 어항 속의 세계는 생명 유지를 위해 살벌하게 
      살아가는 험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때 나는 꽤나 성장했나 보다. 
      그 다음 얼마가 흐른 후 어항 세계 속으로 나의 생명을 불어넣듯 
      어항과 함께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돌 밑에 숨어서 눈을 껌벅이는 불쌍한 녀석에게 
      용기 내어 밖으로 나와 먹으라고 응원했고, 
      먹이통을 독차지하고 먹지도 않으면서 다른 녀석들이 오면 쫒아버리는 
      고약한 놈을 야단도 치고, 약한 녀석을 죽어라 쫒아다니며 괴롭히는 
      놈에게 그러지 말라고 타일러 보기도 했다. 
      그리고 험상궂게 구는 놈은 망 속에 가두어 두기도 했다. 
      
      한동안 그렇게 어항 속의 세상을 나는 분주하게 다니면서 녀석들에게 
      사는 법을 얘기하며 교육하고 지휘하기에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아마 그때 나는 신부다운 정신으로 봉사가 무엇인지 약간 깨달은 때였나 보다. 
      그 다음 얼마 지난 후 어항의 속속을 알다 보니 뭐가뭔지 모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알기 때문에 모르겠다는 말을 해보는 깊은 앎은, 모른다는 앎일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타이르고 가르치고 꾸짖으며 기른 고기가 알을 낳았다. 
      그 알을 잘 돌보며 부화를 시켰고 
      미세한 먹이를 주어 수천의 어린 것들을 길렀다. 
      얼마 안 가서 벌써 죽는 놈, 잘 크는 놈, 영 먹지 못하는 놈, 마른 놈, 
      뚱뚱한 놈, 작고 약한 녀석을 먹어 치우는 놈들이 있기에 말이다. 
      
      내가 네 어미를 얼마나 교육했는지 아니?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그 모양이냐! 
      고기들은 나를 이해해 주지 안았다. 나만 헛소리한 셈이었다. 
      그중 한 고기가 날 보고 참 괴상한 동굴(입)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걸 
      보고 저 동굴속에 들어가면 먹을 게 많을 거라며 나를 향해 
      시선을 묶은 후 유리벽을 비벼 대며 헤엄을 쳐 나오는 것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어항 속에 들어가 살 듯 있다보니 
      나도 작은 고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 나는 나름대로 세상의 쓴맛 단맛을 본 경험많은 
      늙은이가 되어 지쳐 있었나 보다.
      그 다음 얼마 후 나는 어항속에서 밖을 보게 되었다. 
      푸른 하늘로 이어지는 공간이라는 큰 어항이 내 앞에 있었다. 
      그 큰 어항에는 헝겁 가죽을 입은 동물, 털가죽을 입은 동물, 아무 것도 
      안 입은 동물 등 대체로 이런 세 종류의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작은 어항 밖에서 작은 어항을 디려다 보며 생각했던대로 
      큰 어항속에서 그 모양 그대로 살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두 어항을 살다보니 오락가락 몽롱해지며 
      초월 세계에까지 갔다 온 기분이었다. 
      아마 그 때 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던 나이었나 보다.
      (한국일보 19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