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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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기 위해서 
      
      사랑, 사랑,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무척 신비스럽다. 
      인간에게 반드시 있어야하는 에너지다. 
      우리 모두가 권력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이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는 인간들이기에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사랑하는 나머지 상대를 죽이고, 
      자신의 생명이나 자기와 관련된 자를 위하여 타인을 증오하거나 
      죽이게까지 되는 사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니 말이다.
      
      사랑을 논하려면 사랑해 본 사람이라야 한다고들 하지만 위에서와 같이 
      풀어놓은 대전제를 본다면 사랑 안해 본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하의 글은 사랑에 대한 나의 자그마한 설교일 것이나 
      실은 이런 사랑의 정의로 인해서 삶의 지표를 제대로 보며 살 수 있다는 
      결론을 얻어내고 싶다. 
      
      사랑이란 우선 그 사랑의 동기가 중요하고, 
      사랑의 실천도 중요하고, 사랑의 결론도 중요한 것이다. 
      이 사랑은 인간의 신비한 에너지원이랄 수 밖에 없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우라늄의 핵원료가 물질의 세계에서 강한 
      에너지를 발생하듯 인간을 인간으로 있게 하며 살게 하는 것은 
      사랑이란 에너지라고 맞추어 본다. 
      
      그러면서 인간의 이 사랑이란 에너지는 에덴 동산의 창조 때 받은, 
      생명을 운행할 특이한 유산으로 생명에 얹어 받은 
      신기한 에너지원이라고 나는 판단해 본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힘의 역학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얽히어 사는 것이 
      세상살이라 말할 수 있겠다. 
      역경 자체를 사랑하는 척도에 따라 역경일 수도 모험적 희열일 수도 있다. 
      사랑의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았다면 
      증오라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이 인간들이다. 
      사랑의 에너지를 냈는데도 제대로 안 되니 실망의 맛을 알게 되고, 
      강한 사랑으로 밀어붇였으나 뜻대로 안 됐기에 
      패배의 잔을 마신다는 표현들을 하게된다.
      
      어떤 청년이 술에 약간 취해서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는 표정이기에 뒤에서 한참 지켜보았다. 
      역시 내 생각이 들어 맞았다.
      “자네 천주교 신자인가?”
      “아뇨.”
      “누구에게 기도를 했나?”
      “마리아님께죠.”
      “원래 천주교에서는 기도의 최종 대상이 마리아일 수 없네만 
      좌우간 무엇을 기도했어?”
      “너무 괴로워요. 신부님, 여자는 그렇게도 속이 좁은가요? 
      오해를 풀고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요.”
      “뭘 그런 걸 갖고 기도까지 하나! 
      그런 건 사실 기도감이 아니고 인간의 능력 감이야. 
      자네가 고 정도 문제 해결할 능력이 없으면 그 여자를 사랑할 생각을 말아. 
      우리에게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사람들이 위인이듯 
      저 마리아는 과부로 외아들이 벌거벗겨 공개 처형당하는 최상의 고통을
       홀몸으로 받아넘기신 최고의 성인이신 여성이야. 
      적어도 자네는 남자가 이게 뭐야! 남자 체면 좀 세워 주라. 응?”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김샌 듯하기도 하지만 뭔가 얻어맞은 듯 
      멍하고 빙글빙글 웃는 듯 마는 듯 머뭇거리다 돌아갔다. 
      나의 느낌으로는 그 청년의 사랑은 기대할 수 없는 사랑이겠고 
      믿을 만한 사랑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는 노래를 부르며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에 빠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나는 반대한다. 
      “제일”이란 단어를 너무 슆게 풀이한 잘못에 있다고 본다. 믿음, 소망, 사랑 
      이라는 셋 중에서 소망을 빼고 사랑을 말한다면 기대할 수 없는 사랑이고 
      믿음을 빼고 사랑을 이야기 하면 믿을 수 없는 사랑일 수 밖에 없다. 
      
      사랑이 사랑이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고 기대할 만 해야 되는 것이다. 
      사랑다운 사랑을 하려면 우선 믿음과 소망을 전제해야 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전에 믿을 만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이가 기대를 걸 만한 인간부터 되어야 한다. 
      이런 인물도 못 된 주제에 사랑부터 하려고 
      한다면 바로 그 사람은 동물의 생식적 사랑만 아는 매우 유치하고 
      창피한 감정적 몸부림의 인생들이다. 
      권력애, 금력애, 이성애 모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