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잘 지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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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잘 지냅시다.  (마태오 13,24-43)  
      
      불을 끄고 조용히 촛불을 켠 채 생각에 잠겼다.
      미국 로스안젤스의 흑인 폭동 사건이 기분을 언짢게 한다. 
      남북 통일 문제가 우리를 지루하고 애타게 한다. 
      당내 무슨 후보 투표 문제로 좀 신경쓰게 한다. 
      지역 감정이 어찌나 깊게 골이 패어 있는지 속상하다. 
      세대 차가 심해진 노인층들과 요즈음 기성 젊은 세대 간의 
      문제는 아예 언급하기도 힘들다. 노사 문제는 어떻고. 아직도 한참 가야 
      할 남녀 차별 같은 것은... 등등을 생각하다가 흐릿한 잠에 들었다.
      
      - 꿈 이야기다. -
      "똑똑똑"
      "누구십니까?"하면서 나는 문을 열지 않고 귀속 신경을 소리나는 쪽으로 
      곤두세웠다. "접니다."라는 낯선 음성에 모든 것을 즉시 알았다. 
      꿈속이었으니까... 그리곤 문을 조심히 열었다.그는 온몸이 흙투성이었다. 
      머리칼은 꺼출한데 잔뜩 엉키고 흩어져 있었다. 
      옷은 건드리면 부서져 날릴 듯 삭아 버린 상태였다. 
      그는 망우리 공동 묘지에서 무덤을 제치고 
      지금 막 나와 이 밤중에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나의 공상 때문에 나가라는 엄명을 받고 억지로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방금 전에 '나같으면 1,000년 전 사람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을거야. 
      왜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야단하듯 싸우고 헐뜯고 악착 같아야 
      되는지 모르겠어. 참 한심한 노릇이야. 흑인들은 왜 그래. 
      왜 남과 북을 나누며까지 권력에 눈이 어두워 요 모냥이냐구 승만 씨, 
      일성 씨...그냥 합쳤으면 됐을걸...'이라며 혼자 
      투덜투덜 중얼중얼 염불 반 기도 반을 지꺼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작 200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 
      문을 열어 주면서 나는 긴장으로 설레이기까지 했고 
      속으로는 무엇 무엇들을 조심하면 된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것은 200년 전 사람이라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그는 나를 한참이나 이상한 눈으로 응시하고나서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눈길을 돌리며 무엇인가에 놀라고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방에는 200년 전에 그분이 사실 때는 전혀 상상조차 
      못하던 것들이 많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200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며 
      우선 통할 수 있는 질문부터 찾아냈다. 
      그가 질문할가 봐 나는 질문을 연속으로 했다.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습니까? 
      그 때 키는 몇 척이었으며 몸무계는 몇관 정도였습니까? 
      그리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셨습니까? 
      슬하에 자녀는 몇 명이었으며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대화는 역시 적중하여 잘 통했다. 
      나는 자신이 좀 붙어서 이분을 더 편하게 해드려야 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배가 고프십니까? 목마르지 않습니까? 냉수 한 잔 드시겠습니까?" 하는 
      가운데 점차 그가 안도의 기분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냉수? 좋습니다. 한 바가지 주십시오."하기에 나는 바가지가 없어서 
      새로운 그릇인 컵이 있다고 설명해 드리면서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를 
      한잔 따라 주었다. 문제는 이 때부터 였다. "거 참 비싼 유리잔을 쓰십니다."  
      그리고 그 하얀 궤짝에서 어쩜 이렇게 시원한 물이 솟아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그건 이렇구 저렇구 갑자기 설명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 마침 공교롭게 삐리리 삐리리 하고 전화가 왔다. 
      반사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응,나야,뭐? 그래! 언제야? 알았어! 그럼. 물론." 그리곤 끊었다. 
      이상한 뭉치를 들고 확실한 표정을 지으며 갑자기 혼자 떠드는 나를 보다가 
      이제 정신을 차렸느냐는 그분의 표정이었기에 나는 부산의 친구가 
      그러는데 모친이 돌아가셔서 내일 장례라니 가봐야 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귀신을 대하듯 나를 공포의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아니고 이건 전화라는 건데요." 하며 설명을 했지만 
      영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할말을 잃고 나는 멍하고 있다가 무심결에 리모콘으로 전축을 켰다. 
      너무나 무섭고 놀라 그는 새파랗게 질려 허겁대고 있기에 
      나도 놀라서 이번에는 방의 스위치를 올렸다. 
      갑자기 온 방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바로 그 순간 그분은 너무 놀라 기절했고 그만 영영 숨이 멎고 말았다.
      
      "어 참, 죽으려면 왜 하필 여기서 죽지? 무덤에 돌아가서 죽지! 
      이거 어쩌지? 나 참 이 사람 이해 못하겠네!" 하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폈다. 
      나는 정말 200년 전 사람과 이해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년 전 사람들은 200년 전 사람들끼리 200년 전에 
      산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고 결론을 맺었다. 
      그렇듯 우리는 이 시대에 태어나 이 시대를 숨쉬며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지금 함께 사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로서 
      서로 귀히 여겨 주며 만족해야 할 일이다. 
      오늘 이렇게 함께 서로 보면서 살게 된 우리 모두는 
      참으로 억겁의 인연이 있나보다. 
      우리가 우리를 지금 이해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과거나 미래가 우리를 이해해 준다 한들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에게는 지금의 우리 이웃이 더없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 서로 갈라져 험하고 무서운 골짜기를 만들며 
      힘들여 살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그러지 말고 함께 이해하며 합쳐 가며 살도록 하자. 
      지금 이대로의 우리라면 그 누구도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다고 그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