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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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벌써 달력을 12번 넘겼습니다. 
      이렇게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지난 한해 동안 
      많은 것들을 넘기며 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시간을 한 시간 한 시간씩 넘기며 
      지냈던 것이 새삼 떠오릅니다. 
      마치 종잇장들을 한 시간에 한 장씩 넘기듯 말입니다. 
      그 시간시간에다 저는 제 삶의 흔적들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시간들은 제 삶의 흔적들을 지니고 
      원고지가 싸이듯 한곳에 싸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타임 머쉰(Time machine) 이야기처럼 타임 이레이저(Time eraser)가 
      있어 저의 잘못된 과거 시간들이 담겨진 원고지들을 
      되찾아 지워 버릴 것들은 지워 버리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시간 지우개를 누군가가 고안해 보면 참 좋겠습니다. 
      기왕이면 잘못된 시간들을 지우고 나서 다시 새로 잘 그려야 하니까 
      타임 드로잉(Time drawing)이라는 것도 함께 만들었으면 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에게 주문을 해야할지, 국립 시간 과학 연구소가 
      있다면 제작이 가능할 지. 여하튼 제작이 가능하다면 좋겠습니다.
      
      기왕 타임 이레이저(Time-eraser)나 타임 드로잉(Time-drawing) 
      이라는 말을 했으니 윤리성 측정 검사기라는 것도 제안해 봅니다. 
      일 년간의 시간은 8,760시간입니다. 이중에서 하루에 평균 
      잠자는 시간은 일곱시간으로 볼 때에 2,555시간입니다. 
      기타 먹는 일이나 생리 보존상의 기본이 되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약 5,200시간 정도인데 이 시간들을 
      윤리성 측정 검사기(倫理性測定檢査機)에 통과시켜 본다면 
      몇 점이나 나올가 하는 생각을 혼자서 해봅니다. 
      윤리성 측정 검사기라는 것이 다행히도 없어서 그런대로 
      숨이라도 제대로 쉬고 큰소리치며 살 수 있는 것이지, 
      정말로 있다면 그건 참, 살기 곤란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지울 수 없는 지나간 시간들, 새로 그릴 수 없는 흘러간 시간들, 
      시간들에게 미안하고 그 시간 안에 들어온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 
      공상 과학으로 자신의 과오들을 정리하려 하기보다는 미래를 보다 
      아름답게 꾸며 가며 과거와 연결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겠습니다. 
      
      내년부터는 멋진 인류사적 작품 격의 인생을 꾸며 나가시기 바랍니다. 
      (0시를 알리는 시보계의 소리를 듣고)이제는 1989년입니다. 
      청취자 모든 분들께 새해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 인사를 들으시는 분들은 특별히 금년에 재수도 좋고 
      행운이 깃드시기 바랍니다. 
      천구백팔십구년이라고 말하면서 얼핏 떠오르는 
      숫자는 어떤 삼점의 전화 번호입니다. 
      그 상점의 번호가 사구팔구이기 때문에 외우기 좋아 
      장사가 잘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번호는 프리미엄이 따로 붙은 비싼 번호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금년은 일구팔구이니까 일어나고 팔고 하는 것이 연상이 됩니다. 
      모든 분들이 하시는 일들이 점점 일어나고 잘 팔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금년은 행운의 프레미움이 붙은 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KBS 국군의 방송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