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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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례자 요한의 죽음    
    
    오늘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음에 이르게 한 헤로데왕은 집회서에서 나오는 다욋왕과 똑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부하의 아내를 취하였고, 헤로데는 동생의 부인, 
    즉 제수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잘못을 한 후에 참으로 깊이 뉘우쳐서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얻게 되지만 헤로데는 끝내 자기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오라고 명령을 합니다. 다윗왕 앞에 나와서 다윗의 잘못을 
    꾸짖었던 예언자들 처럼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의 부정함을 꾸짖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그러한 태도가 헤로데의 아내, 그 부정한 헤로디아에게는 한없이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잔치에 초대 되어 온 손님을 즐겁게 해준 헤로디아의 딸에게 
    헤로데가 “나라의 반이라도 달라고 하면 주겠다.”고 말한 것은 허세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정도(正道)가 어긋난 말에 대해서, 다시 말해 그때의 자기 기분에 따라서 한 말에 대해서 
    남이 본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진다는 것도 따져 보면 위선일 수 밖에 없습니다. 
    허세와 위선으로 헤로데는 끝내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전설에 의하면 헤로데와 그의 
    아내 헤로디아는 똑같이 살이 조금씩 썩어들어가며 몸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는 몹쓸 병에 
    걸려서 괴롭게 죽었다고 합니다. 임금이 백성들을 통치함에 있어서 그 통치권이 누구에 
    의해서 자기에게 주어 졌으며 그 통치권을 누구를 위해서 또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잘 모르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헤로데는 하느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하느님을 
    뒷전에 두고 인간의 생각만으로 통치권을 행사 해서 바른 말을 하는 세례자 요한을 
    억울하게 죽임으로서 2천년 동안 성서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 찍힌 것 또한 그들이 두고 두고 받아오는 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들 각자에게도 조그마한 권한이 주어져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로서의 권한, 어머니로서의 권한, 본당 사제로서의 권한, 
    이 권한들이 도대체 누구로부터 내게 주어졌느냐? 
    나는 어떻게 해서 이 아이의 아버지가 됐는가? 왜 나는 이 아이의 엄마가 됐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고 그때 그때의 감정으로, 즉 헤로데가 ‘나라의 반이라도 
    달라면 주겠다’는 식의 기분으로 세례자 요한을 죽임과 같이 우리도 화가 나는 바람에 
    그야말로 기분으로 권한을 남용해서 아이들에게 잘못한 일이 없는지 각자의 
    가정 생활을 통해서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도 다윗처럼 깊이 뉘우쳐본 일이 있는지를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 여자가 난 사람 중에서 세례자 요한 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다.”고 하시며 
    예수님께서 그토록 칭찬해 마지 않으셨던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하찮은 죽임을 당합니다. 조그만 소녀의 ‘목을 쟁반에 담아 주십시오’라는 그 말 
    한마디에 그 위대한 세례자 요한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왜 예수님은 위대한 세례자 요한을 그렇게 비참하고 값 없이 죽임을 당하게 두셨을까,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의 앞날을 예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는데 
    왜 가만히 두셨을까 하는 안타까움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사람의 삶이란 죽을 때도 위대하게 죽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세례자 요한의 생명을 이 세상의 사람들 눈으로 보면 
    너무나 하찮고 비참한 죽음으로서 결론을 맺어 주셨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죽을 때에도 위대하게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시각이며 그것은 또한 우리 인간들의 자만심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높고 낮고 위대하고 작고의 참된 판단은 하늘 나라에서의 척도이지 
    이 세상의 잣대로 두시지 않으셨다는 것, 즉 우리들 사람의 판단에 맡기시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께서 내리시는 판단을 그대로 시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뭇사람이, 대중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말씀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신다는 것을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성서를 통하여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메시아시고 우리에게 너무나 좋은 복음을 남겨주신 분이시란 것을 
    더욱 가까이 느끼면서 우리들의 믿음을 실제적으로 우리 현실 생활에 맞게, 
    내 자신의 생활을 예수님의 판단에 맞게 살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집회서 47장 2절에서 11절 / 마르코 복음 6장 14절에서 2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