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부족한 머리로서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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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들 부족한 머리로서는… (2)     
    
    우리는 부족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서 예수님을 치려고 
    하듯이 오늘도 우리는 우리 마음에 안드는 계명을 어기면서 윤리의 규범이신 
    예수님께 오히려 욕을 하거나 반항을 한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나는 나다’라고 이야기하신, 바로 그분인 
    예수님이 ‘나는 나다’ 하신 이 말씀을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읍시다! 
    왜냐하면 우리 머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머리가 이해할 수 없는 굉장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이며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족함으로 그 부족한 머리를 
    가지고서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혹자는 ‘나는 믿음이 안 생긴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믿음이 생긴다 안생긴다 그런 감정이 아니라 믿음은 무조건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알아서 믿는 게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믿음, 곧 신앙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성립되는 
    신뢰는 믿음의 덕성을 말하는 신의에 해당됩니다.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머리를 기준으로 상대방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엄마가 자기 자식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도 바로 자기 식으로 
    자식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한 60%나 70%만 알아들어도 대단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100을 이야기하면 교우들을 한 60%만 듣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족한 머리로 생각하며 사는 육신의 세계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른 차원의 세계, 초자연적 세계에서는 제가 100을 얘기하면 
    반짝하는 순간에 여러분은 100 모두를 이해하게 됩니다. 
    
    바로 그런 세계가 초자연의 세계 육신을 초월한 죽음의 세계이며 천당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으로 이 세상에 살고있으므로 저 세상을 모르는 게 정상입니다. 
    자식이 내 말을 안듣고, 내가 내 자식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게 정상인 것입니다. 
    그것을 ‘왜 이해하지 못할까?’ 하고 
    제 가슴을 쥐어뜯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병이 됩니다. 
    그게 바로 비정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도 인간에게 죄 지을 자유를 주셨는데, 
    왜 인간이 인간에게 죄 지을 자유마저 박탈하려고 하십니까?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많듯이 죄 지은 자유가 있어야 통회할 자유도 있는 겁니다. 
    
    ‘저렇게 말을 안듣는 자유를 가진 내 자식을 내가 만들었구나’ 하고 
    깊이 생각할 때 하느님의 신비스런 능력을 느끼며 
    오히려 속썩이는 자식을 통해서 더욱 더 거대한 세상을 맛보며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감탄하여 더욱 더 깊은 믿음을 지니고 삽시다. 
    
    창세기 17장 3절에서 9절 / 요한복음 8장 51절에서 5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