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기도문
ㆍ조회: 1113  

     
     
     ◆ 주의 기도문       
    
    오늘 복음은 주의 기도문 내용을 예화(例話)를 들어 설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 이 몹쓸 종아 나는 네 빚을 탕감해 주었지 않았느냐?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 
    아니냐? 』 하는 이 이야기는 주 기도문에서 
    ‘우리가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하는 내용을 예로 든 것입니다. 
    주의 기도문에는 구약의 십계명이 순서 그대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그 나라가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
    하는 전반부는 제 1 계명에서 제 3 계명까지라고 설명할 수 있으며 
    뒷부분은 우리들의 실제 생활에 맞게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약간씩 변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는 후반부는 제 4 계명, 부모에 대한 것과 상통하는 것이며 
    사람에 대해서는 
    『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
    또 물질에 대해서는 
    『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
    하는 식으로 십계명을 그대로 옮겨 놓으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참으로 복잡하게 사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줄여서 
    그것만 잘 지키고 따르면 착하게 살게끔 딱 집어서 십계명으로 요약한 것만도 
    신기한데, 그것을 ‘하지말라 하지말라’ 하는 식의 딱딱한 계명도 아니고 
    부드러운 시와 같은 운율로 기도문을 만드셨으니 예수님이야 말로 참으로 
    위대한 시인이 아니십니까? 주의 기도문을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은 
    주의 기도문이 성서 전체를 요약한 것이라고도 하고 그 기도문을 더 짧게 
    요약하면 딱 두글자 ‘사랑’이란 낱말 하나로 표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하셨고 ‘사랑’이 바로 
    그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십계명은 예수님에 의해서 기도문으로, 
    즉 ‘사랑’이란 한마디 말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이란 새 계명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도 
    주 기도문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치심이 이 짧은 기도문 속에 요약되어 있으니 
    참으로 기발한 방법이 아닙니까?
    
    우리는 주의 기도를 암송할 때, 그냥 입에 배인 소리로서가 아니라 진정 
    그 기도문 구절에 담긴 이 심오한 뜻을 가슴으로 새기며 기도해아 됩니다. 
    미사에는 고백의 기도, 사도신경, 주의 기도 등 
    주요 기도문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미사에 바치는 똑같은 
    기도문이라 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그 느낌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어떤 날은 ‘용서하듯이’ 하는 ‘용서’라는 낱말에 마음이 쏠리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란 그 호칭에 
    가슴이 그만 멍멍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드릴 때마다 주 기도문은 
    이와 같이 계속해서 내 안에서 완성되는 깊은 맛이 있습니다. 
    
    개신교는 미사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목사의 탤런트적 능력에 의해 교회가 이끌어져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미사성제의 힘으로 이끌어집니다. 신부가 아무리 못생기고 
    바보스럽다 하더라도 순서에 의해 미사 집전만 잘 하면 됩니다. 
    그러기에 개신교는 목사나 장로들, 그러니까 결국은 인간의 힘에 의해 
    지탱되지만 천주교는 수 천 년을 같은 형식으로 집전되어온 미사의 힘으로 
    천주교회가 이끌려 왔습니다.  간혹 천주교의 맛에 덜 익은 신자들이 
    개신교 구경을 하고 와서는 ‘거기 가니까 화끈 하더라. 
    성당은 매일 똑 같은 형식에만 치우쳐서 지루하다.’고 빈정대는 소리를 
    합니다만 그런 사람은 차라리 쇼 구경을 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천주교에서 비록 똑같은 기도라 하지만 미사에 나오는 그 기도보다 더 수준 
    높은 기도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매일 똑같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목사님이 기도를 잘하고 설교를 잘한다 해도 우리의 미사경문에 
    나와 있는 기도문보다 더 완벽한 기도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미사의 부분 부분이 잘 짜여져 있고, 그러므로서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400년 역사는 겨우 4 살짜리 아기이며 천주교의 2000년 역사는 
    이 십 세의 청년이 아닙니까? 
    청년이면 청년다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초컬릿 주세요, 
    뭐 주세요’ 할 네 살짜리 꼬마가 아니라‘아버님, 제가 아버님을 위해서 
    뭐 해드릴 것이 없습니까?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하는 
    이런 관계로 아버지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의 기도와 사도신경의 뜻을 음미하면서 그 안에서 여러분 모두가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서 3장 25절, 34절에서 43절 / 마태오복음 18장 21절에서 3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