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헛된 계명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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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헛된 계명들 (2)  
    
    오늘 복음서에는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유다인 무리들에게 
    화를 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때 그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정식으로 도전장을 냅니다. 
    예수님을 죽이겠다는 자신만만한 도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사여탈을 주관하시는 분이셨기에 그들의 도전이 
    참으로 가소롭고 고까우셨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바로, 너희들이 나를 죽여도 나는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하시는 그 말씀이셨습니다. 그들이 심오한 그 말씀의 뜻을 
    알아들을리 없었습니다. “46년이나 걸려 지은 성전인데 감히 사흘에?” 
    하면서 비웃으며 끝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주님의 역사하심을 보십시오.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성전이 지어졌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은 허물어지고 세계 곳곳에 수많은 성전이 지어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 답십리성당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그 당시의 유다인과 같은 어쩌면 그보다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겐 이 성당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앞을 지나다니면서 그냥 무심히 스쳐지나갑니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 자리에 
    돈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으면 돈이 생기느냐?’ 고 
    우리들에게 반문합니다. 그들은 돈을 벌어 주는 하느님을 믿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은 그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유다인처럼 우리들을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두십시오. 그들이 유다인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듯이 
    우리를 십자가에 못박으면 우리는 못박힙시다.
    저희들이 우리에게 가시관을 씌우면 즐겁게 가시관을 씁시다. 
    우리는 하느님의 십계명만을 지니고 살고 있으므로 금력과 권력의 계명에 
    매달려 사는 그들에게서 주님처럼 십자가에 처형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들이 진정 죽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하느님께 도전하라고 하십시오. 
    그들이 후회 할 때는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값비싼 이 인생을 유한한 세상의 헛된 계명을 좇아 다니다가 결국 죽음 앞에 가서 
    그들이 이 세상에서 그토록 애지 중지하며 숭배했던 그것들이 아무 값어치가 없는 
    것임을 깨달을 때 그들은 무서운 고통을 느끼며 죽음의 세계로 빠져들어갈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심을 알았으면서도 저들의 계명에 매달려 외면했던 그들이 죽을 때는 
    그토록 비참하기만 할 뿐 죽는 순간까지도 인간다움을 이 세상에 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아름다움을 남기면서 죽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유다인들을 예수님께서 나무라셨듯이 
    세상의 계명을 좇아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분노하심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보다 더 강한 믿음으로 주님의 십계명만을 옳게 지키면서 이 사순절을 맞이합시다. 
    
    출애급기 20장 1절에서 17절 
    고린토 1장 22절에서 25절 
    요한 복음 2장 13절에서 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