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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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       
    
    오래된 이야기 중에 다음과 같은 교훈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현인이 길을 걷다가 길에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중 한사람이 현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처음엔 이렇게 되었는데 어쩌다가 저렇게 되고 또 그렇게 되다 보니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맞지요?”
    하더랍니다. 현인이 그 얘기를 자세히 듣고서 
    “아! 그렇군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그러자 상대편 사람이 또 현인을 붙들고, 
    “그게 아니라 처음엔 이렇게 됐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고 
    또 이렇게 이렇게 됐으니 제가 맞지요?”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인이 가만히 그 얘기를 듣고 나서 
    “그렇습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라고 또 대답했습니다. 
    곁에 서서 멀거니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이 현인에게 대들듯이 
    항의를 했습니다. 아마도 현인이 하는 말이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아니, 판정을 해주실 바엔 확실하게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다고 해 
    주셔야지 둘이 다 맞다 그러시면 도대체 뭡니까?”
    이번엔 현인이 그 사람의 항의를 잠자코 듣더니 
    “그러구 보니 당신 말도 맞구려.”하더랍니다. 
    
    저는 어릴 때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런게 어디 있느냐? 현인이면 현인답게 옳고 그르고를 확실히 
    가려야지 그러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현인이냐?’ 하고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 나타난 모든 것을 보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계명은 
    있어도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한 말씀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서로 용서해라라는 말씀은 있어도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라는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옳고 그름은 인간 내면에 대한 채근이며 또 한사람이 옳다 하면 
    다른 한 사람은 흠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것 마저도 시간이 지나서 
    감정의 먹구름이 말끔히 걷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기에 현인은 
    판단하시지 않고 참으로 현명한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 현인은 오직 하느님만이 사심판과 공심판으로 인간을 심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래도 살아가고, 저래도 살아가라는 인간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묵인하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판단하는 자기 머리, 자기 지식 때문에 
    수많은 사람과 맞부닥치고 있는 것입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겁니다. 부부싸움도 마찬가지 입니다. 
    요란뻑쩍한 20대 부부싸움과는 달리 50대 60대의 부부싸움을 보면 한쪽에서 
    따발총처럼 따다다다 하면 가만히 죽은듯 듣고 있다가 그쪽에서 지칠 정도가 되면 
    ‘이제 다 됐어? 밥줘.’ 라고 그럽니다. 이러는 우리네 어른들 싸움, 
    판단을 안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현명한 것인지......  젊었을 때, 
    또는 막 신경질이 났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았는지......
    그것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서 이제 우리는 판단하지 말고 
    그저 모든 것을 있는 상태 그대로 인정을 하면 됩니다. 
    ‘저 사람이 성격이 그러니까 그렇구나’ 그렇게 인정하면 됩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각 달리 태어났기 때문에 성격이 각각 다르고, 
    생각이 각각 다른 것이 정상입니다. 
    나와 똑같은 환경에 처해서 나하고 똑같은 생각, 나하고 똑같은 판단을 
    왜 안하느냐고 말하는 것은 그런 내가 바로 신경질에 걸려 있다는 증거이며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도 한번 하면 두번 하게 되고, 그러다 자꾸 반복하다 보면 
    버릇처럼 돼서 결국 나만 중증 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 나하고 같을 순 없지. 저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그럴테지.” 
    어떻게 보면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그것이 곧 남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나 자신을 큰 그릇이 되도록 다듬는 것이 됩니다.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현인처럼 우리도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 현명해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