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의 참뜻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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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례성사의 참뜻 (2)    
    
    초세기 때는 세례받을 때 본명을 짓지 못했습니다. 
    본명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5세기 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초기의 영세자들이 그 당시에 세계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지중해 연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그것도 3세기라는 짧은 역사에 급속도로 퍼질 수 있도록 
    한 것을 보면 초기에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을 때 우리들보다는 
    확실히 더 뜨겁게 받아들인 분이란걸 알 수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예수님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로서 자기들이 그간에 예수님께 했던 
    행동에 책임을 느꼈을 것이며 진정 회개를 했던 분들이셨으므로 그분들이 
    증언한 것은 하나같이 사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자기가 본대로 이야기하려 했고 자기가 잘못했던 것을 
    깊이 회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뜨겁게, 오늘의 우리보다는 
    훨씬 책임성 있는 세례를 받으셨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믿음이 세례를 받는 순간에 찡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믿음을 길러온 사람들이 바로 그 계기에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지 오래 되건 안 되건 세례를 받은 우리는 이 부활의 시기에 다시한번 
    내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며 내 생활이 과연 믿음으로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참으로 회개하며 살고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남을 위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를 위하여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각자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더 커지도록 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이 말뜻은 곧 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된 것이며 또한 우리가 선택된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차츰차츰 넓어져서 큰 데를 보아야지,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좁디좁아져서 그 시각이, 즉 생각하는 면이, 오로지 나 자신에만 
    내 중심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것을 어찌 신앙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인이란 바로 하느님의 편에 서서 이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내려다 볼 줄 아는 넓은 시각, 넓은 생각 넓은 마음을 지니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마음을 가진 이어야 합니다. 
    즉, ‘내 인생의 주역은 내가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내 인생의 주역이 되십시오. 
    그래서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당신께서 오셔서 살아주십시오.’ 
    하는 것이 바로 믿는 이들의 삶이어야 합니다. 
    
    믿음을 제대로 사는 삶!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길입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이렇게 위대한 길로 한걸음 한걸음 변화되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36절에서 41절 / 요한복음 20장 11절에서 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