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덩어리의 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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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한덩어리의 흙입니다   (2)   
      
    답십리에 좋은 밭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밭은 곧 답십리 성당이며 
    그 밭을 이루고 있는 흙은 바로 신자 여러분입니다. 
    서울에는 땅 한 평에 몇 천 만원 씩 하는 데가 있다고 합니다. 
    땅이 비싼 것은 결코 그 흙의 질이 좋아서 비싼 것이 아니라 
    그 땅이 있는 위치에 따른 값매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땅을 보실 때, 땅의 위치에 따라 보시는 것이 아니고, 
    그 땅을 이룬 흙의 질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흙장난을 하면 
    야단을 맞고 자랐습니다. 흙은 더러운 것이라고 옷에 묻은 흙을 
    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앙을 가지면서 우리는 흙을 우리가 
    죽어서 돌아가야 할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십시오’ 하며 머리에 
    재를 받을 때는 더욱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곧 봄이 오면 여러분은 더욱 짙은 흙냄새를 맡게 될 것입니다.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감을 생각해야 할 여러분은 그 진한 
    흙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안식년을 보내면서 몇달 동안 
    흙을 파는 일을 하며 살아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하며 보내는 시간보다는 흙을 파며 흙과 대화를 
    하며 보내는 그 시간에 저는 더욱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땅 속에는 별의별 미생물이 살고 있었습니다. 
    각종 곤충의 애벌레들이 또한 그 속에 있었습니다. 
    온갖 나무의 뿌리들이 서로 얽혀서 손은 마주 잡기도 했고 피하기도 했고, 
    갖은 곡예와 춤을 추면서 자리한 모습이 그 땅 속이었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땅은 그 모든 것들이 살아 가는 갖가지 사연을 침묵으로 덮어 주었고 
    특히 겨울 땅은 그 모든 것들에게 깊은 겨울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는 
    편안한 안식처이기도 했습니다. 봄이 되면 온갖 풀과 나무들을 소생시키는 힘찬 
    생기를 뿜어 그들이 땅위로 솟아오르게 해주고, 여름이면 퍼붓는 빗방울을 모두 
    받아 자신이 배태시킨 생물에게 물과 영양으로 공급해주고, 
    가을이 와서 그 물과 영양으로 나무 위에는 온갖 열매가 탐스럽게 맺어지면 
    그 영광은 오직 나무의 자랑꺼리로 돌려버린 채 다시 겨울이 되면 꽁꽁 
    언 가슴 속에 생명을 잠재우며 묵묵히 엎드려 있는 참으로 겸손한  땅입니다. 
    
    간혹 사람들이 너무나 서러워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할 땐 죄없이 그대로 
    맞아주는 땅이며,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쓰여져 주는 땅입니다. 
    집을 지으려고 하면 집터가 되어주고, 묘를 쓰려고 하면 묘터가 되어주는 
    땅입니다. 사람이 피곤해서 편하게 쉬고 싶을 때 앉을 수 있게 해주는 
    땅이며, 더 편히 쉬고 싶을 때는 눕게도 해주는 땅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시신이 되면 사람들은 보기조차 싫어하지만 땅은 기쁘게 
    우리를 받아 주고 또한 종말까지 영원히 우리를 품어줄 땅입니다. 
    
    우리는 흙입니다. 하느님께서 흙으로 빚으신 몸들입니다. 
    이 살덩이가 바로 흙덩어리입니다. 우리는 걸어다니는 흙입니다. 
    움직이는 흙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와 땀, 
    그리고 생명까지도 바치셔서 사들이신 비옥한 흙입니다. 
    이 흙들이 세상 속에 별의별 흙들과 섞여서 살면서도 우리는 항상 
    주님의 흙으로 비옥함을 스스로 지녀야 할 질 좋은 흙인 것 입니다. 
    
    이 사회, 움직이는 흙 속에는 좋은 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마구 버린 오물 때문에 죽어가는 흙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런 흙이 다시 재생되기 위해서 태양을 받으며 바람을 통하며 
    빗물을 받아 씻어 내면서 그 고통을 이겨내고 새로운 
    흙이 되기 위해 지금도 변화되어 가고 있는 흙도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흙 속에서 우리들은 독소로 채색되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주님의 흙입니다. 
    사람과 흙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친한 관계입니다 (身土不二).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움직이는 흙인 우리는 일반 사회인들, 
    즉 오염된 흙과는 뒤섞어 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사들이신 흙인 우리는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며 질투와 분쟁을 일삼는 흙들과는 함께하지 않으며 
    그 흙들을 정화시키는 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비옥한 답십리의 돌아다니는 흙이란 점을 
    명심하면서 사순절에 이마에 재를 받은 우리들 각자가 바로 
    나는 한 덩어리의 흙이란 점을 명심합시다. 
    
    창세기 9장 8절에서 15절 / 마르코 복음 1장 12절에서 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