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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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역사 (1)   
      
    오늘 복음에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대자연의 법칙을 인용하신 
    참으로 깊은 의미가 담긴 말씀입니다.
    
    6.25 때 어떤 군인이 근 한달 동안 폭탄과 포탄이 작열하여 사람이 살 수 없도록 
    폐허화 된 한 마을을 점령하여 수색을 하다보니 폭격에 맞아 비스듬히 
    쓰러져가는 집안에서 가느다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 군인이 문을 열어보니 아기의 입과 옷에는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있고, 곁에 
    누워있는 어머니는 야윌대로 야위어서 이미 죽은 지가 오래되는 시신이더랍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어머니의 열 손가락이 다 잘려있었고 아기는 그 어머니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를 받아먹으며 끝내 살아남았더라는 것입니다. 
    포탄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그 어머니는 젖이 나오지 않자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잘라 흘러내리는 피를 젖 대신 아이 입에 
    물려주며 그 아이를 살린 것입니다. 
    
    사람만이 그런 건 아닙니다. 동물에도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미미한 곤충인 거미 종류 중에도 어떤 종류의 거미는 등에 진을 내어 새끼들에게 
    먹이다가 새끼들의 이빨이 좀 세어지면 자기 등의 껍질을 무르게 해서 자기 
    새끼들이 파먹을 수 있도록 하여 끝내는 자신의 몸을 새끼들이 파먹도록 하여 차
    츰차츰 죽어가는 거미가 있습니다. 
    
    새 중에는 펠리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펠리칸이라는 새는 자기 몸이 
    쇄진하여 새끼들에게 먹이를 구해다가 먹일 힘이 없으면 자기 부리로 자신의 
    가슴을 쪼아서 심장에서 나오는 피를 제 새끼들에게 먹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힘이 있는 한 자기 부리로 제 살점을 뜯어서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면서 어미새는 죽어갑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성체성사의 상징으로서 펠리칸의 예를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연의 신비로움은 결코 사람이나 동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식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식물의 새 싹은 그 어미가 되는 씨앗 속에 든 양분을 
    먹고 자랍니다. 바꾸어 말하면 돋아나는 새싹을 위해 그 싹이 배태된 씨앗의 
    생명인 영양소가 완전히 먹혀주어야만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린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신비스런 자연의 법칙 안에 얼마나 깊은 뜻이 내재되어 있습니까? 
    모든 생명의 역사는 ‘사랑’이란 끈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 없이는 이어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생명의 역사입니다. 
    지극한 사랑 없이는 자식을 키울 수 없으며 새끼를 낳아 기를 수가 없습니다. 
    이 신비한 자연의 섭리 안에서 우리는 세상만물을 지으신 하느님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며 다시한번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언으로 역사(役使)해 보이시는 
    오묘한 사랑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 또한 그러셨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 이렇게 사셨고 또한 그래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분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사랑의 법을 가르쳐주셨고삶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도 바로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