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가 헛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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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가 헛되다   
    
    우리는 지금 한 해의 결실을 맺는 중추가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장 2절 아래에서 보면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하는 
    탄식조의 구절이 나옵니다. 
    사람이 하늘 아래에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목적을 두고 이 세상에서 결실을 맺으려고 한다면 참으로 헛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그것이 헛되다는 것을 모르고 나이가 들어서도 
    철부지마냥 그 헛된 것들을 향하여 헛된 걸음으로 헛되이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헛됨을 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하여’ 라는 단어를 앞에 갖다붙이면 그 모든 헛된 것이 
    보람찬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비록 헛되고 가장 미천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 뜻을 따라 보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하늘나라에서는 결국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하느님의 숨결을 생각하며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감탄스럽고 그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고, 영원한 세상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맨손으로 태어난 우리들이 이세상에서 보람을 느껴본들 그것은 잠시 
    지나가는 바람일 뿐입니다. 무덤 앞에서 모든 것이 사그라져버리고 
    무덤 속에 모든 것이 묻혀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이런 것을 모르고 돈을 벌자고 
    싸우고 아득바득거리며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현세에 둘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내세에 둘 때만이 오늘 하루의 
    내 삶이 영원한 삶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던가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당하고 있는 고통이 있다면 그 고통을 벗어나는 것도 속절없는 일입니다. 
    고진감래라 하여 고통 뒤에는 달콤한 것이 온다고 합니다만 
    영원함을 놓고 볼 때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고통을 벗어나면 또 다른 고통이 옵니다. 
    고통이 없으면 고통이 없는 것 또한 고통이 됩니다. 
    
    조용할 때는 시끄러운 것이 그리워서 조용함을 피하고, 
    시끄러우면 시끄러운게 싫어서 조용한 데를 찾는 것이 우리네 
    변덕스러운 인간의 허무한 감정이란 것입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외롭다가 슬펐다가 기뻤다가 하는 감정을 따라 변하는 
    것이 불이 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다시 비가 되어 땅에 내려 물이 되고 
    그 물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조금도 다를게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물이 창조주의 법칙을 따라서 항구하게 움직이는 데는 
    그 뜻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지고서도 오히려 그 머리속에 자기 능력이나 생각의 한계를 
    스스로 국한하는 바람에 좀처럼 하느님께 도달하지 못합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기 때문에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왜 보람있는지를 알고, 
    우리에게 주어진 그 어떤 어려움도 주님한테 감사하다는 기도를 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시어 고통을 통하여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할 수 있고, 
    고통이 없을 때는 ‘감사합니다 주님, 저를 이렇게 편히 쉬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과 직결될 때 
    의미있는 고통과 의미있는 안식과 의미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고, 또 다 키워서 
    사회에 보낸다한들 무슨 보람이 있습니까? 
    보람이 있다한들 그 자식이 잘못해서 사건을 저지르거나 
    또는 곤경에 처하면 보람이 고통이 되어 결국은 고통을 위해 몸부림쳐 
    온 것처럼 허무하게 되지 않는다고 그 누가 사람일을 보장합니까?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을 떠나서 어느 한 시각, 어느 한 구석에서라도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는 것이라는 인생의 깊은 뜻을 모르고,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은 참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 그것이 행복이라고 하며 헛되이 헤메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즐거움도 주님의 영원한 세계 앞에서는 허무한 짓이요, 
    악이 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보람을 주는 일이라 하더라도 
    주님 앞에서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위할 줄 아는 신앙 안에서만 새삼 참된 인생의 
    맛을 보는 하느님의 자녀임을 깊이있게 인식하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