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양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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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양의 편지  
      
      옛날에 어떤 동굴이 있었습니다. 
      동굴이 있는 근처에는 이슬이 살며시 내리기는 했지만 풀은 아직 채 자라지 
      않아 가까스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냉랭한 바람이 살살 불고 있었습니다.
      겨우내 갖혀 있던 양들에게는 날씨가 막 풀리려는 이 때가 
      어느때 보다 제일 좋습니다. 
      
      음침한 움막에서 몇 개월씩이나 아무 재미없이 멍청히 지낸다는 것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짜증 스러운 일이였습니다. 
      이 때엔 우리 주인님도 우리들 숙소에 와서 우리를 한번 보고 하늘을 보곤 
      합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주인님도 답답해 진 탓인지 지겨워진 탓인지 
      아니면 기분인지 몰라도 그 날 우리 모두를 들판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아! 드디어 우리는 광활한 무대를 향하여 기지개를 폈습니다. 
      
      우리들은 들판에 나가자 마자 저마다 향기로운 대지의 내음에 온 몸이 
      저려오는 쾌감을 느끼며 "음매애애--"하고 콧노래를 부르고는 
      깡충깡충 뛰기도 하고, 냅다 달려보기도 하였습니다. 
      "야-호-!"하고 너른 들과 야산을 향해 몇 몇은 소리도 질렀습니다. 
      이렇게 신나게 첫 날 하루를 지내고 해가 저물어 온 누리가 어둠에 깔릴 
      때에야 비로서 우리는 "우리 주인님은 오늘 우리를 어디서 재울 거지? 
      집으로 돌아 가자고 그럴건가? 그래도 오늘은 첫날인데..." 하며 
      가까스로 주인을 의식할 겨를이 생기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해서 어디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젠 
      겁이 약간 들어서 서로 바짝 바짝 주인님 곁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인님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주인님은 모처럼 
      나온 우리들의 심정을 잘 알아차리셨는지 그냥 옷깃을 세워 올리면서 
      그 근처의 작은 바위에 편한 자세로 기대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앞에 몸들을 서로 비비며 모두 앉아서 잠이 올래면 
      오라지 하고 맥을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초도 안 되어 코를 고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젠 나 말고 몇 친구를 제외한 모두는 깊은 잠의 수렁으로 흘러 들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끙끙대는 잠고대를 들으며 나도 소록 소록 잠에 
      휘말리고 있었는데..
      
      "아! 저게 뭐지? 히야 신기한데?"하는 소리에 그만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주인님을 빠꼼이 쳐다보고 있는데, 주인님은 하늘로 고개를 
      잔뜩 쳐들고 정신이 나가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진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틀림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소리 지르며 우리들을 모두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어리둥절한 우리들은 졸려서 눈거풀을 약간만 지긋이 올린 채 
      그냥 주인님을 따라 졸면서 쫒아 갔습니다. 
      주인님은 이 사람 저 사람 자기의 친구들을 불러 뭐라고 심각하게 
      중얼 거리고는 또 가고 또 가고 하였습니다.
      
      "난 또 뭐라고, 별로 신나는 일 같지도 않은데 주인님은 
      뭐 저렇게 별난 표정이지?"하고 중얼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굴에는 시시한 불이 켜져있고 그냥 두 사람이 있었고 
      동네에서 흔히 보던 애기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다른 짐승들이 몇 마리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이 이 밤중에 우루루 모여서 그 속을 향해 앉아있는 
      모습이 되려 볼만한 경관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아기가, 바로 그 갖난 아기가, 아니 글쎄 
      온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의 말씀이시다는 게 아닙니까. 진작 그걸 알았다면 
      날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할 걸... 그만... 아니면 적어도 
      우리의 목청으로라도 아름다운 대 합창을 불러 드렸어야 했는데... 
      또는 우리들에게 가진 것이 있었다면 모두 모아 사랑의 선물을 한 아름 
      올려 드렸어야 했는데... 우리들이 재주 부릴 줄 알았다면 그 아기를 
      재미있게 축하해 주었을 텐데...  우리는 아무것도 못해드렸지 뭡니까.
      
      그 때를 기념하는 성탄 때만 되면 정말 후회가 막심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광경을 확실히 본 증양(證羊?)입니다. 
      그때 그 광경을 모두에게 확인해 드림으로써 저의 사명을 다하리라 생각하고 
      이기정 신부님이 마침 편지를 받으신다기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그 때 그 일은 사실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이만 펜을 놓습니다.
      
      이기정 신부님을 통하여 2000년 전의 어느 양 한마리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