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끝과 손 끝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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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혀 끝과 손 끝의 상처 
      
      어머니가 해주는 식사는 식당에서 사 먹는 식사와 다르다. 
      돈을 지불하지 않아서 다른 것이 아니고 그 맛의 차원이 다르다. 
      엄마의 손끝에서 나오는 입에 익은 맛이 다르다. 엄마의 손은 
      나의 모든 부분에 연결이 되어 있나 보다. 그 연결은 일방 통행이 아니라 
      나의 반응을 해석할 줄 아는 쌍방 통행 손길이다. 
      엄마의 사랑이 이런 전파력으로 나와 연결되어 있다.
      
      인생 판단을 잘 못한 병든 엄마는 때로 무서운 식사를 강요할 수가 있다. 
      나의 입맛을 무시하고 강제로 입 벌려 먹이는 식사법도 있다. 
      엄마의 생각은 이미 일방적이 되었다. 소화도 안 될 음식이나 배가 불러 
      더 이상 못 먹겠는데도 밥을 한 사발 떠주고 강제로 먹으라고 하는 경우나 
      밥하기 싫어서 생쌀을 내어 놓거나 키 크라고 생콩나물을 
      무작정 먹이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요새 흔히 있다고 들었다. 
      많이 돈 엄마들이라 생각한다.
      
      “1등해라. 서울 대학생 가진 엄마 좀 되어 보자.”
      “악착같이 공부해라!”
      “네가 할 거란 오로지 공부밖에 없어. 네가 뭘 할 거 있니?”
      “친구들은 아예 만나지 마. 경쟁이야 경쟁. 이겨야 돼!”
      “이제부터 성당에 가지 마. 교리 공부 따위는 시험에 안 나온다구!”
      “미사만 보고 얼른 오도록 해. 교리 시간에는 안 가도 돼. 1등 해야 돼잖아.”
      
      앞집에서도 이런 소리, 뒷집에서도 옆집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들린다. 
      어른들은 모두가 앵무새들인가 보다. 아니면 녹음 테이프를 잘못 
      꽂았나 보다. 사실 그렇게 공부, 공부, 공부해서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 
      인간이나 부모의 강요로 1등만 계속하여 똑똑한 상전으로 양성해서 
      엄마는 후에 그 집이나 지키고 애나 보는 하녀의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공부는 지혜를 쌓는 것이라 알고 있다. 
      공부는 처세와 인품을 기름이라 알고 있다. 
      공부는 사람됨을 배우는 것이라 가르쳤다. 그러나 요새의 공부는 물질 
      세계의 사물 원리들을 많이 외우는 것으로 퇴색되었다. 
      마음과 정성으로 간을 마추어 요리된 지혜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발견해 놓은 것들을 읽고 외우는 것이 공부라 생각들 하는가 보다. 
      
      18세기 이후 프랑스에서 교육의 목적을 백과 사전식 인간 양성에 두어 그후 
      나라는 급속도로 쇠약해졌다. 영국도 이어 같은 목표로 교육을 하다가 현인들의 
      반박으로 교육의 방향을 바꾸었다. 미국도 19세기부터 상식을 중심으로 
      교육하다가 금전 만능과 소비 미덕의 주장과 개인 주의를 불러 일으켰다. 
      금세기에 와서 전 세계의 선진국은 전인 교육을 늦게야 부르짖고 있다. 
      사실 산업 혁명으로 기술 교육의 분위기로 오늘날까지 인간을 위한 교육은 
      기업을 위한 교육의 일환이었다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동방의 예의 바른 나라 사람들이 그 후손을 교육하는 데에 교육의 방향을 
      이렇게 소홀히 해서야 되겠는가? 
      
      마음이 원래 곱고 보드랍게 태어난 반만 년 역사의 예의 국가 자녀들이 
      혼란한 인생 방향 앞에 전승된 마음을 간직한 채 혼자서 괴로워하다 자살한 
      예가 허다하다. 누구의 혀끝에서 생긴 병 때문인지 또 누가 이끄는 손길 
      때문인지 교육을 받는 자녀들이 있는 부모님들은 깊이 생각하여야 하겠다. 
      교사들은 물론 교육의 이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하겠다. 
      우리 모두의 자녀들을 위하여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연구하여 잡아 나아가도록 
      관심을 촉구해야 되겠다. 백과 사전은 역시 도서실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백과 사전의 유사품 젊은 인간들이 도서실에 많이 있는가 보다. 
      이제부터 한 50여 년간 한국에는 아름다운 민요가 창작되지 못할 것이다. 
      
      이제부터 한 50여 년간 한국에는 심금을 울리는 예술의 창조는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기대하지 맙시다.  구수한 인가 사회를, 이제는 아예 포기합시다. 
      세상을 인품으로 밝힐 지도자가 나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