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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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병에 관심을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5장 7-8절의 내용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 여러분, 오늘 하루는 정말 마음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그 중에서도 마음이 냉해지고, 굳어지셔서 모든 게 다 밉고, 보기 싫고, 
      한마디로 마음이 괴로우신 분들께 특별히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미워하는 사람을 우리 주위에 갖고 있으며 증오심과 적개심의 
      수렁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살기 어렵다는 말이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물질적 고통이나 신체적 고통이 심리를 괴롭힌다지만 
      사람을 증오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때 
      그 고통은 마치 지옥을 체험하는 것과도 같다고 보겠습니다.
      
      증오심의 인생 고통을 하느님이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그분이시기에 이러한 원수에 대한 심각한 증오심이 
      얼마나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지 충분히 아실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신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태오 5, 43-46).
      
      녜, 맞아요. 참 좋은 말입니다! 거, 왜, 있지오.
       “괜히 주는 것도 없는데 미워 죽겠다.”는 말 말입니다. 미워, 보기싫어, 
      지겨워, 다음에 부쳐지는 말들이 있습니다. 즉, 미치겠다. 환장하겠다, 
      죽겠다 등의 말들 말입니다. 그래요. 그렇게 해 보세요. 그래봤자, 
      자기가 죽지, 뭐 미운 사람이 죽나요? 그 사람은 안 죽어요. 병입니다, 
      병. 모든 세기를 통해 영 박멸되지 않는 전염병입니다. 
      미워하는 남의 말을 듣고서 전염이 되는 병입니다. 
      기왕 성서 구절로 시작했으니 성서 구절을 더 들어봅니다.
      
      “남을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루가 6, 37)라는 말씀입니다. 
      밉다고 말하는 사람은 미워해 본 경험이 있은 후부터 미워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인데요. 용서가 참 어렵다고 합니다. 
      이 역시 용서해 본 경험이 있으면 용서하게 될 겁니다. 
      우선 첫번 용서를 해주어야 용서를 해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흔 번이라도, 즉 한없이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즉, 병과 관련해서 말입니다. 
      신경 쇄약, 신경 과민, 신경질, 그러다보니 신경성 소화 불량, 신경성 두통, 
      신경성 불면증, 신경성 위궤양, 나아가 신경 마비까지 여하튼 신경은 
      몸에 병을 유발시키는 중요한 원인인데도 그 신경을 흔히 그렇게 
      남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자꾸 써 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고 보면 예수님은 의사 중에서도 참 의사 같다는 생각이 들드라구요. 
      아주 멋져요. 병을 고치되 물질로 만든 약이 아니고 비물질 특효약으로 
      처방하시고 병을 고치되 아예 근본을 고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또 이 약은 가난할수록 쉽게 살 수 있고, 겸손할수록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게 더 근사합니다. 돈도 안 들고, 입원비도 안 들고, 몸을 보이지 
      않아도 되고 하니 예수님은 나긴 나신 분이다고 인정이 가더라구요.
      사람이 세상에 많다 보니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마땅히 있게 마련인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내 마음이라는 척도로 일일히 다 재고 
      따질 수 있겠습니까? 무슨 재주로요? 그냥 내버려 두도록 합시다. 
      
      또 예수님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거 가라지 비유라는게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13장에 나오는 말이지요. 
      “주인님의 밭에 밀을 뿌렸는데 가라지들이 많이 났습니다. 
      우리가 그 가라지들을 가서 뽑을가요?” 하고 일꾼들이 물으니까, 주인은 
      “아니다. 추수 때까지 내버려 두어라. 괜히 그걸 뽑다가 성한 밀까지 
      다치지 않겠느냐. 나중에 뽑아서 불에 태우면 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당신이 다 알아서 하시겠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러면 
      인간들끼리는 같은 처지이니 평화롭게 지낼 일만 신경 써야 옳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서로 사랑할 일밖에는 생각하지 말고 살아야(요한 15, 12)하며 
      우리가 미워하는 그 사람이 하느님의 원수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우리의 원수도 될 수 없습니다. 또 뉘우치면 언제나 용서를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해 주려는 준비 태세를 항상 갖추고 있을 것과 
      원수를 악한 자라고 결정적 판단을 내리지 말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결정적 판단은 언제나 회개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뭐 제가 얼마나 자신 있다고 이상과 같은 말을 했는진 몰라도 맞긴 맞아요. 
      저도 노력하려는 입장에서 제 소견을 드린 겁니다. 
      청취자 여러분, 오늘은 진정 마음의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침 방송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