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게 해 준게 바로 나를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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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에게 해 준게 바로 나를 위한 것 
      
      남을 위해 살아야 보람을 찾는 우리 인간입니다. 
      내가 아무리 유명해지고 싶어도 남이 나를 유명하다고 
      인정치 않으면 유명해 진게 아닙니다. 
      훌륭한 것도 마찬가지, 위대한 것도 마찬가지, 
      결국 남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머리가 좋아서 인정받고 싶어도, 마음이 좋아 인기 끌고 싶어도, 
      재주 많고 잘 생겨 사랑 받고 싶어도 결국 남들이 그렇게 대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먹고 숨쉬는 나 대로의 인간 동물일 뿐입니다. 
      아무리 거부해도 남들은 있으며 그 남들 앞에 
      내가 어떤 존재 이냐가 사회적, 객관적 나일 겁니다.
      사회적이다, 객관적이다고 하는 말은 이웃을 말한다고 봅니다. 
      
      신체적으로 보잘것 없어도 이웃이고, 있어도 이웃이며, 
      경제적으로 비참해도 이웃이고, 부유해도 이웃입니다.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 행복하건 비참하건 이웃입니다.
      지위가 높아도 속이 빈 비 인간형이면 불쌍한 이웃이고, 
      돈이 많아도 알찬게 없는 허실적 인간성이면 가련한 이웃입니다.
      이웃은 이웃의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웃의 이웃이고 이웃이 나의 이웃입니다. 
      이러한 이웃 관계를 형식화해 보면 거기에 문제가 보여집니다. 
      
      이웃 관계의 형식을 보면 도구적, 방법적, 계산적, 소모품적, 용도적, 초월적, 
      필연적, 형제적 등으로관계 성질을 따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물론 예수님은 필연적이며 초월적 이웃 관계를 말씀 하셨지만 아직 
      이런 가르침에 물들지 않고 도구로나 방법으로 더구나 소모품적으로 
      이웃을 생각하는 바람에 한탄하는 바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만 배워 익히면 간단한 것을, 
      사람들은 나름대로 여러 말로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법, 상식, 풍습, 규율은 그래도 객관적이지만 기분, 마음, 생각, 의리같은 
      개별적인 것으로 이웃의 관계를 풀어 내는 경우에는 참으로 천태 만상 
      제멋대로라는 관계이므로 한탄도 종잡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방법이 가장 올바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과 우리를 같은 조건으로 놓는 방법 말입니다. 
      사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님(형제자매님)은 어떠신지오.  
      “네 이웃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이웃의 위치에 나 자신을 대입해 보시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이웃에게 해 준 것이 곧 나를 위해 한 것이다.”는 말씀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