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놋그릇에 찌든 때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악의 유혹, 즉 그들의 잘못 가르침에 현혹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피땀흘려 노력해서 한 푼 두 푼 저축해서 모은 돈은 보다 
가치있게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많은 유산을 상속 받았다거나 
또는 땅값이 올라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거나 또는 일확 천금을 한 사람들은 
그 돈이 자기의 노고가 들어가 있지 않은 돈이기 때문에 
돈의 가치를 모르고 헤프게 써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귀다 보면 처음엔 웬지 밉깔스럽고 거북스런 사람이었으나 
자꾸 사귀다 보니 미웠던 것들이 정이 되어서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에는 
사랑이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랑은 은은하면서도 오래가는 질그릇같은 사랑이 됩니다. 
그러나 첫눈에 반했다거나 갑자기 스파크가 일어나듯이 불붙는 사랑은 
양은 남비처럼 금방 데워졌다가 금방 식어서 그 사랑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믿음, 즉 우리의 신앙 또한 그와 같습니다. 
가끔 제게 ‘왜 저는 믿음이 안 생길까요?’
 ‘왜 저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하고 
물어오시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그분에게 되 묻습니다.

“일 년에 몇 권 정도 교회 관련 책을 보십니까?” 하면
“그런 책 별로 본 일이 없는데요.” 합니다. 
“그러시면 피정이라든지 특별한 영신 훈련등에 1년에 몇번 정도 참여하십니까?”
“그런게 있나요?” 합니다. 
“1년에 고백 성사는 몇 번정도 보십니까?”
“성사표가 나와야 보지요.”
“그러시면 아침기도, 식사후기도, 삼종기도, 저녁기도는 매일 열심히 하십니까?”
“그걸 뭐 꼭 챙겨서 해야 합니까?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그런거죠.”

이렇게 대답하면서 왜 신앙심이 생기지 않느냐고 제게 물으면 
복음의 말씀처럼 귀가 있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분이 아니겠습니까?

신앙심이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심은 여러분들께서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 보다 더 어려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신앙심이야말로 여러분이 영원한 생활을 살아 가는 데 필요한 
자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기 위해 필요한 재물을 얻기가 
그렇게 힘든데 영원한 삶을 살아 가기 위해서 필요한 자금은 
거저 공짜로 떨어질리 있겠습니까? 영생을 살기위한 자금이야말로 
하느님의 진리에 입각한 방법에 의해 계산될 것입니다. 
신앙심이야말로 삶의 역경 속에서 얻게 되며 노력으로 축척되고 끈기로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기적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기적을 보고 난데없이 갑자기 
신앙심이 뜨거워지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이 신앙인이 된다면 
오히려 무서운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현세 감각적 조건부로 하느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많은 기적을 보았건만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시니까 
‘아! 또 예수님이 빵 이야기를 하시는구나’하며 신앙인 다운 깊이로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며 못 알아 듣고 있었으니 
예수님께서 오죽이나 답답해 하셨겠습니까.

오늘 우리 세대도 누룩으로 조작된 빵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가꾸고 영생의 준비를 하는데는 신경도 안쓰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런 의미로 기적 보기를 좋아하고 자기에게 어떤 신기한 은혜가 막 쏟아져서 
일이 잘 되어 부자로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요?
이미 거저 받은 은혜도 많은데 자꾸만 주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구나. 왜 그리 깨닫지 못하느냐?” 라고 
예수님은 또 한번 꾸중하실 겁니다. 

저는 혼인성사때 신랑신부에게 선물처럼 이런 말을 종종합니다. 
교회에서 신랑 신부 두 사람에게 진정 선물로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뿐이라고 말입니다. 
세속에서 흔히 생각하는 신의 축복이란 재물이나 자녀들이 무사히 
무럭무럭 자라며 아무런 고통 겪지 않는 안이한 생활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인생을 구원한 희생입니다. 
영생을 향한 인생을 가꾸며 사는 길을 깨닫는 것이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참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우리 사이에 십자가를 놓으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구하시려는 
사랑때문에 자신의 분신 외아들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셨는데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과연 무엇을 했습니까? 
1년에 말씀이 담긴 책을 한 권도 안 보았다구요? 
피정 한번 안 했다구요? 1년에 고백성사는 한 번도 안 보았다구요? 
그러면서도 믿음이 안 생긴다고, 
하느님의 사랑이 안 느껴진다고 이야기 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지땀을 흘리면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해서 그달 그달 봉급을 받아 
조금씩 떼어 억척같이 뫃아야 살 집이라도 하나 마련하듯 
우리들의 신앙심도 평일미사에 참례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감사하고 
찬미하며 오늘을 맞이하여 요만큼 자라고, 또 내일 미사에 와서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미하고 죄를 뉘우치면서 조금 싸이며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죽기전에 한꺼번에 믿어 그냥 공짜로 천당에 가겠다고 합니다. 
‘우선은 돈 좀 벌고 죽기 전에 가서 믿으면 되지 뭐!’ 합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한 일입니다. 
하느님이 그런 꾀보쯤 못알아 보실것 같습니까?

우리는 참 믿음을 향하여 매일 매일 끈기있게, 조그마한 일에도 우리의 믿음을 
생각하며 아주 미세한 먼지가 물체에 앉아서 찌들고 찌들어 때가 되듯이 
우리들의 영혼 속에 신앙의 자잔한 먼지가 찌들어서 녹때가 되어 굳어져 
남아 있을 때 하느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당신의 입김이 저렇게까지 
찌들어 굳었구나 하시면서 ‘너는 내 자녀다’ 라고 기뻐하시리라고 봅니다.  

그렇게 찌들은 때는 어느 한 순간에 앉은 먼지가 아닙니다. 한 순간에 
앉은 먼지는 후우 하고 불어내는 입김에도 날아가버립니다. 
그처럼 우리의 믿음, 우리의 신앙심도, 다시 말해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 가면서 얻는 기쁨도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만약 어느날 갑자기 하느님이 좋아지고 갑자기 마음이 기뻐져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 바로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하느님이 막 미워지고 싫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근하게 진중하게 쌓여지는 믿음을 향해서는 매일 변함없이 끈기있게 닦아지는 
신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은 주위의 사람들로부터도 
저 사람은 변함없는 사람이라고 신임을 받게 되겠지만, 
쉽게 믿음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도 쉽게 따돌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신앙심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심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시도록 합시다.

야고보 1장 12절에서 18절 / 마르코 복음 8장 14절에서 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