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사는 노래를 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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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사는 노래를 찾음 
      
      “신부님, 노래 한마디 부르세요.”라는 말이 점점 괴롭게 들린다. 
      잘 부르는 노래를 들으려면 라디오나 전축을 틀면 될 텐데 
      노래를 부르라니 곤욕스러워진다. 노래를 부를 줄 모르거나 
      목소리가 나빠서라기보다 기분 좋게 부르고 싶은 노래가 너무 없어 
      부르지 않은 것이 그 이유라고 공개 변명을 하는 바이다.
      
      배워서 불러 볼 만한 노래가 있나 하고 귀기울여 방송을 듣곤 한다. 
      끝내 답답한 심정으로 꺼 버린다. 사오십대에 맞는 노래가 없다. 
      사십대, 오십대는 아침에 출근하고 낮이면 일하고 저녁이면 술 푸고 밤이면 
      피곤해지고 그 다음날도 다음날도 봉급과 승진과 성공과 실패 등에 신경 쓰며 
      눈치 분위기 비위 등의 촉감으로 이미 십여 년 이상 살아온 인생들이다. 
      이들에게 정겹던 젊은 시절의 음악은 현대생활의 방해물같은 생각이 든다. 
      예술 문화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의 애인인지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묘약인지 좀 알고싶다. 
      장년들에게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묘약을 음악에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왜 그런지 이제는 노래의 한 자리를 누구에겐가 
      또는 무엇에게 빼았긴 생각이다.
      
      건강을 위한 정신 자세나 스포츠를 즐기며 부를 만한 노래가 없고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부모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없고 
      생활 하나하나의 의미를 가치 있게 하는 노래들이 없어 노래 없이 늙어만 간다. 
      자식들의 생일에 부모가 불러줄 노래, 버스나 전철을 기다리며 흥얼거리면 
      의욕이 나는 노래, 운전을 하면서 부르면 무사고로 명랑한 거리가 될 노래, 
      옛 동창들이나 친구들이 모여 우정을 나눌 벅찬 노래, 결혼 기념일에 
      자녀들이 불러줄 노래와 답사할 노래 같은 우리 생활의 현장 자체에 필요한 
      노래들이 없다는 것이다.
      
      사십이 넘은 후 혼자 음반집에 가면 으레 부르지 못하고 듣기만 하는 클라식 
      오케스트라 피아노, 바이올린 곡 등이나 살 수밖에 없는게 야릇하기까지 하다. 
      아버지도 좋아 들었고 수백 년 전에도 즐겨 듣던 바로 타임 머신으로 휠터한 
      노래들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강을 해치고 돈을 낭비하고 
      음주 단속의 굴레로 발목 넣는 흘러간 옛노래 뽕짝을 혀 꼬무리며 부르는 
      지하 바아로 흘러들고 싶진 않다. 
      
      예술 문화의 접근을 쌍수로 환영하고픈 이 나이. 우리의 예술이 철이 
      안 들었는지 예술보다 우리가 너무 빨리 나이 들어 성숙해 버린 건지. 
      성인과 함께 늙어 가는 음악이기를 바라고 어린이와 함께 자라는 
      음악이기를 바라면서 음악인들의 음악 생활화 능력의 수준에 관한 
      운운은 이 글의 밑으로 살짝 밀어 넣는 바이다.
      (중앙일보 1990년 7월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