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2월 14일) 성 발렌티노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1 (금) 12:58 ㆍ조회:449 ㆍ추천:0
오늘의 聖人(2월 14일) 성 발렌티노
    
     
    
    성 발렌티노(Valentine) 축일 2월 14일  
    신분 신부, 의사,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269년  
    
     같은이름- 발렌띠노, 발렌띠누스, 발렌타인, 발렌티누스  
    
     
        
    로마 순교록에는 발렌티누스라는 두 명의 성인을 2월 14일에 기념하고 있다. 
    한 사람은 로마(Roma)의 사제이며 의사인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또는 발렌티노)로서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의 박해 때인 269년에 순교하여 플라미니아 거리(Via Flaminia)에 묻혔다. 
    다른 한 사람은 로마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진 테르니(Terni)의 주교인 성 발렌티누스로 로마에서 순교하였고 
    그의 유해는 후에 테르니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그의 순교에 대해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순교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두 명의 순교자가 실제로 현존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주장이 다르다. 
    두 명의 발렌티누스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테르니의 발렌티누스가 로마로 이송되어 처형되었는데, 
    그로 인해 로마와 테르니에 두 개의 전통이 생겨난 것이지 실제로는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본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달리 전해진 것일 뿐 동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더 많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 발렌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어떤 관리의 감시를 받게 되었는데, 그 관리에게는 앞 못 보는 양녀가 하나 있었다. 
    성 발렌티누스가 이 양녀의 눈을 뜨게 해주자 이에 감동된 그녀의 아버지를 비롯한 전 가족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 널리 퍼져 마침내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어 성 발렌티누스는 참수를 당했다고 한다.
    
    성 발렌티누스의 축일을 연인들의 축일로 기념하게 된 것은 14세기부터이다. 
    연인들이 이날 서로 주고받는 특별한 형태의 축하 카드도 성행하였다. 
    이날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이 시기가 새들이 짝짓기하는 기간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남성의 여성에 대한 기사도적 사랑의 표현에서 나타난 것으로도 생각된다. 
    즉 이 전통에 따르면 매년 2월 14일이 되면 젊은 여인들이 ‘발렌틴’(Valentin), 
    이른바 자신들을 흠모하여 시중을 드는 기사를 선택하고 이 기사들은 젊은 여인들에게 선물을 바쳤다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아직도 영국의 몇몇 지역에서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념하는 
    발렌타인 축일의 여러 가지 의미와 형태는 상인들이 상업적으로 변형시킨 것으로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연인들의 수호성인, 성 발렌티노
     
    성 발렌티노(Valentine)는 로마의 사제이자 의사로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신앙 때문에 순교했다는 것 외에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로마 순교록에는 같은 날(2월 14일) 
    또 다른 발렌티노 축일을 지내는데 그는 로마에서 10km가량 떨어진 테르니의 주교로서, 
    집정관의 명에 따라 고문을 받다가 참수 치명하였다. 학자들은 이 두 성인은 동일인물이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달리 전해진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발렌티노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는 이렇다. 발렌티노는 3세기 중엽 로마 교회에서 가장 인망이 높고 
    덕행이 출중했으므로, 교회를 박해하고 있던 황제는 그를 불러 배교를 명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위협에도 발렌티노가 교회를 버리지 않자 황제는 그를 법관에게 보냈다. 
    그 법관에게는 앞을 못 보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발렌티노는 기도를 통해 그 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이에 법관이 즉시 개종을 결심하고 일가족 40명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대단히 분노하여 법관은 참살(斬殺)하고 
    발렌티노는 회당에서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한다. 이 날이 270년 2월 14일이다.
     
    발렌티노 성인은 ‘발렌타인데이’로 유명하지만 2월 14일에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풍습과는 
    사실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다만 황제가 금혼령을 내리자 발렌티노가 젊은 연인들을 
    몰래 찾아오게 해서 결혼식을 올려주었다고 전하는 이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발렌티노 성인의 축일에 사랑 고백의 카드를 성인의 성상 앞에 놓고 전구하는 풍습은 중세부터 시작되었다.
    발렌티노 성인은 아이나 가축의 병을 잘 고쳐주었기 때문에 이들의 수호성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경향잡지, 2005년 2월호)
    
    
    
    발렌타인데이의 의미와 유래 
    
    2월 14일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발렌타인데이(St. Valentine's Day)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날일까. 발렌타인데이가 가톨릭교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2월 14일은 바로 발렌티노 성인의 축일. 
    거룩한 성인의 축일이 어떤 연유로 연인들의 사랑 고백일이 되었는지 살펴보자.
    
    이날을 축일로 하는 발렌티노 성인은 사실 두명이다. 
    한명은 서기 269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에 의해 처형된 사제이며, 
    또 한명은 로마에서 순교한 발렌티노 주교이다. 
    사제 발렌티노는 교회를 박해하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배교 권유를 무시함으로써 체포돼 
    아스데리오라는 법관에게 보내졌는데, 발렌티노는 앞을 보지 못하던 아스데리오의 딸을 기도로 고쳐 주었다. 
    이를 목격한 아스데리오의 일가족 40여명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발렌티노에게 세례를 받았지만 
    이 소식을 듣고 격분한 황제에 의해 발렌티노와 일가족은 모두 처형당했다.
    
    또 한명인 발렌티노 주교는 로마에서 집정관 플라치도의 명령에 따라 고문을 받고 순교했으며, 
    로마에서 10여㎞ 떨어진 테르니에 묻힌 것으로 전해진다. 많은 학자들은 두 성인이 결국 같은 인물로, 
    발렌티노 사제가 주교가 된 다음에 순교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발렌티노 성인이 연인들의 수호성인이 된 것에 대한 그럴듯한 해답을 주는 일화는 이렇다.
    
    당시 클라우디우스 2세는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들의 결혼을 금했는데, 
    발렌티노 성인이 이를 무시하고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을 몰래 혼인시키다가 발각돼 2월 14일 순교했다. 
    그는 감옥에서 간수의 딸에게 '발렌티노의 사랑을!'(love from Valentine)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냈고, 
    이것이 발렌타인데이에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풍습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설도 있다. 로마 제국의 '루퍼칼리아'라는 축제 중에는 도시의 젊은 여자들이 자기 이름을 
    적은 쪽지를 항아리에 넣고 남자들이 항아리에서 이름표를 고르는 짝짓기 행사가 있었다. 
    또 이를 통해 결혼까지 이르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축제를 비그리스도교적이라고 여긴 당시 교황은 
    서기 498년 2월 14일을 발렌타인데이로 선포하고 남녀간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 삼았다고 한다. 
    영국인들이 2월 14일을 새가 짝을 짓는 날로 믿고, 또 봄을 연인을 위한 계절로 여겼던 데서 유래됐다는 속설도 있다.
    
    결론적으로 발렌티노 성인의 축일, 로마의 관습, 서양의 속설 등이 
    결합해 생겨난 것이 오늘날의 '발렌타인데이'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처럼 발렌타인데이 때,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은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국적불명의 풍습이다. 다만 1960년대 일본의 어느 초콜릿회사가 연인에게 
    편지를 대신해 초콜릿을 보내도록 만든 상업적 전략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한다는 화이트데이(3월 14일)는 그나마 발렌타인데이와 같은 
    역사적 유래도 없다. 발렌타인데이 초콜릿과 함께 일본 제과회사의 판매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게 통설이다.
    
    오늘날과 같은 발렌타인데이 풍습이 생긴 것이 일본 제과회사의 농간일 따름이라고 무시할 수 있겠지만 
    초콜릿에 사랑을 담아 연인에게 전하는 애틋함마저 애써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일생 동안 사랑을 실천하다 순교한 발렌티노 성인의 신앙까지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평화신문, 제858호(2006년 2월 12일), 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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