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19일) 성 엘페고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8:21 ㆍ조회:394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19일) 성 엘페고  
    
    


    성 엘페고(Elphege) 축일 4월 19일
    신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캔터베리(Canterbury) 활동연도 954-1012년


    같은이름-알페고, 알페구스, 알페기오, 알페기우스, 알페지오, 알페지우스, 엘페구스




    알페구스(Alphegus) 또는 알페기우스(Alphegius)로도 알려진 성 엘페구스(Elphegus, 또는 엘페고)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의 디어허스트(Deerhurst) 수도원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후 그곳을 떠나 바스(Bath)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얼마 후 그는 바스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엄격한 규칙을 적용시켰다.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984년에 윈체스터(Winchester)의 주교로 임명되자,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하여 교구 전체가 청빈을 실천토록 하는 등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생활을 계속하였다.

    1006년에 그는 로마(Roma)의 요한 18세(Joannes XVIII) 교황으로부터 팔리움을 받으면서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데인인(Danes)인 얼 에드릭(Earl Edric)이 캔터베리를 포위 공격했을 때
    그는 떠나기를 거부하였다. 도시가 폐망하자 결국 그는 투옥되었다. 그러다가 열병이 돌자
    그는 환자들을 돌보라는 명목으로 석방되었으나, 자신의 완전한 석방 조건으로 금 3,000 크라운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그리니치(Greenwich)로 이송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덴마크 국왕 카누투스(Canutus)가 그의 시신을 런던에서 캔터베리로 운구하여 장사지냈다.

    성 알페고(St. Alphege, 4월 19일) 청빈, 평화, 희생의 삶...은수자 같은 삶, 바이킹과 평화 협정 이끌어 954-1012. 잉글랜드 출생 및 사망(순교). 대주교. 어려서부터 수도자가 되길 원했던 성인은 온전히 기도와 묵상의 삶을 살고싶어 은수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성인은 단식과 고행으로 주님 수난에 동참했습니다. 성인은 홀로 조용히 살길 원했지만 성인의 생활을 지켜본 이들은 종종 찾아와 지혜를 구하곤 했습니다. 주머니에 든 송곳처럼 성인은 점차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성인은 수도원장으로 추대돼 은수자의 삶을 접어야 했고 984년엔 윈체스터교구 주교를 맡게 됩니다. 성인은 주교가 됐지만 은수자로 살 때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청빈이 몸에 배 있는 터라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습니다. 당시 영국은 바이킹 침입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성인이 관할하는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성인은 대화를 통해 바이킹족과 평화협정을 이끌어냅니다. 게다가 약탈을 주도하던 지휘관은 성인의 영성과 삶에 감화돼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1006년 캔터베리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로 승품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교황 요한 18세에게 대주교를 상징하는 팔리움을 받기 위해 로마로 떠납니다. 평화의 사도로 활약해왔던 성인이 영국을 떠난 사이 바이킹은 캔터베리를 침입했습니다. 성인은 캔터베리로 돌아오자마자 바이킹 포로가 됩니다. 바이킹은 성인을 풀어주는 대가로 어마어마한 돈을 요구했습니다. 성인은 자신은 가진 돈이 없고 교회를 위해 써야할 돈을 침입자들에게 단 한 푼도 내줄 수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결국 성인은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매맞아 순교합니다. 성인 유해는 런던 성 바오로 성당에 안치됐고 100여 년 뒤 캔터베리대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사이 유해는 전혀 부패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성인은 1078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 의해 시성됐습니다.[평화신문, 2011년 4월 17일, 박수정 기자]

                       
  0
100
이름
비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