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21일) 성 안셀모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8:31 ㆍ조회:328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21일) 성 안셀모  
    
    
     
    성 안셀모(Anselm) 축일 4월 21일  
    신분 대주교, 교회학자, 철학자 , 활동지역 캔터베리(Canterbury) 활동연도 1033-1109년     
    
     같은이름-안셀름, 안셀무스, 안쎌모, 안쎌무스  
    
    
       
    1033년 겨울 이탈리아 북부 아오스타(Aosta)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안셀무스(Anselmus, 또는 안셀모)는 15살 되던 해에 수도원에 입회하려 하였으나 부친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1056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프랑스 동부의 부르고뉴(Bourgogne)로 공부하러 
    집을 떠났고, 1059년에는 노르망디(Normandie)의 베크(Bec)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당시 수도원 원장은 란프랑쿠스(Lanfrancus)로 안셀무스는 그의 제자이자 친구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1060년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정식으로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자가 되었다. 
    
    1067년에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된 성 안셀무스는 제자인 동료 수도자들을 위해서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고, 
    윤리 교육과 종교 교육에 힘씀으로써 베크 수도원 학교를 명문 학교로 발전시켰다. 
    1078년에 수도원 원장이 된 그는 박학다식과 성덕에 대한 소문을 듣고 수많은 청년들이 베크 수도원으로 
    몰려들자 그들을 한곳에서 교육할 수 없어 프랑스와 영국 여러 곳에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경계를 넘어 영국에까지 명성을 떨친 성 안셀무스는 란프랑쿠스가 사망한 뒤 
    영국 왕 윌리엄 2세(William II Rufus)에 의해 1093년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성 안셀무스는 이때부터 적지 않은 분쟁에 휩싸였다. 영국 국왕의 교회 직무에 대한 간섭에 반발하고 
    교황의 권위를 위해 투쟁하며 성직자들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국왕은 물론 
    다른 많은 주교들로부터도 배척을 받게 되었다. 안셀무스는 1093년까지 베크를 떠나지 않고 
    국왕 윌리엄 2세와 격렬한 논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결국 1097년 영국을 떠나 로마로 망명을 갔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7월 29일) 역시 윌리엄의 요구를 반대하자, 
    윌리엄은 안셀무스를 유배시키겠다고 위협하였으나 끝내는 안셀무스의 귀국을 허용하였다. 
    1098년 우르바누스 2세 교황의 요청에 따라 성 안셀무스는 바리(Bari) 공의회에 참석하였으며, 
    성령을 두고 벌인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필리오퀘'(filioque) 논쟁을 조정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1100년에 윌리엄 2세 국왕이 사망하자 안셀무스는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또 다시 
    윌리엄의 후계자인 헨리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하지 않아 1103년에 다시 로마로 망명길에 올랐다. 
    1102년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공의회에서 안셀무스는 노예 매매를 극렬히 비난하였다. 
    
    그는 영국 국왕을 상대로 하여 교회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치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그 당시 그는 위대한 신학자요 '스콜라 학파의 아버지'란 칭호를 이미 얻고 있었다. 
    그는 계시와 이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아리스토텔리스파의 변증법에서 이용하는 이성주의를 
    신학에 성공적으로 도입시킨 첫 번째 인물이었다. 
    
    그는 완전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개념에서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한 “독어록”(獨語錄, Monologion)의 저자이다. 
    이 사상은 후대의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데카르트(Descartes) 그리고 헤겔(Hegel)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 안셀무스의 “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는 중세의 강생에 관한 
    신학 논문 중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대작이다. 
    그의 저서 중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De fide Trinitatis), “동정녀 잉태론”(De Conceptu Virginali), 
    “진리론”(De Veritate) 그리고 400여 통의 편지와 기도 및 묵상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다. 
    그는 1109년 4월 21일 캔터베리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492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Alexander IV)에 의해 시성되었고, 
    1720년에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단테는 신곡의 천국 편에서 태양권 안에 있는 빛과 힘의 영들 가운데 안셀무스를 언급할 정도였다. 
    성 안셀무스의 상징은 배이다. 
    
    
    
    성 안셀모 주교 학자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아오스타에서 1033년에 태어났다. 
    프랑스 르벡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원에 입회하여 그 곳에서 회원들에게 신학을 가르쳤고 
    영성 생활에서 신속한 진보를 이루었다. 영국에 가서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선임되었다. 
    거기에서 교회의 자유를 위해 힘써 투쟁했고 두 번이나 유배형을 당했다. 
    신비신학에 관한 훌륭한 저서를 많이 남겼다. 1109년에 세상을 떠났다.
    
    성 안셀모 주교의 [프로스로기온]에서
    (Cap. 14. 16. 26: Opera omnia, edit. Schmitt, Secovii, 1938, 1,111-113. 121-122)
    
    당신을 즐기도록 당신을 알고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내 영혼아, 네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느냐? 너는 하느님을 찾고 있었는데, 
    하느님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높으시고 
    그분보다 더 좋은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너는 그분이 생명 자체이시고 빛이시며 지혜이시고 선이시며 영원한 행복이시고 복된 영원이시며 
    어디에나 언제나 계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었다.
    
    나를 형성하시고 또 변모시키신 내 주 하느님이시여, 
    갈망하는 내 영혼에게 당신은 내 영혼이 본 것과 다르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이 영혼이 갈망하는 것을 환히 보게 해주소서. 내 영혼은 보는 것 이상으로 보고파 애달아 하지만 
    그가 본 것 외에는 어둠밖에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아니, 그는 어둠도 보지 못합니다. 
    당신 안에는 어둠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은 자신의 어둠 때문에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여, 당신이 거하시는 빛은 진정코 다다를 수 없는 빛입니다. 
    그 빛을 꿰뚫어 거기에 계신 당신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빛은 나에게 너무도 강렬하여 나는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하오나, 나의 연약한 시력이 태양 자체를 
    직접 바라보지 못하면서 태양의 빛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보는 것처럼 
    나도 무엇을 보든지 당신의 그 빛으로 말미암아 보는 것입니다.
    
    나의 지성은 그 빛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 빛 자체는 너무 눈부시어 내 지성은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내 영혼은 그것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내 영혼의 눈은 그 빛의 광휘로써 눈부시고 그 충만성으로 압도되며 그 광대함으로 인해 당황하고 
    그 넓이로 말미암아 어리둥절해집니다.
    
    오, 높으시고 다다를 수 없는 빛이시여! 오, 완전하고도 복된 진리이시여! 
    나는 당신과 이렇게도 가까이 있는데 당신은 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계신지요! 
    나는 당신의 시야 안에 들어 있는데 당신은 내 시야에서 얼마나 멀리 계신지요! 
    당신은 온전히 처처에 계시오나 나는 당신을 보지 못합니다. 
    당신 안에서 나는 움직이고 당신 안에 나는 머무르면서도, 나는 당신께 가까이 이를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내 안에 계시고 내 주위에 계시어도 나는 당신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 하느님이시여, 비오니, 내가 당신을 즐기도록 당신을 알고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그리고 이 현세에서 마음껏 즐길 수 없다면 
    그 즐거움이 충만에 이를 때까지 내가 매일매일 진보하게 하소서. 
    이 현세 생활 중에 당신에 대한 지식이 내 안에서 자라나 하늘 나라에서 완성되게 하소서. 
    당신에 대한 사랑이 이승에서 내 안에 자라나 저승에서 실제로 소유함으로써 완전히 되도록 해주소서.
    
    주여, 당신은 우리가 성자를 통하여 당신께 청하도록 명하시고, 아니, 오히려 권고해 주시면서 
    우리 기쁨이 완전하게 되도록 우리가 청하는 바를 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여 비오니, 당신께서 우리의 놀라우신 조언자를 통하여 권고해 주시는 대로 
    내가 당신께서 약속하신 것을 당신의 성실하심을 통하여 받게 해주시고 
    내 기쁨이 완전하게 되도록 해주소서. 
    성실한 하느님이시여, 간절히 비오니, 
    내 기쁨이 완전하게 되도록 당신이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받게 해주소서.
    
    그때까지 나의 정신이 그것을 묵상하고 내 혀가 그것을 말하며 내 마음이 그것을 사랑하고 
    내 입이 그것을 전하게 해주소서. 내가 마침내 주님의 기쁨으로 들어갈 때까지 
    내 영혼이 그것을 애틋이 찾고, 내 육신이 그것을 열렬히 구하며, 
    내 존재 모두가 그것을 갈망하게 해주소서. 
    삼위 일체이신 주 하느님,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 아멘.
    
    
    
    성 안셀모(St. Anselm, 4월 21일)
     
    중세 유럽의 최고 신학자, 하느님을 존재론적으로 증명한 학자주교
    1033~1109. 이탈리아 출생. 주교학자.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
     
    성인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아오스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영향으로 어렸을 적부터 엄격한 종교교육을 받았다.
    15살에 수도원에 들어가려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종교적 열의를 잃고 신앙생활을 멀리하며 방황했다.
     
    그러나 부모가 모두 사망한 뒤 1060년 수도원에 정식 입회해 학문 연구에 
    몰두하고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사상과 강의로 이름을 널리 떨쳤다.
     
    성인은 1078년 수도원장에 선출됐고 유럽지역 청년과 수많은 이들이 그의 명성을 좇아 몰려들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 등에 많은 수도원을 설립하며 복음 전파에 힘썼다.
     
    중세 유럽 최고의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성인은 하느님을 존재론적으로 
    증명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성인은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사고(思考)할 수밖에 없다는 
    정의에서 출발해 하느님을 '더 이상 사고될 수 없는' 존재로 설명한다.
     성인은 또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이성주의를 신학과 접목시키며 
    계시와 이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후대에 길이 남은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인간의 개념과 하느님 존재를 증명한 
    「독어록」(Monologium)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신학적으로 가장 유명한 저서는 「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다.
     
    이 밖에도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De fide Trinitatis), 
    「헬라인들의 입장과는 다른 성령의 발현」(The Procession of the Holy Spirit against the Greeks), 
    「진리론」(De Veritate) 등이 있으며 400여 통에 이르는 편지와 기도, 묵상글이 전해진다.
     
    1093년 영국왕 윌리엄 2세는 많은 이들에게 추앙받는 성인을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했다. 
    그러나 성인은 대주교로서 영국왕이 교황과의 관계를 멀리하며 성직자들을 직접 임명하는데 반대하고 
    교회 내 노예 매매를 금지하는 등 영국 교회 개혁에 칼날을 들이대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성인은 1494년 성인품에 올랐으며 1720년 교황 클레멘스 11세에 의해 주교학자로 선포됐다.
     [평화신문, 제1015호(2009년 4월 19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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