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2월 26일) 성녀 바울라 몬탈 포르네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09:21 ㆍ조회:411 ㆍ추천:0

오늘의 聖人(2월 26일) 성녀 바울라 몬탈 포르네스  
    
     
    
    성녀 바울라 몬탈 포르네스(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Paula Montal Fornes of St. Joseph de Calasanz)
    축일 2월 26일, 신분 수녀, 설립자, 활동연도1799-1889년     
    
     같은이름- 갈라산스, 갈라상스, 몬딸, 빠올라, 빠울라, 칼라산스, 칼라산즈, 파올라, 파울라  
    
    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성녀 바울라 몬탈 포르네스(Paula Montal Fornes de San Josephus de Calasanz)는 
    1799년 10월 11일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 부근 해안도시인 아레니스 데 마르(Arenys de Mar)에서 
    태어나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녀는 겸손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1799-1829년).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홀로 다섯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를 위해 
    장녀로서 고된 일을 하며 가사를 도왔다. 동정 마리아께 대한 사랑과 본당에서의 영성생활을 통해 많은 어려움을 
    이겨냈는데, 이런 경험을 통해 그녀는 그 시대에 소녀와 젊은 여성 그리고 부인들이 교육과 문화를 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르고 계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국경도시이자 군사 요새인 헤로나(Gerona) 인근의 피게라스(Fiqueras)에 
    눈길을 두었다. 1829년 나이 서른에 그녀는 절친한 친구인 이네스 부스케츠(Ines Busquets)와 함께 
    그 지역의 중심지로 이주하여 소녀들을 위한 첫 번째 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는 기존의 소년들 중심의 학교와는 
    전혀 다른 학교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교회 안에서 소녀와 젊은 여성들의 전인적 
    그리스도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카리스마의 사도직이 탄생하였다. 이 사도직은 여성들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사회를 변혁하는 것을 지향하였다. 그래서 그녀를 따르는 이들은 교육이라는 네 번째 서원을 발함으로써 
    다른 이들과 구분되고 있다.
    
    1837년 이후 그녀와 그녀의 공동체는 성 요셉 데 갈라산즈(8월 25일)의 정신을 온전히 따르며 
    그의 영성과 규칙에 따라 살고자 했다. 그런 목적으로 자신의 고향인 아레니스 데 마르에 1842년 두 번째 학교를 
    설립한 이후 그녀는 바르셀로나 인근의 해안도시인 마타로(Mataro)에서 성 요셉 데 갈라산즈가 설립한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일명 Piarist)의 신부들을 직접 만났다. 그리고 1846년 바르셀로나 북쪽의 사바델(Sabadell)에 
    세 번째 학교를 개교했는데, 이 학교는 그녀가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한 사도직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사바델의 학교에서 그녀가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 신부인 야신토 펠리우(Jacinto Feliu)와 
    아구스틴 카사노바스(Agustin Casanovas)와 함께 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그들의 도움과 지도를 받아 
    그녀는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형식의 수도회에 대한 교회법적 틀을 갖추게 되었다. 
    1847년 2월 2일 그녀는 마리아 수녀회(Daughter of Mary, 또는 경건한 학교 수녀회 Pious School Sisters)의 일원으로서 
    처음부터 함께한 동료인 이네스 부스케츠, 펠리치아 클라벨(Felicia Clavell), 프란치스카 데 도밍고(Francisca de Domingo)와 
    함께 서원을 하며 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바울라라는 수도명을 택했다. 1847년 3월 14일 사바델에서 열린 총회에서 
    그녀는 총장이나 부총장의 직책을 맡지는 않았지만 일생을 통해 수녀회를 이끌었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1860년 
    교황 비오 9세(Pius IX)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1829년부터 1859년까지 그녀는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개인적으로 7개의 학교를 개교하였다. 
    1829년 피게라스의 학교를 시작으로 해서 1842년 아레니스 데 마르, 1846년 사바델, 1849년 이구알라다(Igualada), 
    1850년 벤드렐(Vendrell), 1852년 마즈노우(Masnou), 1859년 올레사 데 몬세라트(Olesa de Montserrat)에 학교를 열었다. 
    그리고 다른 4개의 학교, 즉 헤로나(1853년), 블라네스(Blanes, 1854년), 바르셀로나(1857년), 소예르(Soller, 1857년)의 학교를 
    설립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수녀들의 교육에 힘썼고, 자신의 일생에서 매우 역동적이며 예언적인 시기를 살았다.
    
    1859년 개교한 바르셀로나 인근 올레사 데 몬세라트(Olesa de Montserrat)의 학교는 그녀가 개인적으로 설립한 마지막 학교로, 
    가장 좋아하던 곳이었다. 가난하고 작은 이 마을의 수녀원에서 그녀는 종신서원을 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다
    (1859-1889년). 이 30년의 시간은 그녀의 값진 증거와 관대하고 거룩한 삶의 모범으로 혜택을 받은 올레사의 소녀와 
    젊은 여성들에게 은총의 시기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했고, 그녀는 수녀회를 위해 전적으로 하느님께 
    순명하였다. 그녀의 교육 방법은 그녀가 설립한 학교의 교육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영성은 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모범을 따르는 것과 자신들의 고유한 카리스마를 통해 여성들의 전인적인 
    그리스도교 교육을 완성하도록 돕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 1889년 2월 26일 올레사 데 몬세라트에서 
    그녀가 선종했을 때 이미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3백 명이 넘는 회원들이 에스파냐 전역에 걸쳐 19개의 학교를 운영하며 
    설립자의 유산인 교육 이념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1993년 4월 1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11월 25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특별히 19세기의 여성들에게 교육 사도직을 통해 사랑과 희망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이룬 이 교육 활동은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그녀의 정신을 따르는 수녀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성녀 파울라 몬탈 포르네스 데 산 호세 데 칼라산스 - 마리아의 딸들 수녀회 창설자
    
    파울라(Paula Montal Fornes de San Jose de Calasanz, 1799-1889)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Barcelona) 인근 지역인 
    아레니스 데 마르(Arenys de Mar)에서 아버지 라몬(Ramon)과 어머니 비센타 포르네스 몬탈(Vicenta Fornes Montal) 
    사이에서 태어났다. 파울라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어렵게 지낸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일찍부터 기도를 많이 하였고 명상적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졌다. 
    
    30세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고 신앙생활에 정진하던 파울라는 자신이 수도 성소를 받았음을 깨닫고 친구인 
    이네스 부스케츠(Inez Busquets)와 함께 헤로나(Gerona) 지방으로 가 그곳에서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 과정을 
    제공하는 동시에 영성적인 지도를 할 수 있는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크게 성공하였고, 이에 힘입어 파울라는 
    1842년 5월 기숙사를 갖춘 전문학교를 개교하였으며, 1846년에는 세 번째 학교까지 개교하였다. 
    
    파울라는 ‘마리아의 딸들’(Daughters of Mary)이라는 수녀회를 1847년 2월 2일에 창설하고 자신의 수도명(修道名)을 
    ‘칼라산스 성 요셉의 파울라’(Paula of St. Joseph of Calasanz)로 택하였다. 세 명의 동료가 수도원 창설이라는 
    거룩한 모험에 동참해 주었고, 파울라 수녀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확고한 지도력을 발휘하자 많은 처녀가 
    이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이후 수녀회는 교육에 역량을 집중하여 얻은 결실과 성과를 보다 더 확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1860년 5월 교황 비오 9세(1846-1878 재위)는 ‘교직에 종사하는 경건한 수녀들’(the Pious School Sisters)이라고도 
    불리는 ‘마리아의 딸들 수녀회’를 정식 수도회로 승인하였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865년,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 2세(1833-1868 재위)도 마리아의 딸들 수녀회를 정식 수도회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1954년, 마리아의 딸 수녀회는 미국에 진출하였다. 
    
    파울라 수녀는 오랜 세월 학교 교육에 헌신하다가 마침내 기진하여 올레사 데 몬트세라트(Olesa de Montserrat)에서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Piarist)의 회칙에 충실한 수녀로서 선종하였으며, 1988년에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1993년 4월 1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울라 수녀를 복자로 선포하면서 성 요셉 칼라산스 영성의 발자취를 
    충실히 좇으며 살았고, 그녀의 생애와 심오한 특은을 피아리스트회, 일명 스콜라피오회(Scholarum Piarum)에 전수한 
    그녀의 공적을 높이 기렸다. 봉사와 헌신을 가득했던 그녀의 삶은 지극히 영광스러웠기 때문이다. 
    
    2001년 11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울라 수녀를 시성하였다.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말을 하였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마리아의 딸들 수녀회, 
    일명 교직에 종사하는 경건한 수녀들이라는 수도회를 창설한 성 요셉 데 칼라산스의 파울라 몬탈 포르네스 성녀가 
    지상에서 거룩한 삶을 마치자 예수님께서는 성녀를 천국으로 부르시어 하느님 나라의 충만함 안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파울라 수녀는 어린 시절 고향인 아레니스 데 마르에서 많은 사도직 활동을 하였으며, 열심한 기도와 하느님을 향한 
    내면의 뜨거운 사랑은 그녀를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 후 파울라 수녀는 성 요셉 칼라산스가 
    일생을 통해 추구하였던 ‘굳건한 신앙과 학문’에 깊은 영감을 받고 수도회를 창설하였습니다. 
    수도회를 창설한 파울라 수녀는 여성들과 이 여성들이 이룩하는 가정이 ‘하느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 안에서 소녀들을 
    교육하여 그들이 가정을 구하는 여성이 되게 하라’는 자신의 이상에 따라 양성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파울라 수녀는 생의 마지막 시기를 올레사 데 몬트세라트에서 30년 동안 조용히 살아가면서 이 시기 동안 
    하느님께서 다듬어주신 영성이 얼마나 참된 것인지 얼마나 확고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증거하였습니다. 
    
    많은 수도회가 19세기에 창설되었습니다. 파울라 성녀를 비롯한 많은 수도회 창설자들은 모두 그 시대에 드러난 
    수많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노력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복음과 성령의 영감을 받은 교회는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노력하였고 이들은 모두 그러한 교회의 노력에 동참하였습니다. 성녀 파울라가 남긴 메시지는 오늘날도 
    여전히 생생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이분의 이념과 특은은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한 
    모든 세대의 사람들을 양성하는 데에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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