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사도 성 바오로의 개종 축일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3:57 ㆍ조회:415 ㆍ추천:0
1월 25일 사도 성 바오로의 개종 축일
    
     
    
    사도 성 바오로의 개종 축일 1월 25일   
        
    성 바오로(67년경)는 벤야민 지파의 유다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유명한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했던 분이다.그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까지는 사울이라 불렀고, 천막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으며 크리스찬의 열렬한 박해자였고,첫 순교자이신 성 스테파노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그는 크리스찬들을 박멸할 목적으로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에 유명한 환시를 보는데(34-36년 사이), 이것이 
    그의 극적인 개종과 더불어 이방인의 사도로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다음,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커스로 돌아오면서부터 그의 파란만장한 선교사 생활이 막을 올린다.
    그는 39년경에 바르나바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나고 공식적으로 크리스찬 공동체에 입적한 후,
    43년경에 안티오키아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교회의 교사가 되는데,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그의 대 전교활동의 
    서막을 올린 결과가 되었다.
    
    그 이후로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 여행을 한다.流湧?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하여 키프로스 섬에 머물렀고 
    그 다음 지금의 터어키를 통과했다.사도들의 예루살렘회의 후에 바오로 사도는 제2차 여행을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명백하게 ’12 사도들의 파견’이라고 표현한다(사도 15,36-18,22).
    
    터어키를 다시 횡단하여 프리기아와 그가 아팠던 갈라디아(갈라 4,13)에서 복음을 전한다.그 다음 루가와 함께 
    유럽으로 들어와서 필립비 공동체를 세운?희랍 남부). 한 동안 감옥 생활을 한 후 희랍에서 복음을 전한다.
    아테네에서의 복음 전파는 철학자들 앞에서 좌절된다.고린토에 가서 공동체를 세우는데 그 교회는 바오로 사도를 
    매우 성가시게 하였다. 그후 훈오?되돌아 왔다.
    
    제3차 여행 동안 바오로 사도는(사도 18,23- 21,17)현재 터어키 지역에 속하는 교회, 특히 에페소 교회, 
    그 후 희랍에 속하는 교회와 고린토 교회를 두루 다녔다. 밀레도스를 지나면서 바오로 사도는 장로들에게 
    자기가 당한 고난을 말해준다.이 말 그대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얼마 안되어 그는 히브리인들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사도 21장). 그는 로마 시민이므로 로마에 항소하였다.이렇게 로마를 향하여 4번째 여행이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자유의 몸이 아니다(사도21-26장). 60년 아니면 61년에 도착하여 63년경까지 감옥에 갇혔다.
    한편 좀 자유스런 몸이 되면서 로마의 그리스도 신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옥중 서간’을 쓴다.63년경 감옥에서 
    해방되어 아마도 스페인을 향하여 마지막 여행을 했는지도 모른다(로마 15,24-28).아니면 다가올 자기 운명을 
    편지로 써서 알려준 디모테오와 디도의 공동체를 향하여 갔을지도 모른다.그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67년경 순교를 당하신다.(성바오로수도회홈)
    
    
    
    바오로의 전(全)생애는 단 하나의 체험-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과 만난 체험-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는 유대교의 열성 신봉자로서 예수님의 모든 추종자에 대해 미움을 갖게 되었고 ’교회를 괴롭히기’시작했다."
    그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어 내어 감옥에 쳐 넣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신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자가 되었으며,
    단 하나의 목적-화해를 이루고 한 분의 구세주를 체험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도구로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에 그의 모든 힘을 불태웠다.
    
    바오로의 일생은 지칠 줄 모르고 십자가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에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묻힌다.그는 죄가 되는 모든 것, 그리고 세상에서 구속되지 않은 모든 것에서 죽는다.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으며, 이미 그리스도의 승리에참여하고, 어느 날 그분처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할 것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며 그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실 것이다.
    
    이 세상에 전하는 바오로의 위대한 메시지는 이러하다 :너희는 오로지 하느님에 의하여 구원된 것이지 
    너희가 무엇을 해냈기 때문에 구원된 것은 아니다.구원의 신앙은 온전히 자유롭고 인격적인 선물이며, 그리스도께 
    완전히 자신을 맡기는 사랑이고,율법이 지금까지 이룰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선행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의탁이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고린 13,4-7)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홈)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 주교의 강론에서
    (Hom. 2 de laudibus sancti Pauli: PG 50,477-480)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견디어 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고 그 본성은 얼마나 큰 위엄을 지니며 또 우리 인간은 얼마나 큰 덕행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사도 바울로는 다른 누구보다 더 훌륭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바울로는 매일매일 더욱 높은 상태로 올라가고, 
    매일매일 더욱 큰 열성으로 일어나며,매일 당하는 위험과 투쟁했습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봅니다."라고 말할 때 그는 이것을 보여 줍니다.
    
    바울로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다른 이들도 자신의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다음의 말로 촉구 했습니다."여러분도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그는 또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과 모욕과 온갖 수치 앞에서 다시금 기뻐하면서고린토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정의의 무기라고 말할 때 
    자신이 이런 것들로 부터 많은 유익을 거두었음을 보여 줍니다.
    
    바울로는 또 원수들의 위협 가운데 갇혀 있을 때 그들의 위협 가운데서 거둔 승리를 기쁜 마음으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매질과 모욕과 욕설을 당할 때그 승리를 경축하고 전리품을 거두는 승리자인 듯 자랑하면서 
    다음의 말로 하느님께 감사 드렸습니다."우리 안에서 승리하시는 하느님께 항상 감사 드립니다."
    
    바울로는 영예를 찾는 우리의 열성보다 더 큰 열성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며 견디어 내야 하는 반대와 모욕을 달려가 찾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생명을 구하는 것 이상으로 죽음을 찾았고, 우리가 재화를 추구하는 그 이상으로 가난을 추구했으며,
    우리가 일을 마친 다음 휴시을 찾는 그 이상으로 일 자체를 찾았습니다. 바울로가 두려워하고 무서워 한것은 다음 한 가지, 
    즉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두려워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Ⅸ좡求?것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 그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바울로는 또 다른 무엇보다도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즐거워 했습니다.
    이 사랑을 지닐 때 다른 누구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사랑이 없다면 그에겐 제후들과 권력자들과의 친분 관계도 아무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없이 제후들과 권력자들 가운데 사는 것보다는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면서 가장 비천한 사람이 되어 
    저주받는 사람들 가운데 사는 것을 더 원했습니다.
    이 사랑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은 그에겐 유일하고도 무서운 고통이었습니다.
    그 생각마저 지옥이고 책벌이며 영속적이고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었습니다.
    
    반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는 것은 그에게 생명이요 온 세계요 천상적 상태이고 현세의 선물이요 
    하느님의 나라이고후세의 희망과 약속이며, 한마디로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이사랑 외에는 고통스러운 것도 또 즐거운 것도 없었고, 이 세상에있는 그 어떤 것도 쓴것으로나 단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을 썩은 풀처럼 멸시했습니다.
    폭군들이나 또는 분노를 내뿜는 사람들은 그에게 흡혈모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참을 수 있기에,죽음과 고초와 일천 번의 형벌도 어린이의 장난으로 여겼습니다.
    (가톨릭홈)
    
     
    
    사도
    사도라는 말은 희랍 원佇?아뽀스똘로스(Αποδτολοs)이며, 그 뜻은 ’누구를 보낸다.’
    또는 사자(메시지 전달자)라는 말이고,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뽑으신 12 제자라는 뜻으로 
    통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라는 말은 희랍어 구약성서에 단 한번 사용하였으며, 이런 뜻의 아라메아어는 
    예수님 시대 이전에는 사용한 기록이 없습니다.그래서 이 말이 예수님께서 생전에 쓰신 말인지, 
    초대교회 때에 쓰여진 말인지는 명확치 않습니다.기록의 근거는 이러하지만, 복음 사가들은 예수님께서 
    첫 파견자들인 12 제자를 지칭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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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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