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24일) 성녀 마리아 아 산타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르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8:38 ㆍ조회:365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24일) 성녀 마리아 아 산타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르  
    
    
     
    성녀 마리아 아 산타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르(Mary a santa Euphrasia Pelletier) 축일 4월 24일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앙제(Angers) 활동연도 1796-1868년  
    
     같은이름-메리, 미리암, 에우쁘라시아, 에우프라씨아, 유프라시아   
    
    성녀 마리아 아 산타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르(Maria a santa Euphrasia Pelletier)는 
    1796년 7월 31일 프랑스 서부 방데 연안의 누아르무티에(Noirmoutier) 섬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부모는 방데 전쟁을 피하여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그녀는 18세 되던 1814년 10월 20일 애덕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1825년에 투르(Tours)에 위치한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앙제에 수녀원을 설립해 달라는 앙제 주교의 요청을 받고 파견되어 
    '앙제의 착한 목자 애덕 성모 수녀원'을 성공적으로 설립한 뒤에 투르로 돌아왔다. 
    그러나 앙제 수녀원이 운영상 많은 어려움을 겪자 다시 앙제로 가서 수녀원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녀가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자기 수녀회의 구조를 크게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나 
    수녀원 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녀는 야심이 많고 순종하지 못한다는 비난과 함께 
    '능력은 있으나 한 나라를 다스려야 적성이 풀릴 사람'이란 평을 받았다. 
    마침내 그녀는 앙제에 '착한 목자 수녀회'를 설립하고, 
    1835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윤리적 위험에 처한 여성들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설립되었다. 
    성녀 에우프라시아가 33년 동안 이 수녀회를 지도하는 동안 110개의 수녀원으로 발전하였는데, 
    현재 이 수녀회의 회원 수는 10,000명이 넘는다. 그녀는 1868년 4월 24일 앙제에서 선종하였으며, 
    1933년 시복되고 194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수도회 창설자를 찾아서 - 성 마리 유프라시아
    착한 목자수녀회 · 관상수녀회 설립
     
    착한 목자는 단 한 마리의 양도 포기하지 않는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상처 입은 것은 
    싸매주고 아픈 것은 잘 먹여줄 뿐 아니라, 딱하고 불쌍한 양일수록 더 큰 사랑과 정성을 쏟아 붓는다. 
    착한 목자에게 한 마리 양은 온 세상과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양이 온전하건 상처 입었건 관계없이(에제 34,16; 요한 10,11 참조).
     
    ‘착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성 요한 에우데스의 영성을 따르는 
    성녀 마리 유프라시아(1796-1868)는 1835년 ‘착한 목자 수녀회’와 ‘착한 목자 관상 수녀회’를 설립했다. 
    죄 없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 뿐 아니라 한 마리의 양까지 구원하기 위함이다.
     
    유프라시아는 1796년 프랑스의 작은 섬 느와무티에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의사였던 아버지가 가난하고 병든 어린이들을 치료하고 돌봐주는 모습과 자상한 어머니가 
    늘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는 것을 보며 자랐다. 똑똑하고 활발하고 생기가 넘쳤던 어린 유프라시아는 
    대머리 노인의 가발을 벗길 정도로 장난이 심하기도 했지만, 매일 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기도를 바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특히 그녀는 친구들을 동원해 1백 50년이나 방치됐던 
    지하 성당을 새롭게 단장해 놓는 등 어린 시절에 이미 특출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성장한 뒤 유프라시아는 느와무티에를 떠나 술랑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성 요한 에우데스가 
    불우한 여성들을 위해 세운 ‘피난처’를 알게 되고 18세 때 ‘애덕 성모 수녀회’에 입회, 
    요한 에우데스 성인의 영성에 침잠하게 된다. 동료 수녀들은 “늘 친절하고 남을 잘 도와주고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애정을 갖고 대한다”며 그녀를 아주 좋아했고, 
    그녀는 이례적으로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원장직을 맡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타락한 사마리아 여인과 일곱 마귀가 들린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랑했듯이 
    유프라시아는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여성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를 청산하고 
    순결하게 살 수 있도록 기도와 속죄 생활을 하는 수녀회를 설립했다. 
    주위 사람에 따라 한 영혼은 천사도 될 수 있고 악마도 될 수 있다고 보았기에, 
    유프라시아는 그들이 하느님만 신뢰하는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한 잔의 우유가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그를 회개로 
    인도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라고 결코 말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우리가 은총에 성실치 못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유프라시아는 수녀들을 온 세계에 파견하고 각 수녀회 분원들이 서로 원활한 교류를 하려면 수녀회에 
    총장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수녀회를 관할하던 지역 주교들은 그녀가 모든 수녀회를 
    장악하려는 사욕을 가졌다고 오해함으로써 오랫동안 그녀를 반대했다. 
    그러나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1835년 전세계 모든 수녀회에 총장 제도를 
    도입하라는 교서를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유프라시아가 세운 수녀회도 자신이 속했던 
    애덕 성모 수녀회와 구별되는 ‘착한 목자 수녀회’라는 국제연합수녀회로 거듭나게 됐다. 
    새 수녀회는 유프라시아 생존 당시 이미 1백 10개의 분원을 낼 정도로 발전했다.
     
    “한 영혼은 온 세상보다 더 소중합니다”라는 신조대로 유프라시아는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떤 내적, 외적인 상처나 죄악도 인간 영혼의 본질을 상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수녀들에게 어떤 잘못을 저지른 소녀들도 결코 단죄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또한 이렇게 죄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관용이 필요했다. 
    따라서 그녀는 늘 “당신의 마음을 넓히십시오”라고 호소하곤 했다.
     
    영혼 구원을 위한 유프라시아의 뜨거운 열정은 그녀의 뒤를 따르는 수녀회 안에서 ‘영성서원’이라는
     제4서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는 31 탄생 2백주년을 맞는 유프라시아는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주님의 일에 전적으로 투신하기를 소망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사랑받지 못하는 불우한 처지의 소녀들, 
    부당하게 상처입고 방황하는 소녀들이 너무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성 마리 유프라시아의 희망 기도
     
    오, 하느님
    제 마음의 고동소리가 날 때마다
    죄인을 위하여 은총과 용서를 비는
    기도가 되게 하소서.
    제 호흡은 주님께 한없는 자비를 비는 것이오며
    제가 보내는 모든 시선이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덕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과 모든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이
    제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아멘.
     
    [평화신문, 1996년 7월 28일, 남기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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