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1월 1일) 성 풀젠시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1:09 ㆍ조회:506 ㆍ추천:0
오늘의 聖人(1월 1일) 성 풀젠시오
     
    
    
    성 풀젠시오(Fulgentius) 축일 1월 1일  
    신분 주교, 증거자  활동지역 루스페(Ruspe) 활동연도 467-533년 
    
     같은이름- 풀겐티오, 풀겐티우스, 풀젠시우스, 풀젠티오, 풀젠티우스 
    
    카르타고(Carthag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파비우스 클라우디우스 고르디아누스 풀겐티우스(Fabius Claudius Gordianus Fulgentius, 또는 풀젠시오)는 
    어머니가 과부가 되면서부터 가문의 영지를 관리하였는데, 그의 탁월한 능력은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그는 카르타고의 재무관으로 임명되었으나 2년 후에 사임하면서부터 정통파 주교인 
    파우스투스(Faustus)가 지도하는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507년 그는 루스페(오늘날 튀니지의 쿠디아트 로스파)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 당시에는 아리우스파(Arianism)인 반달족(Vandals)이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통파 주교들이 사르데냐(Sardegna) 섬으로 추방당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그런대로 교구를 다스릴 수 있었다. 
    그는 사르데냐 섬의 칼리아리(Cagliari)에 유배된 동안에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는 한편, 반달족의 왕인 
    트라시문드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왕은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아리우스파 성직자와의 토론회를 주선하였으나 
    풀겐티우스의 영향력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518년에 사르데냐 섬으로 다시 추방해버렸다. 
    
    그 후 왕의 후계자인 힐데릭이 귀향을 허가하여 정상적으로 집무하였는데, 그의 재임 기간 대부분은 유배생활로 
    보냈다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신자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그의 이름만 들어도 아리우스파 성직자들은 
    겁을 내었다. 그는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배격하는 위대한 신학자이자 사목자였다. 
    그 후 그는 시르시니아(Circinia) 섬에 있는 수도원으로 은거하였다가 루스페로 돌아온 얼마 뒤에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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