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3월 15일)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16:40 ㆍ조회:448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15일)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 축일 3월 15일  
    신분 과부, 설립자, 활동연도 1591-1660년 
    
     같은이름- 루도비까, 루이사, 루이즈, 마리악, 마릴락  
    
    
       
    1591년 8월 프랑스의 뮤(Meux)에서 태어난 성녀 루도비카(Ludovica)는 아기 때에 
    어머니를 잃었으나 수녀들의 도움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안토니우스 레 그라(Antonius Le Gras) 백작과 결혼하여 12년 동안 행복한 생활을 
    한 후 남편과 사별하고 말았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뜻하지 않게도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로부터 영적지도를 받는 계기가 
    생기면서부터 일대 전환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녀는 잘 알고 있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9월 27일)를 찾았다. 
    그 당시에 성인은 ‘애덕회’를 조직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빈첸시오 성인은 
    성녀 루도비카의 소망을 받아들여 ‘애덕의 수녀회’를 설립하여 초대원장으로 루도비카를 임명하였다. 
    이 수녀회가 오늘날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라고 불리는 수녀회이다. 
    그때부터 그들의 수도원은 병원이요 성당은 교구의 모든 성당이며 봉쇄 구역은 길거리가 되었다. 
    회칙 초안도 그녀가 작성하였다.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관대한 사랑은 이 수녀회의 급속한 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1660년 3월 15일 성녀 루도비카가 파리에서 임종할 때 프랑스 내에는 이미 40개의 수도원이 있었고,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돕는 구호소는 수없이 많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봉사하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섬기는 이는 곧 그리스도이시니…” 그녀는 1920년 5월 9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3월 11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60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사회복지사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루도비카(루이즈) 드 마릴락(Louise de Marillac)
    
    루도비카 성인은 1591년 8월 12일 프랑스 뫼(Meux) 근처 ‘페리에 앙 브리에’에서 혼외 관계로 태어났다. 
    이런 사정 탓에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른 채 아버지 밑에서 루이 드 마릴락 귀족가문의 한 구성원으로 자랐다. 
    아버지가 결혼했을 때 성인은 적응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가 숙모가 수녀로 있던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 학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장차 수녀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게 되면서 
    내적 성찰 능력과 많은 지적인 기술을 익혔고, 수녀가 되겠다는 열망도 더 커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살림이 어려워지자 수녀원을 나와 하숙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성인은 이곳에서 나중에 도움이 될 가사일과 조직 운영기술을 배울 수 있었고 허브로 약을 제조하는 
    비법도 배웠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성인의 고전적이고 상류층 교육으로 다져진 귀족적인 풍모가 
    서민적이 되었고, 장차 성인이 하게 될 일도 잘 준비하게 되었다.
    
    그 뒤 성인은 프랑스 여왕의 비서였던 앙뜨완느 르 그라스와 결혼하여 아들 한명을 낳는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남편의 건강 탓에 오래가지 않았다. 한 남편의 아내로서 성인은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 사이를 오가며 그들과 어울렸다. 그러면서도 성인은 아주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는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편안해했다. 성인은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돕는데 
    헌신하는 부유한 부인들의 조직인 “사랑의 부인회(Ladies of Charity)”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성인에게도 이내 수난이 시작되었다. 내전으로 사회가 불안정했던 시기에 정부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던 
    두 숙부들이 수감되었다. 그 중에 한명은 공개처형 당했고, 다른 한명은 옥사했다. 1623년 남편 앙뜨완느는 
    몸져누웠고, 불과 이년 뒤인 1625년에 죽는다. 이 일로 성인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성인은 기도하는 동안 자신이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고 공동체 안에서 복음적인 충고자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환시를 보게 된다. 성인은 이 환시(성인 루이제의 오순절 체험)를 양피지에 기록하였고, 
    환난 중에도 지니고 다녔다. 이 양피지는 하느님이 성인을 이끌어주고 계심을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 환시에서 한 사제가 성인에게 나타났다. 성인은 이 사제를 나중에 그녀에게 장차 막역한 친구이자
    일의 협력자가 된 빈센트 드 폴 성인과 동일시하였다.
    
    1625년에 빈센트 드 폴은 선교회(Vincentians)를 설립하였고, 1629년에 성인을 프랑스 소재 여러 본당들에서 
    봉사하고 있던 사랑의 형제회(Confraternities of Charity)를 돕는 일에 초대하였다. 성인은 이 일을 하면서 
    내적으로 치유가 되었을 뿐 아니라, 빈첸시오 가족의 일원이자 장차 자신의 사도직이 될 일을 준비하게 되었다. 
    성인은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방문하였고, 경리 보고를 위해 회계 일도 
    맡았으며,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그들이 봉사하는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도록 격려하였다.
    
    이 일을 통해 성인은 가난한 이들의 필요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녀의 타고난 관리 기술도 계발하게 되었으며, 
    봉사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구조들도 찾아냈다. 성인은 1633년 11월 29일 자신의 집에서 젊은 처녀들을 모아 
    가난한 이들의 욕구를 읽어내어 그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훈련을 시작하게 된다. 
    이 소박한 시작이 애덕의 수녀회 탄생 배경이다. 그러나 자매회를 달리 ‘딸회’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빈센트 성인이 
    딸이라는 명칭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성인은 1634년 서원을 하고, 많은 지원자들을 모았다. 
    1642년에는 공동체 규칙서를 썼고, 빈센트 성인은 이 지원자들 가운데 네 명에게 서원을 허락하였다. 
    빈센트 성인은 이 수도회를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선교회 소속으로 두었으며, 루도비카 성인이 최고장상이 되었다. 
    성인은 수도회 회원들이 병원, 고아원, 그리고 다른 기관들을 설립하느라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였다. 
    그리고 성인은 자신과 빈센트 성인에게 영감을 받아 전개되고 있는 봉사 조직에 리더십과 전문 경영기술을 제공하였다.
     성인이 선종하기 전까지 프랑스에 40여개 이상의 집이 설립되었으며, 이후 이 수도회는 전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성인은 빈센트 드 폴 성인이 선종하기 바로 몇 달 전인 1660년 3월 15일 선종하였다. 1920년 시복되었고, 
    1934년에 교회의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교황 요한 23세는 1960년 성인을 그리스도인 사회사업가들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한 남편의 아내, 어머니, 교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멘토, 영적 지도자, 그리고 창설자로서 성인은 
    모든 여인의 모범이 되고 있다. 성인은 전 세계에서 봉사하고 있는 애덕의 부인회, 애덕의 딸회, 애덕의 자매회 
    그리고 이들의 많은 협조자와 협력기구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 사랑의 딸회는 현재 세계 77개국 3만여 명의 회원이 빈첸시오 성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 수도회는 지난 1978년 한국에 진출하여 경기도 군포시에 본원을 두고 20여 명의 회원이 
    경기도 한강 이북 나환자 정착촌, 요양원, 그리고 재가 환자들을 방문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 참고자료 : New Catholic Encyclopedia(1964)
    *참고자료 : www.stvincent.org/about/whoweare/stlouise.htm ; www.catholic.org/saints/saint.php?saint_id=196
    [가톨릭 사회복지, 2010년 여름 통권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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