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3월 3일) 성녀 가타리나 마리아 드렉셀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13:49 ㆍ조회:500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3일) 성녀 가타리나 마리아 드렉셀  
    
     
    
    성녀 가타리나 마리아 드렉셀(Catherine Mary Drexel) 축일 3월 3일  
    신분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지역 미국(USA) 활동연도 1858-1955년
    
     같은이름- 까따리나, 드레셀, 드레쎌, 드렉쎌, 카타리나, 캐서린  
    
     
    
    성녀 카타리나 마리아 드렉셀(Catharina Maria Drexel, 또는 가타리나 마리아 드렉셀)은 1858년 11월 2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의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유복한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자라면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녀는 흑인과 토착 미국인인 인디언들의 
    물질적, 영성적 삶의 질에 큰 관심을 갖게 되어 그들을 위한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했으나 이내 정말 필요하고 
    부족한 것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성녀 카타리나는 인디언과 유색인종의 권익을 위해 일하고 그들을 섬기기 위한 
    복된 성사의 수도회(Sisters of the Blessed Sacrament)를 설립하였다. 자신의 삶을 헌신하며 기금을 마련한 
    성녀 카타리나 원장은 1894년 뉴멕시코(New Mexico) 산타페(Santa Fe)에 인디언들을 위한 최초의 선교학교 
    개교식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미시시피(Mississippi) 강 서편의 인디언들을 위한 학교와 
    미국 남부 지방의 흑인들을 위한 학교들도 개교하였다. 1915년에는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 
    미국 최초의 흑인들을 위한 대학인 사비에르(Xavier)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녀가 선종할 무렵에는 이미 
    미국 전역에서 500명이 넘는 수녀들이 63개의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성녀 카타리나는 1988년 11월 2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2000년 10월 1일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녀 캐서린 메리 드렉셀 - 교육 사업과 빈자를 위한 선교활동에 전념한 성녀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 세이비어 대학교(Xavier University)를 설립한 선교 수녀 
    캐서린 메리 드렉셀(Katherine Marie Drexel, 1858-1955)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미국 흑인의 수호성녀이다. 
    
    캐서린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아버지 프랜시스 드렉셀(Francis A. Drexel)과 어머니 한나(Hannah) 
    사이에서 두 번째 딸로 태어났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태어난 지 한 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아버지 프랜시스는 천주교 신자인 엠마 부비에(Emma M. Bouvier)와 재혼하였다. 
    양어머니인 엠마는 캐서린과 그의 언니에게 훌륭한 신앙 교육을 시키면서 정성껏 돌보았다. 
    1879년 캐서린은 필라델피아 상류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았지만, 그녀는 상류 사회보다는 수도자의 삶에 
    점차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1901년에 캐서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녀를 키워 준 양어머니 엠마 역시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두 분이 돌아가시자 
    캐서린과 그의 언니는 매일매일 천 달러를 서도 남은 만큼의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다. 
    
    1886년 캐서린은 병이 들어 신병 치료를 하기 위해 독일로 가서 광천욕을 하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가톨릭 선교사무국 신설에 참여를 부탁받았고, 즉시 아메리칸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선교에 
    투신할 유럽인 사제와 수녀들을 모집하였다. 그다음 해 캐서린은 다코타(the Dakotas, 남부 다코타와 북부 다코타를 
    모두 아우르는 용어) 주, 와이오밍(Wyoming) 주, 몬태나(Montana) 주,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 오리건(Oregon) 주 
    그리고 뉴멕시코(New Mexico) 주에 학교를 세웠다. 그녀가 교황 레오 13세(1878-1903 재위)를 알현하였을 때, 
    교황이 그녀에게 선교 수녀가 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하자 깜짝 놀랐다. 
    
    그러나 교황 레오 13세의 권고에 따라 1889년 캐서린은 ‘자비의 수도회’(Sisters of Mercy) 지원자로 입회하였고, 
    그해 11월 7일 필라델피아 교구 라이언(Ryan) 대주교의 주례로 착복식을 하였다. 1891년 캐서린은 원주민과 
    유색 인종을 위한 ‘복된 성사의 수도회’(Sisters of the Blessed Sacrament)의 첫 수녀로 서원하였다. 
    그녀는 지원자를 받았고, 같은 해 말, 콘월 하이츠(Cornwall Heights, 필라델피아 근처에 있는 지역)에 세워진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녀가 된 사람은 21명에 이르렀다. 그들의 첫 번째 선교 활동지는 뉴멕시코에 있는 
    샌타페이(Santa Fe)의 아메리칸 원주민 직업학교(St. Catherine's Industrial Indian School)로, 이 학교는 캐서린의 
    기부로 설립된 학교였다. 이후 선교활동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어 나갔으며, 학교도 여러 곳에 신설하였다. 
    성 비오 10세 교황(1903-1914 재위)은 1907년 이 수도회를 예비 인가하였다. 그러자 캐서린은 당대의 종교 문제에 
    정통한 변호사 프랜시스 카브리니(Francis Cabrini)를 영입하였다. 
    
    수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세 가지 서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지만, 
    이 수도회의 수녀들은 거기에 하나를 더 서원하였다. 캐서린이 ‘복된 성사의 수도회’ 수녀들에게 요청한 
    네 번째 서원은 다음과 같다. “저는 ‘복된 성사의 수도회’ 규칙에 따라 원주민과 흑인에게 어머니가 될 것이며, 
    그들을 섬기는 시녀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원주민과 유색 인종을 방기(放棄)하는 일이나 
    그들을 소홀히 대하는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수도회 총장으로 선임된 캐서린은 수도회의 활동 영역을 계속 넓혀나갔다. 1912년 뉴멕시코에 있는 동안 
    그녀는 장티푸스에 걸렸고, 이에 휴양을 취해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못 이겨 한동안 휴식을 취하였다. 
    원기를 회복한 캐서린은 다시 업무에 복귀하였다. 1915년 캐서린은 뉴올리언스에 세이비어 대학교를 창설하였는데, 
    이 대학교는 미국 천주교회 기관이 흑인을 위해 세운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이었다. 
    
    캐서린은 1935년 심장마비로 수도회 총장 직분을 그만두기까지 수많은 사업을 추진하였고 자신이 받은 
    억만금의 유산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썼다. 병이 든 후 그녀는 관상 생활을 더욱 잘하고자 묵상과 기도에 
    전념하려는 일념으로 수도회가 경영하는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캐서린은 1955년 콘월 하이츠에서 선종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8년 11월 20일 캐서린 메리 드렉셀 수녀를 복자로 선포하였고, 
    2000년 10월 1일 성녀로 시성하였다.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말을 하였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야고 5,3). 오늘 미사의 제2독서인 <야고보 서간>에서 
    사도 야고보는 자신들의 재물을 과신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부자들을 엄하게 나무라고 있습니다. 
    캐서린 드렉셀 수녀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들의 재물은 자기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캐서린 수녀는 젊었을 때 많은 아메리칸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과 비참한 가난을 
    목격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캐서린 수녀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사업을 시행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이 받은 막대한 유산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큰 신뢰와 용기로 캐서린 수녀는 자신의 모든 재물을 하느님께 봉헌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온 삶을 하느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캐서린 수녀가 ‘복된 성사의 수도회’ 수녀들에게 가르친 영성은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과 기도로서 
    충만한 일치를 이루는 데 기반을 둔 것이었으며, 또한 수녀들에게 가난한 사람과 인종 차별로 멸시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열렬히 섬기도록 가르쳤습니다. 캐서린 수녀의 이러한 사도직은 그분이 시작한 교육 사업과 
    사회 봉사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고취시켰고 이는 다시 온갖 형태의 인종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캐서린 드렉셀 수녀는 자신의 모범적인 삶을 통하여, 미국 천주교회의 특별한 전통으로 오랫동안 지켜져 온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인 자선 활동과 그들과의 너그러운 연대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성녀 캐서린 메리 드렉셀의 축일은 3월 3일이다. [교회와역사, 2012년 10월호, 번역 송영웅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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