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28일) 성 베드로 샤넬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8:51 ㆍ조회:227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28일) 성 베드로 샤넬  
    
    
     
    성 베드로 샤넬(Peter Chanel) 축일 4월 28일  
    신부, 선교사, 순교자, 활동연도1803-1841년  
    
     같은이름-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프랑스 벨리(Belley) 근교 퀴에(Cuet)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출생한 성 베드로 샤넬(Petrus Chanel)은 
    어린 시절을 목동으로 지내다가 16세 때 멕시미외(Meximieux)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부르(Bourg) 대신학교에 들어가 1827년 7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1년 뒤 제네바 근처에 있는 
    암베리외(Amberieux) 대목구로 파견되어 여건이 불충분한 본당에서 3년 동안 본당신부로 있었으며, 
    1831년 콜랭(J.-C.M. Colin)이 외방선교를 위해 리옹(Lyon)에 설립한 마리아 선교 수도회에 
    입회하였으며, 그 후 5년 동안 벨리 신학교의 교수로 봉직하였다.
    
    1836년 그는 남태평양의 뉴헤브리디스(New Hebrides)의 선교사로 파견되어 타이티 서쪽에 위치한 
    푸투나 섬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두긴 하였으나, 추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의 아들에게 세례를 
    주려다가 주민들로부터 살해당하였다. 샤넬은 1889년 11월 17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954년 6월 12일에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그는 마리아 선교 수도회의 첫 순교자이자 오세아니아의 첫번째 순교자로서 오세아니아의 수호성인이다.
    
    
    
     성 베드로 샤넬 사제 순교자
    
    1803년 프랑스 퀴에읍에서 태어났다. 성직 계열에 들어가 몇년 간 사목 생활을 했다. 
    그 후 마리아회에 들어갔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선교사로서 오세아니아주로 갔다. 
    여러 가지 난관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을 참된 신앙에로 개종시켰다. 
    신앙을 증오하는 풍토 속에서 1841년 푸투나섬에서 살해당하여 순교했다.
    
    성 베드로 사제 순교자에 대한 찬사에서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다
    
    베드로는 마리아회에 입회하여 수도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요청에 따라 오세아니아주로 
    파견되어 아직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지 않은 태평양의 푸투나섬에 발을 디뎠다. 
    그 곳에서 그를 어디에나 동행했던 수사는 그의 선교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베드로는 태양열로 살갗이 그을고 때로는 배고픔으로 시달리면서 전교 후 집으로 돌아올 때 
    땀으로 범벅되어 피곤에 눌려 있었지만, 언제나 활기로 차 있었고 흡사 휴식에서 돌아오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생기 있고 쾌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만이 아니라 거의 매일같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푸투나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았고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조차 언제나 이해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행동이 거칠고 위협적이라도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비할 수 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푸투나 주민들이 그를 보고 "큰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동료 수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어려운 선교직에서는 우리가 성인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꾸준히 전파했으나 수고에 비해 매우 적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선교 사업에 용감히 달려들어 주민들의 영적이고 현실적인 필요에 봉사하였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모범과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탁하여, 
    깊은 신심으로 사랑했던 천주의 모친의 도움을 쉬지 않고 구했다.
    
    그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선포는 푸투나 추장들이 주민들을 자기 지배하에 두려고 장려하고 있던 
    악령들에 대한 예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때문에 추장들은 베드로가 뿌린 그리스도교 신앙의 씨앗들을 
    그를 죽임으로 해서 없애 버리려고 하여 그를 처참하게 살해했다.
    
    그러나 순교하기 전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어도 상관 없습니다. 이 섬에 그리스도의 신앙은 
    너무도 견고히 뿌리를 박았기에 내가 죽는다 해서 제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무엇보다 먼저 푸투나 주민 가운데서 열매를 맺었다. 
    즉, 그들은 모두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였고 
    오세아니아주의 다른 섬들도 그 수확을 함께 나누었다. 
    이제는 베드로를 그들의 첫 순교자로 여기고 그의 전구를 비는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번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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