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3월 21일) 성녀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17:31 ㆍ조회:500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21일) 성녀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성녀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Benedetta Cambiagio Frasinello) 축일 3월 21일  
    신분 설립자, 수녀, 활동연도 1791–1858년
    
     같은이름-베네데따, 캄비아조  
     
    성녀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는 1791년 10월 2일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의 란가스코(Langasco)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고 이는 그녀의 믿음에 깊숙이 뿌리를 박았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아직 어린 소녀였을 때 파비아(Pavia)에 정착했다. 성녀 베네데타는 20세 되던 해에 신비한 체험을 겪고 
    기도와 속죄의 삶을 살며 하느님을 위한 축성된 삶을 갈망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그녀는 1816년 
    조반니 프라시넬로(Giovanni Frassinello)와 결혼하고 2년 동안 함께 지냈다. 1818년 남편 조반니는 부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각자 '형제와 자매로서' 순결하게 지낼 것을 약속하고 대장암으로 투병 중인 성녀 베네데타의 여동생 
    마리아를 간호해 주기로 하였다.
    
    1825년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후 조반니는 성 히에로니무스 에밀리아니(Hieronymus Aemiliani, 2월 8일)가 설립한 
    '소마스카(Somascha)의 성직 수도회'에 입회했고, 성녀 베네데타는 카프리올로(Capriolo)의 우르술라회에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을 위해 봉헌하였다. 그녀는 일 년 후 건강상의 문제로 파비아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성 히에로니무스 에밀리아니에 의해 기적적으로 완전한 치유를 받았다.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주교의 허락하에 
    어린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성녀 베네데타는 도움이 필요했으나 그녀의 아버지는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파비아의 토시(Tosi) 주교는 조반니에게 소마스카의 성직 수도회를 나와 성녀 베네데타를 도와주도록 권고하였다. 
    둘은 서로에게 온전한 순결을 맹세하고 도시의 가난하고 소외된 소녀들의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교육적인 활약은 파비아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성녀 베네데타는 여성 최초로 
    이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기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그녀를 '공교육의 장본인'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녀는 젊은 여성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생활 규칙을 만들어 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성녀 베네데타는 일반 교육과 
    더불어 교리교육을 실시하였고 요리와 바느질 같은 유용한 기술을 가르쳐서 학생들을 '그리스도인 삶의 모범'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고 또 가족의 형성을 돕고자 하였다.
    
    이러한 성녀 베네데타의 업적은 당시에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유력한 인사들로부터 반대를 받았고 몇몇 성직자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1838년에 자신이 만든 조직을 파비아의 주교에게 넘기고 조반니를 포함한 5명의 
    동료들과 함께 제노바 지방의 론코 스크리비아(Ronco Scrivia)라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비아에서 
    했던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여학교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녀 베네데타는 베네딕토 섭리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소녀들에게 학업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곤 했고, 가난과 봉헌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수녀회는 그 규모를 점차 확대시켰고 성녀 베네데타는 죽을 때까지 수녀회의 발전을 이끌었다. 
    1858년 3월 21일 론코 스크리비아에서 생을 마감한 성녀 베네데타는 초자연적인 모성애의 모범이었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용기와 충성심을 보여준 좋은 본보기였다.
    
    오늘날 베네딕토 섭리 수녀회는 이탈리아, 에스파냐, 부룬디(Burundi), 코트디부아르(Cote d'Ivoire), 페루, 브라질에 퍼져 있다. 
    그들은 어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나약한 이들을 돌보고 있다. 설립자인 성녀 베네데타는 보게라(Voghera)에도 
    수녀원을 세웠는데, 그녀가 생을 마감하고 40년이 흐른 후 그곳의 주교는 그 수녀원을 나머지 수녀회와 분리하여 
    설립자를 공경하는 의미에서 하느님 섭리의 베네딕토 수녀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녀는 참된 아내이자 설립자였다. 
    성령께서 그녀를 이끌어 결혼 생활에서부터 교육과 종교적 정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남편의 관대한 도움으로 그녀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학교와 종교 단체를 세울 수 있었다. 
    성녀 베네데타는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사회'에서 가정을 만든다는 것과 여성들이 완전한 교육을 제공받아야 할 의무를 
    활성화시키고 젊은 여성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개척자로 여겨진다. 
    그녀는 1987년 5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2년 5월 19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녀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 결혼을 한 사람으로 수도자가 된 분
    
    ‘섭리의 베네딕도 딸들 수도회’(Benedictine Sisters of Providence) 창설자인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Benedetta Cambiagio Frassinello, 1791-1858)는 남편과 함께 교육 수준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녀는 이탈리아 제노바(Genova) 근처에 있는 란가스코(Langasco) 마을에서 
    태어나 아버지 주세페(Giuseppe)와 어머니 프란체스카(Francesca)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신앙심이 깊고 경건하게 살던 이 가족은 베네데타가 아직 어렸을 때 파비아(Pavia)로 이사하였다. 
    파비아에서 살던 베네데타는 20세가 되었을 때 매우 심오하면서도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그녀는 이 체험을 한 다음 더욱더 기도와 고행에 전념하였다. 
    
    베네데타는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에 순응하여 1816년 2월 7일, 
    조반니 바티스타 프라시넬로(Giovanni Battista Frassinello)와 결혼하여 2년 동안 보통 부부처럼 결혼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남편 조반니는 거룩한 삶을 갈망하는 베네데타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아 순결을 지키면서 
    남매지간처럼 살기로 약속하였다. 그 당시 이들 부부는 베네데타의 여동생 마리아(Maria)를 돌보고 있었는데, 
    1825년 마리아가 장암(腸癌)으로 숨을 거두자 조반니는 소마스키회(Somaschi Fathers)에 입회하였고 
    베네데타는 우르술라회(Ursuline)에 입회하였다.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들어간 베네데타 수녀는 그곳에서 심한 병을 앓아 1년 후 수녀원을 나와 파비아로 돌아왔다.
    파비아로 돌아온 베네데타 수녀는 그 지방의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사도직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베네데타 수녀는 남편인 조반니 수사에게 이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하여 조반니 수사도 수도원에서 나오게 되었다. 
    두 사람은 온전히 서로 간에 순결을 지키기로 서약한 뒤 함께 사도직 활동을 수행하여 파비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베네데타 수녀는 ‘공교육 진흥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 당국자와 
    교회 지도자들은 베네데타 수녀가 남편과 동정을 지키면서 사는 평범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 비난을 하였고 
    1838년, 그녀는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일을 파비아의 주교에게 인계한 후 롱코 스크리비아(Ronco Scrivia) 
    지방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베네데타 수녀와 남편인 조반니 수사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에 공감해서 
    그들을 따르던 5명이 동료가 모여 섭리의 베네딕도 딸들 수도회를 창설하고 학교를 설립하였다. 
    
    베네데타 수녀는 1858년 3월 21일에 롱코 스크리비아에서 선종하였다. 1987년 5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베네데타 수녀를 복자로 선포하면서 그녀의 뛰어난 신심과 경건한 삶이 많은 사람에게 영웅적인 성덕에 
    눈을 뜨게 해 주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전적으로 매진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언명하였다.
     2002년 5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베네데타 수녀를 시성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 새로이 탄생한 이 성녀는 거룩한 은총으로 인도받아 시종일관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는 데 매진하였습니다. 베네데타 수녀는 주님께서 얼마나 선하신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무한한 신뢰심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주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한 지향으로 해야 합니다.’ 
    또한 베네데타 수녀는 항상 자신이 말해 왔던 것처럼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의 섭리’에 깊은 확신을 갖고 
    자신의 삶 전체를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맡겼습니다.” 
    성녀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의 축일은 3월 21일이다. 
    [교회와 역사, 2013년 5월호, 번역 송영웅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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