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2월 2일) 성녀 요안나 드 레토낙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9:59 ㆍ조회:530 ㆍ추천:0
오늘의 聖人(2월 2일) 성녀 요안나 드 레토낙
    
     
    
    성녀 요안나 드 레토낙(Jane de Lestonnac) 축일 2월 2일  
    신분 과부, 설립자, 활동연도 1556-1640년    
    
     같은이름- 레토냑,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후아나  
    
    성녀 요안나 드 레토낙(Joanna de Lestonnac)은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에서 
    저명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당대의 유명한 인문주의 철학자였던 
    미셸 에켐 드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의 조카이다. 
    당시 프랑스는 국가의 분열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분열을 가져온 종교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혼란을 겪고 있었다. 성녀 요안나의 어머니는 칼뱅주의(Calvinism)에 빠져 
    그 누구의 권고도 듣지 않았다. 다행히도 성녀 요안나는 아버지와 삼촌 덕분에 
    자기 종교로 이끌고자 했던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성녀 요안나는 17살에 가스통 드 몽페랑(Gaston de Montferrant)과 결혼하여 여덟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그녀는 1597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41살에 과부가 되었고 네 아이도 어려서 잃었다. 
    그녀는 나머지 네 자녀가 모두 자라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돌보았다. 
    그녀의 두 딸인 마르타(Martha)와 막달레나(Magdalena)는 보르도에 있는 수도원에서 서원을 했고 
    아들 프란치스코(Franciscus)는 결혼을 했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막내딸을 아들에게 맡기고 
    성녀 요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온 수도생활을 하기 위해 1603년 툴루즈(Toulouse)의 
    개혁 시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수도원의 엄격한 생활은 그녀의 건강을 해쳤고 
    그녀는 서원을 하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툴루즈 수도원에서 지냈던 마지막 밤에 성녀 요안나는 하느님의 특별한 비추임을 체험하였다. 
    그것은 설립자로서의 소명과 마리아 영성에 대한 직관이었다.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려는 
    그녀의 계획은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윤곽이 드러났다. 즉 청소년 교육이라는 과제와 
    자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에도 마음을 써야 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정리되었다.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젊은 소녀들을 모아 라 모드(La Mothe)에 있는 자신의 땅에서 
    2년 동안 준비의 시간을 가졌고, 보르도에 극심한 역병이 발생했을 때 용감하게 시민들을 간호하였다. 
    그러던 중 1605년에 새로 부임한 예수회의 요한 드 보르드(Joannes de Bordes) 신부와 
    라이문두스(Raymundus) 신부를 비롯한 몇 명의 사제들이 영적으로 그녀의 헌신을 알아보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되었다.
    
    당시 보르도에서는 특히 여자 아이들의 교육이 큰 문제였다. 대부분 칼뱅주의에 빠진 여교사들이 
    소녀들의 교육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당시 예수회가 소년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던 것처럼 가톨릭적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던 소녀들을 
    위한 교육을 맡아줄 여성 수도회의 설립이 절실하던 때였다. 요한 신부와 성녀 요안나는 
    이런 점에서 서로 뜻을 같이 하고 이를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곧바로 수도회 설립 작업에 들어갔다. 1606년 3월 6일 성녀 요안나는 요한 신부의 도움으로 
    보르도의 대주교를 설득하여 특별히 여자 아이들의 교육을 직접적인 사도직으로 하는 
    여성 수도회인 마리아회를 설립하였다.
    
    
    
    성녀 요안나의 마리아회는 1607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1610년 마침내 보르도에 마리아회의 첫 번째 수녀원을 설립하고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수도회의 사도직을 실현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여 소녀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한때 그녀는 다른 수녀들의 음모에 휘말려 희생될 위험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모진 시련을 
    인내로써 극복하였다. 1640년 2월 2일 96세의 일기로 선종하여 보르도에 묻힌 
    성녀 요안나의 마리아회는 프랑스 전역뿐만 아니라 에스파냐를 비롯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녀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9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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