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1월 30일) 성녀 바틸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5:32 ㆍ조회:516 ㆍ추천:0
오늘의 聖人(1월 30일) 성녀 바틸다
    
     
    
    성녀 바틸다(Bathildis) 축일 1월 30일  
    신분 왕비, 활동연도 +680년   
    
     같은이름- 바띨다, 바틸디스  
    
    잉글랜드(England) 태생의 성녀 바틸다는 641년에 해적들에게 끌려가서 프랑크의 왕 클로비스 2세(Clovis II)의 
    궁중 시종장의 하녀로 팔려갔다. 몇 년 후 그녀의 미모와 탁월한 능력이 눈에 띄게 되어 왕이 그녀를 아내로 삼게 되었다. 
    이때가 649년이다. 그녀는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은 모두 왕이 되어 클로테르 3세(Clotaire III), 칠데릭 2세(Childeric II) 
    그리고 티에리 3세(Thierry III)가 되었다.
    
    655년에 클로비스 왕이 사망하자 그녀는 섭정이 되어 현명하고도 자비롭게 나라를 다스려 칭송을 받았다. 
    그녀는 수많은 노예를 해방시켰고, 궁성에서 먼 지역 주민들을 따뜻이 보살폈으며, 
    생드니(Saint-Denis), 코르비(Corbie), 셸르(Chelles) 등에 수많은 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665년에 
    그녀는 수도원으로 은퇴하였고, 680년 1월 30일 선종하여 자신이 파리 교외에 건립한 셸르 수도원에 묻혔다. 
    그녀는 선종한 지 2백 여년이 지난 후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에 의해 시성되었다. 
    로마 순교록은 그녀의 축일을 1월 26일로 기록하고 있고, 프랑스 교회에서는 1월 30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것
    
    7세기 초, 어린 나이로 노예가 된 소녀가 있었습니다. 
    영국을 침공한 노르만 군인들에게 붙잡힌 것인데, 예쁜 얼굴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마음씨도 착하고 
    똑똑한 탓에 눈에 띄어, 프랑크 왕 클로비스 2세의 궁중 시종장 집에서 하녀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왕의 시중을 들게 되었는데, 그녀의 미모와 재치에 사로잡힌 왕은 그녀에게 청혼을 합니다. 
    왕이 노예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프랑크 왕국의 왕비가 되고,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오른 어린 아들을 도와 섭정을 하면서 10년 간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녀의 통치기간 동안 프랑크 왕국은 크게 번성했습니다. 
    
    성녀 바틸다(c626~680)는 왕후가 되고 섭정이 된 후에도 늘 겸손했고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히 관심이 많았는데 수도원을 곳곳에 세워 교육과 자선 사업을 일으키고 
    왕실 재정을 아껴 세금을 낮추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정책은 노예 매매 근절이었습니다. 
    그녀 덕분에 프랑크 왕국은 미국의 노예 해방을 무려 1200년이나 앞서서 국법으로 노예 매매를 금지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마음씨 착한 왕비는 자주 사비를 털어 이미 노예로 팔려간 어린이들을 
    구출하는 데 썼다고 합니다. 그녀의 세 아들은 모두 왕위에 올랐는데,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그녀는 
    태후의 지위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 고아들과 병자들을 돌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4년 7월 6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대구주보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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