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3월 10일) 성 요한 오길비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16:20 ㆍ조회:118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10일) 성 요한 오길비  
    
     
    
    성 요한 오길비(John Ogilvie) 축일 3월 10일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스코틀랜드(Scotland) 활동연도 1579/1580-1615년
    
     같은이름- 얀, 오질비,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오길비(Joannes Ogilvie)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뒤섞인 혼란한 시대에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으나, 가톨릭의 정통성을 인정하게 되자 순교를 각오하고 
    루뱅(Louvain)의 스코틀랜드 대학에서 개종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17세였다. 
    그 후 그는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1610년 파리(Paris)에서 사제로 서품되면서 영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가명으로 선교 활동을 하였다. 그의 선교는 그 당시로 보아 지극히 성공적이었는데, 
    감옥에 갇힌 가톨릭 신자들을 돌보는 위험까지도 감수하였다. 
    1614년 여름 그는 몇 사람을 개종시켰는데, 이 사람들 때문에 그가 가톨릭 사제임이 탄로나 이듬해에 
    글래스고(Glasgow)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1929년 복자품에 올랐고, 
    1976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요한 오길비(St. John Ogilvie, 3월 10일)
    1579~1615, 스코틀랜드 출생 및 사망, 예수회 사제, 순교자.
    
    성인이 활동했던 시기는 스코틀랜드에서 칼뱅파가 종교개혁을 일으켜 
    가톨릭 교회가 탄압받던 때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개신교로 개종했고, 개종하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은 핍박받았습니다. 
    
    귀족 가문이었던 성인 집안은 칼뱅파 노선을 따랐습니다. 성인 역시 어렸을 때부터 
    개신교회 교리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관계없이 
    하느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칼뱅의 교리(예정설)에 의문을 품었고, 그리스도교 정통 교리는 
    가톨릭 교회 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죽을 각오로 개종을 결심하고, 
    가톨릭 신학 공부를 위해 17세에 벨기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성인은 그곳에서 예수회에 입회, 1610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사제가 된 성인은 고향으로 돌아가 박해받는 신자들을 위해 사목하고 싶었습니다. 
    동료 사제들은 가톨릭 사제가 스코틀랜드에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았기에 그를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수도회의 허락을 받아냈고, 
    신분을 숨긴 채 고국 스코틀랜드에 입국했습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 집에 머물며 비밀리에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개종하라는 탄압을 받는 신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습니다. 
    그러나 1년이 채 되지 않아 배교자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는 두 달간 감옥에서 지냈는데, 온갖 고문과 함께 가톨릭 신자를 밀고하고 배교하라는 회유를 받았습니다. 
    고문관들은 그를 일주일 넘게 잠을 재우지 않았고, 뜨거운 불로 그의 몸을 지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성인은 늘 묵주기도를 바치며 다른 죄수들에게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기까지 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성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연한 자세로 신앙을 지켰습니다. 
    성인은 1976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8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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