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3월 23일) 성녀 레베카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17:37 ㆍ조회:544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23일) 성녀 레베카  
    
     
    
    성녀 레베카(Rebecca) 축일 3월 23일  
    신분 수녀, 활동지역 레바논(Lebanon) 활동연도 1832-1914년 년
    
     같은이름-라프카, 베드로닐라, 부트로시야, 삐에뜨라, 삐에리나, 아라예스, 초보크, 페트로닐라, 피에리나, 피에트라  
    
     
    
    우리는 가톨릭 교회 안에 로마 예식 이외에 다른 전례 예식이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성녀 레베카는 동방전례의 가톨릭 교회인 마론(Maron) 전례에서 보편 교회에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었다. 
    구약성경 아가에 나오는 신부처럼 레베카도 신랑의 부르심을 들었다. “나의 신부여, 레바논에서 이리로 오너라. 
    레바논에서 이리로 오너라, 어서 오너라. 아마나 산 꼭대기에서, 스닐 산 꼭대기, 헤르몬 산 꼭대기에서 내려오너라. 
    사자굴에서, 표범 우글거리는 산에서 내려오너라”(4,8). “옷에서 풍기는 향내는 정녕 레바논의 향기로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울타리 두른 동산이요, 봉해 둔 샘이로다”(4,11-12). “그대는 동산의 샘 생수가 솟는 우물, 
    레바논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어라”(4,15).
    
    성녀 레베카는 1832년 6월 29에 레바논의 힘라야(Himlaya)에서 태어나 7월 7일 부트로시야(Boutroussieh)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부트로시야는 피에리나(Pierina), 피에트라(Pietra), 페트로닐라(Petronilla)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 무라드 사베르 샤박 알 라예스(Mourad Saber Shabaq al Rayes)와 
    어머니 라프카 게마옐(Rafqa Gemayel)은 외동딸인 그녀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매일의 기도생활을 가르쳤다. 
    19세기 레바논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고, 특히 6살에 어머니가 죽은 후 레베카의 삶은 더욱 어려웠다. 
    4년 동안 가정부로 시리아에서 일하고 몇 년 후인 1853년 빅파야(Bikfaya)에 있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회의 
    구원의 모두 수녀원에 지원자로 입회하였다.
    
    1855년 성 마론 축일에 수련기를 시작하며 아니사(Anissa, 아녜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5년 후 그녀는 데일 엘 카마르(Deir-el-Qamar)에서 그리스도인의 대학살을 목격했다. 그리고 1871년 
    그녀가 속해 있던 수녀원이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회를 만들기 위해 예수 성심회와 하나로 합치게 되었다. 
    그 때 모든 수녀들에게 새로운 회에 들어가거나 현존하는 수녀회에 남아 있거나 또는 수도 서원을 
    관면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성녀 레베카는 일생을 통해 음성과 꿈과 환시를 통해 예외적인 계시를 받는 은사를 받았다. 
    1871년 아녜스(Agnes) 수녀는 자신의 미래와 성소에 대해 기도하기 위해 바트룬(Batroun)에 있는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성당에 갔다. 그날 밤 꿈에서 은수자 성 안토니우스(Antonius)는 마론 전례의 
    발라디야회(Baladiya Order)에 들어가라고 일러주었다. 1871년 39세의 나이로 성녀 레베카는 엘 카른(El-Qarn)에 
    있는 금욕주의 발라디야회의 성 시몬 봉쇄 수녀원에 입회하여 자신이 꾼 꿈에 응답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힘라야의 부트로시야로 알려졌다. 그녀는 1873년 8월 25일 종신서원을 하고, 
    수녀원장인 에프렘 게아게아 알 브쉐라위(Ephrem Geagea al-Bsherrawi)에게 베일과 라프카(Rafqa, 레베카)라는 
    이름을 다시 받았다.
    
    금욕 수녀회의 회원으로서 성녀 레베카는 1885년 주님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기를 청했다. 
    그날 밤부터 그녀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멀고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음식 찌꺼기만을 먹는 등의 고행을 계속하였다. 공동체의 기도를 함께 하고 양털실을 짜고 
    양말을 뜨개질하는 일 등을 하였다. 1907년 성녀 레베카 수녀는 지속적인 고통 속에서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모든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에 합치시킴으로써 불평 없이 기쁨으로 참아내었다.
    
    그랍타(Grabta)의 성 요셉(Josephus) 수도원에서 죽음을 준비하던 성녀 레베카는 선종 3일전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나를 삶에로 이끄실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였다. 1914년 3월 23일 
    마지막 임종 예식을 마친 후 그녀는 비로소 모든 고통을 뒤로하고 하느님 안에서 평화로운 안식을 찾았다. 
    성녀 레베카가 사망한 후 4일이 지났을 때 그녀의 장상인 두미트(Doumit) 수녀는 레베카의 중재기도를 통해 이루어진 
    여러 기적 중의 첫 번째 기적을 경험하였을 정도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 결과 성녀 레베카는 1985년 11월 17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2001년 6월 10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녀는 라프카 피에트라 초보크 라예스(Rafqa Pietra Choboq Ar-Rayes)로도 불린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녀 라프카 피에트라 초보크 라예스 - 예수님의 수난에 영신적으로 동참한 수녀
    
    힘라야의 레베카(Rebecca de Himlaya)로도 불리는 라프카 피에트라 초보크 라예스(Rafqa Pietra Choboq Ar-Rayes, 
    1832-1914)는 1832년 레바논(Lebanon)의 힘라야에 있는 산악 지역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마론파 교회1)에서 세례를 받을 때, 피에트라 라예스(Pietra Ar-Rayes)라는 마론파식 세례명을 받았다. 
    피에트라 라예스는 7살이 되었을 때 친모가 죽자 계모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앙심이 깊은 마론파 
    교회 신자인 친척들의 정성 어린 보살핌과 양육 속에서 행복하게 자라났고, 나이가 들면서 자신에게 
    수도 성소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1853년 피에트라 라예스는 마리아 수녀회(Marianist Sisters)에 들어가 아니사(Anissa)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아니사 수녀는 1856년부터 1871년까지 마리아 수녀회에서 경영하는 학교에서 어린 소녀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교직에 종사하면서도 그녀는 점점 더 관상에 깊은 매력을 느꼈고, 관상생활에 몰입하고 싶다는 원의를 품게 되었다. 
    1871년 마리아 수녀회가 해산하게 되자 아니사 수녀는 성 안토니오의 마론파 수도회(Maronite Order of St. Anthony)에 
    입회하였고 성 시메온(St. Simeon) 수도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새로운 수도 공동체에서 아니사 수녀는 라프카라는 
    새 수도명을 받았다. 
    
    1885년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라프카 수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사랑으로 바치신 고통과 
    수난에 자신도 동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바로 그날 밤, 라프카 수녀는 갑자기 시력을 잃고 
    눈이 멀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른쪽 눈에 일어난 통증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하였으나, 
    그녀는 인내하며 견뎠다. 결국 라프카 수녀는 오른쪽 눈의 안구를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는데, 마취제 사용을 
    거부하여 이 수술을 받는 동안 그녀는 모든 고통을 감내하였다. 통증이 심했던 안구를 적출해 내었지만, 
    그 후유증으로 라프카 수녀는 일주일에 두 번 내지 세 번씩 눈에서 피가 흐르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수도원에서 평소 자신이 하던 일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그대로 수행하였다. 
    그녀는 수도원에서 세탁을 하고 빵을 구우며 옷감을 짜는 일 등을 모두 해냈고, 성무일도(Divine Office)의 기도문을 
    모두 외워 동료 수녀들과 함께 성가대 자리에서 기도문을 찬미가로 불렀다. 
    
    1897년 라프카 수녀는 지라브타(Jrabta)에 있는 성 요셉(St. Joseph)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 그 수도원에서 
    라프카 수녀는 발목뼈가 탈구되어 마비가 오면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겪어 불구자처럼 지냈다. 
    라프카 수녀는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늘 평온한 마음으로 기쁘게 살았고 연로하여 죽음이 임박해오자 
    그녀는 기쁨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참으로 오랫동안 주님을 
    고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라프카 수녀는 사흐르(As-Sahr)에서 죽었는데, 이후 그녀의 무덤에서 2,600건 
    이상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보고되었다. 
    
    1985년 11월 1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라프카 수녀를 복자로 선포하였고, 2001년 6월 10일 시성하였다.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말을 하였다. 
    
    “복자 라프카 초보크 라예스 수녀를 성인 반열에 올림으로써 성교회는 하느님의 영광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주고받은 
    사랑의 신비와 관련하여 세상이 알아볼 수 있도록 특별한 빛을 환히 비추고 있습니다. 레바논의 마론파 수도회에서 
    거룩한 삶을 살았던 라프카 초보크 라예스 수녀는 당신 나라의 백성을 구원하고자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바치는 것을 
    간구하며 이들에게 사랑을 주었습니다. 2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시도 떠나지 않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성녀 라프카 수녀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와 항상 깊은 일치를 이루면서 그로부터 이 고통을 자발적으로
    감내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리하여 성녀 라프카 수녀는 당신 나라 백성의 구원을 위해 
    이 극심한 고통을 기쁘고 열정적으로 바치며, 성덕에 이르는 참된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 특히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희망의 싹이 잘려 버린 
    불모의 땅에서 고통 받고 있는 중동 사람들을 성녀 라프카 수녀는 굽어보아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청합니다. 
    이 성녀의 전구로 주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시어,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정에 
    모든 사람이 동참함으로써 화해와 조화가 가득한 사회가 하루속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성녀 라프카 피에트라 초보크 라예스의 축일은 3월 23일이다. 
    
    1) 역자 주 : 마론파 교회는 시리아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로, 성 마론(350-410)을 영적 스승이자 영적 
    아버지로 모시는 동방 교회에 속한다. 이 교회는 전례와 신학 그리고 영성은 시리아와 레바논 고유의 것을 따르지만, 
    교황청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는 가톨릭교회이다. [교회와 역사, 2012년 12월호, 번역 송영웅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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