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3월 14일) 성녀 마틸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16:36 ㆍ조회:536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14일) 성녀 마틸다  
    
     
    
    성녀 마틸다(Matilda) 축일 3월 14일  
    신분 왕비, 활동연도 895-968년   
    
     같은이름- 마띨다, 마띨디스, 마틸디스  
    
     
       
    프리슬란드-덴마크의 귀족 가문인 그라펜 디트리히의 딸로 태어난 성녀 마틸다(Mathildis)는 
    909년 작센(Sachsen)의 공작인 하인리히(Heinrich)와 결혼했다.
     919년 하인리히가 독일의 하인리히 1세 국왕이 되자 독일 여왕이 된 그녀는 슬하에 다섯 명의 
    자녀들을 두었는데, 훗날 독일과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오토(Otto), 
    프랑스의 루이 4세와 결혼한 게르베르가(Gerberga), 바이에른(Bayern)의 공작인 하인리히, 
    프랑스 카페(Capet) 왕조의 위그 카페의 어머니인 하드비히(Hadwig), 
    그리고 쾰른(Koln)의 대주교가 된 성 브루노(Bruno, 10월 11일)가 그들이다. 
    
    그녀는 32세에 과부가 되었는데, 이때 아들인 오토 1세로부터 극심한 푸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심이 뛰어났으므로 자선사업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동생 하인리히가 형인 오토 1세에게 반기를 드는 판국이니 그녀의 고통은 극심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그녀는 베네딕토 수도원을 세 곳이나 세웠고, 만년에는 주로 수도원에서 지냈다. 
    그녀는 죽기 전에 그녀의 아들 오토 1세와 화해를 하고 968년 3월 24일 사망하여 
    궤틀린부르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과 교회의 후원자로서 큰 공경을 받는다. 
    
     
    
    마틸다 성녀는 9세기 말경 독일 베스트팔렌 주의 테오도리고 후작 가문에서 태어났다. 
    당시 관습에 따라 어릴 때 숙모가 원장으로 있던 헬포르드 여자 수녀원에서 일
    반지식과 교리를 배우며 경건하게 자랐다.
     
    그녀는 식소니아의 공작인 ‘하인리히’와 결혼하였다. 결혼 3년째인 912년에 독일 황제 콘라도 1세가 
    승하하자 하인리히는 황제가 되었다. 마틸다는 황후가 되어 국모로 존경받게 되었지만, 
    조금도 교만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도리어 빈민을 돕고 병자를 방문하며 백성을 돌보는 일을 더 열심히 하였다.
     
    또한 그녀는 수도원이 한 나라의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 남편과 함께 
    수도원을 몇 군데 세우고, 그 가운데 하나인 궤틀린부르크 수도원에 자신들의 묘소를 정하기도 하였다.
     
    936년 남편이 죽고 난 뒤, 자식들과 오해가 생겨 궁전을 떠났다. 
    그 뒤로 나라 안에 여러 가지 재앙과 불행이 계속 일어났고, 아들인 오토 황제는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어머니를 영접하러 나가 진심으로 용서를 청했다.
     
    그녀는 궁으로 돌아와서도 하루 두 차례씩 가난한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했고, 
    자신의 음식 가운데 맛있는 것은 불쌍한 이에게 나누어주었다. 
    빈민을 위해 목욕물까지 마련해 주며 손수 심부름을 해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968년, 천국으로 갈 날이 가까워 온 것을 안 마틸다는 남편 옆에 묻히기를 바라며 
    그의 묘가 있는 궤틀린부르크 수도원에서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교회는 성녀 마틸다를 ‘가난한 이와 교회의 후원자’로 추앙하며, 
    세상을 떠난 3월 14일을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경향잡지, 200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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