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3월 9일) 성 도미니코 사비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16:12 ㆍ조회:567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9일) 성 도미니코 사비오  
    
     
    
    성 도미니코 사비오(Dominic Savio) 축일 3월 9일  
    신분 증거자, 활동연도 1842-1857년  
    
     같은이름-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  
    
    
    
    성 도미니코 사비오(Dominicus Savio)는 1842년 4월 2일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 토리노(Torino) 근처의 
    산 조반니 디 리바(San Giovanni di Riva)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인 아버지 카를로 사비오(Carlo Savio)와 재봉사인 
    어머니 비르지타(Birgitta) 사이의 10남매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다. 그는 5살 때부터 매일미사의 복사를 하였으며, 
    7살 때에 예외적으로 첫영성체를 하였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려는 소망을 불태워왔다.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1월 31일)가 청소년 교육을 위하여 준비를 시작할 때 토리노의 성직자들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을 도와주도록 의뢰하였는데, 성 도미니코 사비오의 본당 신부가 그를 추천하였다. 
    면담에서 돈보스코 성인은 이 소년의 영혼 속에 은총이 충만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12살 때에 
    토리노의 종합기숙학교인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오라토리오에 입학하였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는 성인이 되려는 열망으로 여러 가지 특이한 고행을 원하였으나 요한 보스코의 지도에 따라 
    특이한 고행보다는 매일 매순간 자기가 하는 일을 하나하나 충실히 하는 데서 성화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를 결성하여 친구들과 더불어 성덕을 닦았다. 성인이 조직한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는 
    신심적인 목적 외에도 요한 보스코를 여러 가지 구체적인 면에서 도와주었으므로, 성 요한 보스코가 살레시오회의 모체가 
    되는 모임을 결성했을 때 그 모임의 회원 22명이 주요 회원이 되었다.
    
    한 번은 학교 내에서 두 학생이 돌을 들고 싸울 때, 도미니코는 그들 사이에 작은 십자가를 들고 끼어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싸우기 전에 이 십자가를 먼저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한 분이셨지만, 당신의 박해자들을 용서하시고 운명하셨다. 
    나는 죄인이다. 그리고 나는 앙심을 갖게 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한다. 자, 이제 싸워도 된다. 그러나 그 돌을 먼저 
    나에게 던져라.” 나이 어린 소년의 이 한 마디 말은 그의 인품과 성덕을 밝히는 중요한 말이다. 
    
    그는 학교의 규칙을 지키는데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였고, 그의 기도 정신은 당대의 어느 큰 성인 못지않았다. 
    가끔 돈보스코는 그의 과도한 열성을 탓하고 중지시킬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그는 “저는 큰일은 하지 못 합니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렵니다.” 하며 대답하였다. 또 돈보스코가 그가 고행에 몰두하는 
    것을 다소 저지하였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신심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도미니코가 얇은 시트 한 장을 덮고 떨고 있는 것을 돈보스코가 발견하고, “왜, 이런 짓을 하느냐, 
    폐렴에 걸릴려고?” 하자, 그는 “우리 주님께서는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워계셔도 폐렴에 걸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돈보스코를 놀라게 하였다. 
    
    또한 도미니코는 아침 미사 때부터 몇 시간 동안 기도에 빠져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는 이런 내밀한 기도 시간을 
    ‘나의 기분 전환’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그에게는 마치 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보는 듯 하다고 말하였다. 
    한 번은 그가 이런 기도 중에서 일종의 환시를 보았다. 황량한 들판에 수많은 군중들이 있고, 
    그곳으로 횃불을 들고 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돈보스코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 횃불은 영국 국민들에게 전해야할 가톨릭 신앙입니다.” 돈보스코는 이 사실을 당시의 교황 비오 9세(Pius IX)께 알렸고, 
    교황은 이 말을 듣고 영국에 대한 큰 배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폐렴까지 겹치자 건강 회복을 위해 1857년 3월 1일 집으로 보내졌다. 
    그는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수술의 고통을 견디어 냈지만, 3월 9일 아스티(Asti)의 몬도니오(Mondonio)에서 
    15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 당신께 영원한 찬미를 드리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아! 나는 정말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습니다"였다. 그의 시복은 1914년에 로마(Roma)에서 거행할 예정이었으나, 
    몇 가지 반대에 부딪혀서 돈보스코의 시성 후인 1950년 3월 5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54년 6월 12일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는데, 교회 역사상 가장 나이 어린 성인 가운데 한 명으로서 
    소년 성가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살레시오회에서는 성인의 축일을 5월 6일에 기념하고 있다. 
    
    
    
    어린이 성가대의 수호성인, 성 도미니코 사비오
    
    성 도미코 사비오(Dominic Savio)는 1842년 이탈리아의 토리노 근처 리바에서 10남매의 하나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난한 대장장이였으며,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5세 때부터 매일 미사의 복사를 하였고 
    7세 때 예외적으로 첫영성체를 하였다.
     
    요한 보스코 성인이 청소년 교육을 준비하고 있을 때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을 도와달라고 
    토리노의 성직자들에게 부탁하였는데, 이때 사비오의 본당신부가 그를 추천하였다. 면담에서 요한 보스코 성인은 
    이 소년의 영혼에 은총이 충만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리하여 사비오는 열두 살 때 토리노의 
    종합 기숙학교인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의 학생이 되었다.
     
    사비오는 요한 보스코의 지도를 받으며 자기성화를 위해 놀라운 열성으로 노력하였다. 
    그는 성인이 되려는 열망으로 여러 가지 특이한 고행을 원하였으나 보스코의 지도에 따라 날마다, 순간마다 
    자기가 할 일을 하나하나 충실히 하는 데서 성화의 길을 찾았다. 그는 영성체 후 오랜 시간 탈혼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이때 받은 여러 가지 계시를 보스코에게 알려 그의 사목을 도왔고, 여러 사람을 위험에서 구하기도 하였다.
     
    1857년 건강이 날로 악화되고 폐렴까지 겹치자 건강회복을 위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수술의 고통을 견디어냈지만, 3월 9일 아스티의 안도니오에서 15세의 나이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1950년 3월 5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하여 시복되었고, 1954년 6월 12일에 시성되었다. 어린이 성가대의 수호성인이다.
     [경향잡지, 200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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