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1월 21일) 성녀 아녜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3:44 ㆍ조회:543 ㆍ추천:0
오늘의 聖人(1월 21일) 성녀 아녜스
    
     
    
    성녀 아녜스(Agnes) 축일 1월 21일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304년?  
    
     같은이름-아그네스, 아네스
    
    성녀 아녜스는 로마의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성인 중 한 명이다. 
    로마의 어느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뛰어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평소에 늘 순결한 생활을 희구하여 
    하느님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녀가 소녀티를 벗자마자 많은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표명하였다. 
    박해가 일어나자 성녀 아녜스는 집을 떠나 순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어느 청혼자의 고발로 신자임이 드러나 총독에게 끌려갔다. 불과 만 13세에 지나지 않았던 
    성녀 아녜스는 온갖 고문 기구를 진열해 놓고 위협하는 총독의 직접 심문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자 격노한 총독은 그녀를 로마의 어느 매음굴로 보냈으나, 성녀 아녜스는 그녀의 영웅적인 
    용덕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정결을 성공적으로 보전할 수 있었다. 
    다시 그녀가 총독 앞으로 이송되자 그는 참수를 명하여 그대로 실행되었다.
    
    전해오는 많은 전설 가운데에는 신빙성이 없는 것들도 있지만, 
    성녀 아녜스가 순교자로서 처참하게 죽었으며 노멘타나 가도(Via Nomentana) 근처의 묘지에 
    안장되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성녀 아녜스는 동정녀의 상징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그녀를 '어린 양'(Agnus 아뉴스; Agnes 아녜스)으로 묘사하였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동정녀들]에서
    (Lib. 1, cap. 2.5.7-9; PL 16 [edit. 1845], 189-191)
    
    그는 고통받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으나 승리를 얻을 만큼 이미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동정녀가 천상 생명으로 태어난 날입니다. 우리 모두 그의 정결을 본받읍시다. 
    오늘은 순교자의 탄일입니다. 우리 모두 희생 제물을 바칩시다. 오늘은 성녀 아녜스의 탄일입니다. 
    그는 12살 때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이 어린 소녀마저 불쌍히 여겨 주지 않는 그 잔인성은 정말 가증스럽습니다. 
    이렇게 유약한 나이의 소녀에게 증거를 보인 신앙의 힘은 진정코 위대합니다.
    
    그의 어린 몸에 상처를 입을 자리가 있었겠습니까? 
    칼을 받을 자리마저 없었던 아녜스는 그 칼을 이겨낼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나이의 소녀들은 부모님의 성난 얼굴마저 견디지 못하고, 
    또 모르고서 바늘로 한 번 찔리기만 해도 중한 상처를 입기나 한 듯 보통 울고 맙니다.
    
    그러나  성녀 아녜스는 사형 집행인의 피 묻은 손 아래서도 두려움을 몰랐고 쨍그렁거리는 육중한 쇠사슬로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온몸을 난폭한 병사의 칼에 내 맡기고, 비록 아직 죽음을 체험하지는 않았지만 
    그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강제로 신전의 제단에 끌려 나아가 불 가운데 놓여졌을 때 그리스도께로 손을 펼쳐 
    그 불경한 제단 위에서 주님이 거두신 승리의 표시를 나타냈습니다. 아녜스는 자기 손과 목을 쇠 차꼬에 
    집어 넣을 자세가 되어 있었지만 그의 작은 지체를 조여 맬 쇠사슬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순교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고통받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으나 승리를 얻을 만큼 이미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전투는 힘들었지만 월계관을 받기는 쉬웠습니다. 아직 나이 어렸으나 덕행의 교훈을 주었습니다. 
    결혼하는 신부라 할지라도 이 동정녀가 즐거운 표정을 지니고서 형장으로 급히 달려갔던 그만큼 급히 신방에로 
    달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동정녀는 댕기머리 대신에 그리스도로, 화관 대신에 자신의 덕행으로 머리를 단장했습니다.
    
    모든 이가 울고 있었지만 그만은 울지 않았습니다. 그가 맛보기 시작하지도 못한 자기 생활을 흡사 모두 맛본 것처럼 
    이제 아낌없이 내맡기는 것을 볼 때 사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직 법 앞에서 책임질 나이도 되지 못한 
    그가 하느님의 증인으로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볼 때 모두 놀랐습니다. 그가 인간을 위해 증거를 내세웠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지만 하느님을 위해 내세웠기 때문에 그 증거를 믿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자연을 초월하는 것은 자연을 지으신 분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형 집행인이 어떤 위협으로 그를 겁먹게 만들고 어떤 달콤한 말로 꾀려 하고 또 얼마나 숱한 약속을 하면서 
    결혼을 간청했겠는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녜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유혹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남편에게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나를 먼저 택한 사람이 나를 소유할 것입니다. 
    사형 집행인이여! 왜 지체합니까? 내가 원치 않는 눈들이 사랑할 수 있는 이 내 몸을 속히 멸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아녜스는 일어서서 기도드린 후 머리를 숙였습니다.
    
    여러분은 사형 집행인이 흡사 자기 자신이 단죄를 받은 듯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어린이는 자기가 당할 고초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 어린이가 당할 위험을 앞에 두고 
    그의 오른손은 떨리고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하나의 희생 안에 여러분은 두 가지의 증거, 
    즉 정결과 신앙의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아녜스는 동정도 간직하고 순교의 팔마도 얻었습니다.
      
     성녀 아녜스(292-304)
     
    -윤 클레멘트 신부
    
    동정녀이고 순교자이며 ‘어린양’이란 의미의 이름을 가진 그녀는 부유하고 귀족인 한 로마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아름다운 아녜스에게 많은 구혼자들이 나타나 청혼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 거절한다. 왜냐하면 이미 그녀는 천상의 정배(定配)이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는 우상의 신들 앞에 불려나와 제사를 드리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나 그녀가 우상 신들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거부하자, 집정관이 베스타 신전(神殿)에서 봉사하는 신전 정녀(貞女)가 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집정관은 그녀의 옷을 벗기어 그녀를 창녀촌으로 보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의 긴 머리가 빨리 자라나 그녀의 벗은 몸을 가려주고 그녀를 보호했다고 한다.
     
    한번은 집정관의 아들이 그녀를 폭행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집정관은 아들은 눈 먼 장님이 되고 만다. 
    그때 그녀는 기도를 하여서 그 아들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마침내 그녀에게 화형(火刑)의 선고가 내려진다. 
    어느 자료에서는 그녀는 목 베임을 순교를 했다고 전하여진다. 이윽고 그녀는 도미티안 스타디움으로 불려나오고, 
    순결한 그녀의 몸과 영혼을 정배이신 그리스도께로 바친다. 그 도미티안 스타디움(Stadium of Domitian)이 
    지금의 노바나 광장(Piazza Novana)인데, 오늘날 그곳에는 성녀 아녜스 성당이 있다.
     
    그녀에 대하여 전해지는 자료나 이야기들은 전설이 아니다. 많은 입증할만한 자료들이 있다. 
    순교 후 머지않아 그녀는 칭송받기 시작했다. 4세기 말에 교황 다마소 1세가 그녀의 묘비에 비문을 썼는데, 
    그것이 1792년의 발굴 때에 드러나기도 하였다. 교황 다마소 1세의 비서를 3년간이나 역임했던 
    성 예로니모(340-420)는 그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성녀 아녜스는 문학, 사람들의 연설, 특별히 교회에서 칭송을 받는데, 
    그녀는 나이와 폭군을 둘 다 이기어 냈으며, 
    아울러 자신을 순결한 순교자로 하느님께 봉헌했기 때문이다.”
     
    한편 성 암브로시오(340-397)는 그녀의 덕행과 순교에 대하여 강론을 하기도 했고, 
    그녀에 대한 칭송의 시를 쓰기도 하였다.
     
    그녀는 특히 중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이 칭송되었는데, 
    교회의 많은 성녀들 즉 성녀 발바라, 도로테아, 안티오키아의 마르가리따 등과 같이 한 신화처럼 새롭게 조명되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덕행과 동정의 순결성으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바친 
    교회의 동정녀들이다.
     
    그녀의 몸과 머리로 추정되는 유해가 1901년과 그 이듬해에 각각 발견되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머물러 계속되는 상징과 칭송의 강력한 초점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순교할 당시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칼로 나의 몸을 피로 물들게 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께 바친 나를 결코 더럽게 할 수는 없다.”
     
    - 2010년 1월 17일 연중 제2주일 전주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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