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5월 2일)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9:11 ㆍ조회:319 ㆍ추천:0

오늘의 聖人(5월 2일)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Jose Maria Rubio) 축일 5월 2일  
    신분 신부, 활동지역 마드리드(Madrid) 활동연도1864-1929년    
     
     같은이름-메리, 미리암, 요세푸스, 요셉,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페랄타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는 1864년 7월 22일 에스파냐 남부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인 
    알메리아(Almeria) 지역의 달리아스(Dalias)에서 농부인 아버지 프란치스코 루비오(Francisco Rubio)와 
    어머니 메르세데스 페랄타(Mercedes Peralta)의 열두 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불행히도 형제 중 여섯은 그가 어린 시절에 사망하였다. 그는 가정에서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1875년 알메리아에서 중등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사제가 되고 싶은 성소를 느낀 그는 1876년 교구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업을 계속했다. 
    이어 1878년에는 그라나다(Granada)의 대신학교로 가서 여러 해 동안 철학과 신학, 
    교회법을 배운 후 1887년 9월 24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즈음에 그는 예수회의 회원이 되고픈 
    부르심을 느꼈지만 도움이 필요한 연로한 사제를 돌봐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19년 동안이나 
    그 소망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서품을 받은 후 루비오 신부는 친촌(Chinchon) 본당의 부주임과 
    에스트레메라(Estremera) 본당의 주임신부를 역임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1890년 주교는 그를 마드리드로 불러 시노드 조사관의 책임을 부여하였다. 그는 또한 마드리드 
    신학교에서 형이상학 · 라틴어 · 사목신학을 가르쳤고, 성 베르나르두스 수녀들의 지도신부를 맡았다.
    
    1905년 예루살렘(Jerusalem) 성지를 순례한 그는 이듬해 그라나다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시작했고, 1908년 10월 12일 예수회의 회원으로서 서원을 발했다. 그는 뿌리 깊은 영성 생활에 의해 
    지속되고 양육된 사도직 수행에 있어서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마드리드의 주교는 그를 
    ‘마드리드의 사도’라고 불렀고, 신자들은 그에게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그를 찾아왔다. 그는 날카롭고도 단순한 강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회개로 이끈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늘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질적 · 영적 지원을 제공하였다.
    
    강론과 영적 지도를 통해 루비오 신부는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진실하게 살아가며 
    그를 도와 가난한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많은 평신도들을 불러 모으고 인도할 수 있었다. 
    그의 지도하에 선의의 봉사자들은 무료 학교를 열어 다양한 직업 훈련과 학문적인 기반을 제공하였고, 
    병자와 장애인 그리고 실직으로 인해 새로운 직업을 찾는 이들을 도와주었다. 
    루비오 신부는 항상 이 모든 일들을 열과 성을 다해 했지만 자신은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협력자들 스스로 중심적인 역할을 맡도록 했다. 
    그는 평신도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잘 개발하도록 돕기 위해 그들 스스로 
    주된 책임을 맡도록 했고,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처럼 생활하고 활동하도록 가르쳤다.
    
    그는 또한 그 도시의 가장 가난한 이들 안에서 대중적인 선교와 영성 수련을 위한 모임을 조직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가난한 사람들은 영적 · 물적으로 모두 완벽한 도움을 받아야만 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사랑하고 고무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루비오 신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도직의 측면은 기도였다.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님을 흠숭하는 것은 그의 내적 생활의 중심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루비오 신부가 진정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자 원했던 것이다. 
    그와 그의 협력자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첫째가 되었고, 열정적인 기도 생활을 통해 그들은 
    마드리드의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서 봉사하며 영성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 신부는 1929년 5월 2일 마드리드 주(洲)에 있는 아랑후에스(Aranjuez)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1985년 10월 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3년 5월 4일 마드리드의 콜론(Colon) 광장에서 100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른 네 명의 복자들과 함께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 이 페랄타(Jose Maria Rubio y Peralta)로도 불린다. 
    
     
    
    [예수회의 성인들]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 사제
    
    호세 마리아 루비오 페랄타는 1864년 7월 22일, 스페인의 남부지방인 달리아스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1살이 되던 1875년에 알메리아에서 소신학교에 들어갔다. 1879년에는 대신학교에 들어가 
    철학, 신학, 교회법 등을 공부하였다. 그는 신학교 교수였던 요아킴 토레스 아센시오 신부로부터 
    특별한 신임을 얻었는데, 마침 토레스 신부는 자신이 마드리드 대성당에 임명되자 
    호세 신학생을 마드리드로 동행시켰다. 마드리드에서 신학공부를 마친 호세는 1887년 9월 24일 
    마드리드 대교구의 교구사제로서 서품을 받았다. 처음 몇 년은 마드리드 근교의 소신학교에서 
    가르쳤으나 곧 마드리드 대신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호세 신부는 마드리드에서 사목활동을 하면서 예수회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점차 예수회에 입회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는데, 자신을 키워준 토레스 신부에 대한 은공 때문에 그가 타계한 1906년까지는 
    차마 표현을 못하고 있었다. 토레스 신부의 타계와 함께 호세 신부는 정식으로 예수회 입회를 청원하고, 
    그해 10월 11일 42세의 나이로 예수회의 그라나다 관구로 입회하였다. 
    1911년 호세 신부는 예수회의 양성을 마치고 마드리드의 도무스 프로펫사(제4허원을 발한 회원이 
    거주하는 공동체)에 거주하면서 많은 예수회원들과 신자들을 영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특별히 고백성사를 통해 많은 이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끌었다. 
    
    그의 소박하지만 진심 어린 강론은 많은 지식을 가진 사제들의 강론보다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마치 프랑스의 성자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처럼 그도 아주 오랜 시간 고백성사를 들었다. 
    그는 고백하러 온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 성체와 예수의 성심을 전파하였다. 또한 정기적으로 
    빈민가를 방문하여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이런 활동을 통해 호세 신부의 명성은 점점 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살아 있는 성자,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다. 
    
    그의 사목활동을 반대하고 중상하는 이들도 나타났으나, 호세 신부는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고 
    언제나 평상심과 평화 속에서 사목활동을 계속하였다. 사람들의 중상으로 자신이 사도직에서 
    물러나야만 했을 때도 평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있었다. 
    만년에 협심증으로 고생하다가 1929년 5월 2일 아란헤스의 수련원에서 조용히 선종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5년 10월 6일 호세 신부를 시복하고, 2003년 5월 4일에 마드리드에서 시성하였다. 
    
    콜벤바흐 전 예수회 총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호세 신부의 성성을 칭송하였다. 
    “그는 예수회가 추구하는 관상과 사목적 활동의 일치를 마드리드라고 하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실현하셨습니다. 그의 강론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었으나 마음으로 전달하였기에 
    많은 이들을 회심으로 이끌었습니다.” 기념일은 5월 2일. 
    [이냐시오의 벗들, 2013년 2월호, 구정모 마르코 신부(일본 상지대학교 교수)] 
    
     
    
    
    
    
                       
  0
100
이름
비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