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9:09 ㆍ조회:471 ㆍ추천:0

오늘의 聖人(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축일 5월 2일  
    신분 주교, 교부, 교회학자, 활동지역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활동연도 295?-373년    
     
     같은이름-아따나시오, 아따나시우스, 아타나시우스  
    
    
    
    아마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인 가정 출신으로 여겨지는 
    성 아타나시우스(또는 아타나시오)는 잘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특히 성경과 신학이 뛰어났다. 
    318년 부제로 서품된 후 자기 고향의 알렉산데르(Alexander) 주교의 비서가 되었다. 
    그는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단죄했던 325년의 제1차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알렉산데르 주교를 수행하여 참석하였다. 3년 뒤인 328년 4월 17일 알렉산데르 주교가 
    사망한 뒤 그 자신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이집트 아리우스파의 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이러한 반기는 
    지중해 제국 전역으로 무섭게 파급되었고, 아리우스를 지원하던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도
     덩달아 기세를 올렸다. 물론 이런 세력 뒤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지원이 있었다. 
    그는 335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로 첫 번째 유배되었다. 
    년 5월 22일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누스 2세가 서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하였다. 
    새 황제는 성 아타나시우스에게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도록 허락한 뒤 다음 해에 
    교회 회의를 개최하여 그의 직위를 복권시켰다. 그러나 성 아타나시우스는 반대파에 의해 
    2년 후 재차 추방되었다. 이 때 그는 로마(Roma)로 가서 7년 동안 머물러야 했다.
    
    346년부터 356년까지가 그의 생애에 있어서는 가장 평화로운 황금의 시간이었고 
    또 그의 주요 저서들도 이때에 나왔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자인 황제 콘스탄티우스가 
    그를 추방키로 하고 군인들을 보냈다. 체포 위험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성 아타나시우스는 이집트의 사막 은수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으며, 
    이곳에서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361년에 죽기까지 자기 교구민들을 지도하였다. 
    그 이후에도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두 차례나 유배를 더 당하였고, 
    366년부터 죽을 때까지는 평화롭게 자기 교회를 다스리고 사목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날의 모든 갈등과 폭력으로 인하여 피폐된 교회들을 재건하고, 
    아픈 상처들을 치료하는데 주력하면서, 저술과 강론을 통하여 위대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성 아타나시우스는 신체적 조건으로 볼 때는 작은 사람이었으나 아주 강인하고 정신력이 뛰어났다. 
    아리우스 이단을 단죄하고 파문하기로 결정한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실행하는 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를 따르는 평신도들도 우왕좌왕하였고, 
    수많은 주교들도 주저하였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성 아타나시우스는 존 헨리 뉴만의 말대로,
     “그리스도 교회의 거룩한 진리를 세상에 전해 온 사도들의 후예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도구였다.” 
    아리우스 이단을 대항하여 저술한 그의 뛰어난 저술과 연설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또한 그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저서들을 많이 남겼는데,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를 비롯하여 성서 주석, 시편 주해 등을 남겼다.
    성 아타나시우스는 대 바실리우스(Basilius,1월 2일),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9월13일) 
    그리고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월 2일)와 함께 그리스의 교회학자이자,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유배 중에 저술한 그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콘스탄티우스 황제에게 보낸 해명”(Apologia ad Imperatorem Constantium),
     “수도자들에게 보낸 아리우스주의의 역사”(Historia Arianorum ad Monachos) 등이 있다. 
    성 아타나시우스가 ‘아타나시우스 신경’(Symbolum Athanasianum)을 직접 기록하지는 않았다. 
    
    
    
    [성인들의 발자취] 성 아타나시오
    아리우스 이단에 대항하여 성교회 수호, 이집트의 위대한 교회학자 - 축일은 5월 2일
    
    성 아타나시오는 293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신앙생활과 학업에 열중했던 
    아타나시오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도 통달했다.
    
    청년시절 광야에서 수덕생활을 하는 많은 은수자들을 찾아다니며 신심을 단련했던 
    아타나시오는 부제의 신분으로 「알렉산드리아」 주교의 비서로 임명되어 
    325년 「니케아」공의회에 참석,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열렬한 옹호를 
    설파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한편 당시 성행하던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성교회를 지키고 이단을 물리치는데 
    큰 공헌을 했던 아타나시오는 328년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서거하자 
    그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되였다.
    그 후 4명의 로마 황제와 맞서 굳건히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신앙을 전파했던 
    아타나시오는 5번이나 국의로 추방당하기도 했다.
    
    46년간 동방 세계에서 뿐 아니라 서방 세계에까지 성행했던 아리우스 이단과 
    대항하여 싸웠던 아타나시오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성교회를 위해 이단을 물리치고 성서와 극기수도에 관한 서적을 
    저술했던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는 378년 5월 2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위대한 성교회 학자로 불리우고 있는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축일은 5월 2일이다.
    [가톨릭신문, 1982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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