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3월 27일) 성 요한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20:05 ㆍ조회:165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27일) 성 요한  
    
    
    
    성 요한(John) 축일 3월 27일  
    신분 은수자, 활동지역 이집트(Egypt) 활동연도 304-394년   
    
    같은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Joannes)은 이집트의 리코폴리스(Lycopolis, 아시우트 Asyut)에서 태어났다. 
    콥틱 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0월 17일에 기념한다. 그는 원래 목수(또는 제화공)였지만 25살에 
    은수생활을 하기 위해 가까운 산으로 가서 이후 40년간 은수자로서 살았다. 
    함께 살고 있던 고령의 은수자는 그의 겸손과 순명을 시험하고자 1년 내내 마른 나무에 물을 주라는 등의 
    엉뚱한 명령을 이행하도록 시켰고 그는 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는 선배 은수자가 죽을 때까지 
    12년을 함께 생활했으며 그 후에는 여러 수도원에서 4년간을 생활했다.
    
    40세 즈음이 되었을 때 요한은 리코폴리스 근처의 바위 꼭대기에 작은 방을 지어 들어가 살면서 
    해가 진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매우 검소한 삶을 살았다. 주중에는 기도하며 지냈으며, 
    토요일과 주일에는 그의 가르침과 영적 지도를 받고자 모여온 많은 사람들에게 방에 난 작은 창을 통해 
    가르침을 주곤 하였다. 자신의 방 근처에 병원과 비슷한 종류의 숙박시설을 짓게 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방문객들을 돌볼 수 있게 하였다. 그들은 성 요한의 치유와 예언의 은사 그리고 마음을 읽는 능력 등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예언에 관한 성 요한의 은사는 '테베(Thebae)의 예언자'라는 별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383년 그라티아누스 황제를 죽이고 387년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를 폐위시켰던 폭군 막시무스가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를 공격하자 황제는 막시무스와의 전쟁에 대하여 요한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그 후 자신만만해진 황제는 서쪽으로 행진하여 판노니아(Pannonia)에서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던 
    막시무스의 군대를 두 번이나 물리쳤으며 알프스를 넘어 아퀼레이아(Aquileia)에서 그 폭군을 사로잡았다. 
    의기양양하게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돌아온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이 승리를 
    성 요한의 기도에 돌렸다.
    
    392년 에우게니우스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살해한 아르보가스테스의 도움을 받아 로마 제국의 서쪽 부분을 
    차지하였다. 테오도시우스는 내시 에우트로핀에게 요한을 콘스탄티노플로 데려오도록 지시하였다. 
    만약 요한이 오지 않겠다고 하면 에우트로핀이 직접 성인에게 황제가 에우게니우스에 대항하여 진격해야 
    하는지 아니면 동쪽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청하도록 하였다. 
    요한은 자신의 거처를 떠나지 않으려 했고, 황제의 승리를 예언했지만 이번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이며 황제도 이탈리아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에우게니우스를 향해 
    진격했고 첫 전투에서 만 명의 군사를 잃었다. 패색이 짙었지만 다음날 전투(394년 9월 6일)에서 
    이교도 시인인 클라우디아누스가 인정했듯이 하늘의 기적적인 개입에 의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95년 1월 17일 자신의 두 아들을 동서 로마의 황제로 남기고 서로마 제국 내에서 사망하였다.
    
    기록이 남아 있는 성 요한의 기적 중에는 그가 축성한 기름으로 원로원 의원 부인의 시력을 회복시킨 일이 있다. 
    그는 어떤 여성과의 대화도 거부했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다른 매개체가 필요했다. 황제의 관리 중 하나가 
    요한에게 자신의 부인과 대화하도록 간청하였고, 이를 위해 그 부인은 리크로폴리스(Lycropolis)까지 
    어렵고 위험한 여정을 걸어왔다. 그러나 성인은 지난 40년간의 엄격한 봉쇄생활 동안 어떠한 여성도 
    보거나 말하지 않겠다는 불가침의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황제의 관리는 재차 부탁을 청하는 부인의 간청으로 다시 성인의 처소를 찾았다. 그리고 성 요한에게 
    자기 부인이 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슬픔을 못 이겨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성 요한은 그 관리에게 
    “부인에게 돌아가시오. 그리고 그녀가 이곳이나 집 밖에서는 아니지만 오늘 밤 나를 볼 것이라고 전하시오”라고 하였다. 
    관리의 부인이 잠들었을 때 하느님의 사람이 그녀의 꿈에 나타나 말했다. “부인, 당신의 큰 믿음이 나로 하여금 
    당신을 찾아오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이 하느님의 종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를 자제하라고 훈계해야 합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따라하십시오. 왜 나를 보고 싶어 하십니까? 
    내가 하느님의 진정한 종과 같은 성인이나 예언자입니까? 나는 죄 많고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당신 신앙의 덕으로 당신이 당하고 있는 육체의 병을 낫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의지하십시오. 
    항상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고, 그 분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그녀의 품행에 대한 몇 가지 적절한 충고를 하고는 사라졌다.
    
    부인은 일어나자마자 꿈에서 본 사람을 남편에게 이야기하였고 남편은 그가 성 요한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그 관리가 요한을 찾아갔지만 성인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결국 그 관리는 성인의 축복을 받고 돌아왔다.
    
    훗날 헬레노폴리스(Helenopolis)의 주교가 되고 성 요한의 전기를 쓴 팔라디우스는 394년 7월 성인을 방문하였다. 
    도착해서 보니 성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토요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 성인을 방문했을 때 
    성인은 창문을 통해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통역을 통해 그들이 에바그리우스 공동체의 일원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그 지방의 총독이었던 알리피우스의 황급한 방문에 의해 중단되었다. 성 요한은 팔라디우스에게 
    총독과의 대화를 위해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고, 참을성 없는 팔라디우스는 그들이 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에 짜증이 난 팔라디우스는 성 요한이 사람들 사이에 순위를 매긴다는 불평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결국 성 요한의 처소를 떠나려 할 때 요한은 통역을 보내어 “가서 그 형제에게 참을성을 가지라고 전하십시오. 
    나는 총독을 보내고 그와 대화를 할 것입니다”라고 말을 전하였다.
    
    자신의 생각을 꿰뚫는다는 사실에 놀란 팔라디우스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알리피우스가 떠나고 
    성 요한은 팔라디우스를 불러 물었다. “왜 당신은 분노하고 마음속으로 나에게 죄를 돌리십니까? 당신과는 언제나 
    대화를 할 수 있고 당신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지도해주고 위안해 줄 수 있는 스승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총독은 급한 현세의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런 급한 현세의 문제들로부터 잠시 짬을 내어 
    유익한 충고를 들으러 왔는데, 내가 어찌하여 당신에게 우선권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팔라디우스에게 자신을 유혹하는 것, 즉 은수 생활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은밀한 욕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악마가 자신의 아버지의 형상으로 나타나 유혹하며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은수의 삶으로 
    유도하고자 유혹하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성 요한의 형제자매들은 이미 세속을 포기했으며, 
    아버지는 7년을 더 살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유혹을 무시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 요한은 팔라디우스가 
    엄청난 고통과 고난을 당할 것이며 주교가 되겠지만 많은 고생을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 그 모든 고통은 지나갈 것이지만 당시에는 극도로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예언도 덧붙였다. 
    그들의 만남에 대한 팔라디우스의 증언은 오늘날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다.
    
    같은 해에 성 베드로니우스(Petronius, 10월 4일)가 여섯 명의 수사들을 동행하여 요한을 방문하였다. 
    은수자는 그 중 누가 성직에 있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하였다. 
    사실 성 베드로니우스는 부제였지만 동행한 수사들 중 가장 어렸기 때문에 그릇된 겸손의 덕으로 이를 말하지 않았다. 
    요한이 성 베드로니우스를 지목하며 “이 사람은 부제이오”라고 말했을 때 성 베드로니우스는 부인하였다. 
    성 요한은 그 젊은이의 손에 친구하면서 말했다. “아들아,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부인하지 않도록, 
    겸손이 그대를 배반하여 거짓으로 이끌지 않도록 노력하시오. 우리는 어떠한 좋은 상황에서라도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거짓도 하느님에게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행 중 한 명이 치유를 청하자 성 요한은 그러한 병은 영혼에 이득이 된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기름을 축복하여 그에게 전해주었고, 구토 증상을 보이던 그 수사는 그 순간부터 완전히 나았다.
    
    그들이 요한을 재차 방문했을 때 성 요한은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성 요한은 수도승들에게 다른 덕을 얻기 위하여 허영과 자만을 버려야 함에 대해 긴 담화를 나누었다. 
    그는 비밀스럽게 허영을 품고 있어서 추문을 일으킬만한 부정에 떨어진 다른 많은 수도승들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그 예를 들면서 가장 거룩하고 엄격한 삶을 살았지만 허영 때문에 간통을 범하였고 절망 속에서 무질서의 상태로 
    떨어진 사람의 사례를 이야기하였다. 또한 명성을 찾아 자신을 떠났지만 수도원에서의 설교를 통해 은혜로이 
    회개하여 뛰어난 통회자가 된 예도 들었다.
    
    며칠 후 그 수도승들은 성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마지막 3일 간은 
    아무도 만나지 않는 대신 기도하였으며 무릎을 꿇은 채 숨을 거두었다. 성 요한에 관한 명성은 사막의 교부요
    은수자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성 안토니우스(Antonius, 1월 17일)에 버금간다. 동시대 사람인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와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 그리고 요한의 겸손과 
    뛰어난 순명의 은총을 하느님께 받은 특별한 선물로 돌린 요한 카시아누스(Joannes Cassianus, 7월 23일)도 
    성 요한을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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